석굴암
성하께서 한국에 오시게 되면 딴 곳은 몰라도 꼭 한 군데는 가보셔야 할 곳이 있습니다. 조선의 옛 왕국 신라의 고도 경주의 토함산 꼭대기에 있는 흔히 석굴암이라고 불리는 석불사(石佛寺)라는 곳이지요【경덕왕(景德王) 창건 당시 이 석굴의 이름은 석불사(石佛寺)였다. 김대성(金大成, 700~774)의 발원에 의하여 이 석굴사원의 공사가 시작된 것은 경덕왕 10년(751)이었다. 그 뒤로 약 30년에 걸쳐서 공사가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黃壽永 編著, 『石窟庵』(서울 : 藝耕産業社, 1980), pp.18~20.】. 동해바다에서 첫 일출의 햇살이 떠오르는 순간 이 석굴 속의 본존불의 이마를 비추게 되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온 전신이 보드라운 여인의 살결처럼 살아 움직이지요. 지금은 전실이 지어져서 이런 광경을 볼 수가 없지만 저는 아홉 살 때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두 발로 토함산에 올라가 이런 감격스러운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연화좌 위에서 편단우견(偏袒右肩)의 가사를 자연스럽게 흘러 내려뜨리고 항마촉지인의 자세로 결가부하고 앉아있는 이 본존의 근엄한 자태는 세계불교미술사에서 유례를 보기 힘든 정치한 환조석불입니다.
그런데 우리 조선은 4계절의 일기 차이가 심하고 겨울에 바위들이 동파되기 때문에 인도와 같이 거대한 산이 통돌로 되어있는 그러한 자연현상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석질 그 자체의 성격이 자연상태에서 통돌을 깎아 들어가는 식의 석굴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토함산 석굴은 석재를 다듬어 기하학적인 돔의 형식으로 쌓아올리고 그 안에 이상적 불토의 어떤 판테온을 조성한 것입니다. 본존 뒤에 자리잡은 십일면관음보살의 자애롭고 화려한 자태는 도무지 인간의 작품이라 말하기 어려운 기품이 있으며, 그 양 옆으로 서있는 십대제자의 리얼한 모습, 그리고 입구의 사천왕과 금강역사의 다이내믹한 모습 등은 그 절제된 조형성, 기하학적 정합성, 압축된 원융미에 있어서 세계불교미술사에 있어서 추종을 불허하는 걸작이라 하겠습니다. 저는 평소 우리나라 석굴암의 특유한 맛은 돈황ㆍ운강ㆍ용문석굴의 화려하고 장엄한 맛에도 비길 수 없는 것이며 그 단아한 품격을 양보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뭄바이 엘레판타섬의 방치된 유적들을 보는 순간, 그 건조물의 스케일감과 신화적 사건을 나타낸 자유분방한 표현의 다양성, 그리고 우주의 창조ㆍ유지ㆍ파괴를 상징하는 시바의 삼면얼굴, 마헤사무르띠(Mahesamurti, Triple-Headed Shiva)의 장쾌한 모습은 도무지 형언키 어려운, 저의 영혼을 압도하는 어떤 거대한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을 던져주는 그러한 걸작품이었습니다【마하데바사원(The Temple of Mahadeva)이라고 불리는 이 엘레판타섬의 성전의 특징은, 인도의 여타 사원이 대개 에클렉틱한(혼합적인) 성격을 지니는데 반하여, 오직 시바신 일신에게만 봉헌되었다는 것이다. 이 성전안의 모든 것이 오로지 시바신과 관련된 것이다. 이것은 곧 이 시대에 이 지역에 이미 독립적인 시바숭배교(Saivism)가 정착되어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20개의 거대한 석주가 떠받치고 있는 십자형의 공간구조(the cruciform temple)의 정남면 석벽에 자리잡고 있는 본존에 해당되는 이 마헤사무르띠(Mahesa-murti)의 장쾌한 얼굴은 삼면이지만 실제로는 5면의 얼굴로서 이해되고 기술된다. 본당을 들어서서 마주볼 때, 오른쪽 얼굴이 평정의 따뜨뿌르샤(Tatpursha), 왼쪽 얼굴이 진노의 아고라(Aghora), 그리고 중정의 영원한 모습이 바마데바(Vamadeva, 반데배Vandeva로 불리기도 한다)이다. 그런데 부조이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지만, 바마데바의 정 뒷면에 사됴자타(Sadyojata)가 있고, 머리쪽 정수리에는 또 이샤나(Ishana)가 있다고 한다. 이 다섯 얼굴은 시바의 다섯 측면, 다섯 성격이나 무드를 나타낸다고 한다. 창조(creation), 유지(maintenance), 파괴(destruction), 감춤(concealment), 사랑(favour), Owen C. Kail, Elephanta ― The Island of Mystery (Bombay : Taraporevala, 1984), p.12. 그리고 Carmel Berkson, Elephanta ― The Care of Shira, Delhi : Motilal Banarsidass Publishers, 1999도 엘레판타 사원에 관한 희소한 자료 중의 하나이다.】.
▲ 마헤사무르띠
▲ 시바의 자웅동체의 모습, 불룩한 젖가슴 곁으로 내려뜨린 슬림한 왼손 팔뚝과 대비적으로 반대편의 남성적인 오른손은 난디를 누르고 있다. 터질듯이 풍만한 저 가슴의 표현을 보라! 시바의 마력은 모든 대립적 요소들을 융화시키는 힘에 있다.
▲ 카일라사 산을 들어올리려고 용쓰는 랑카의 마왕 라바나를 가볍게 누르고 앉아, 아랑곳 없이 파르바티와 희롱하고 있는 시바. 작품의 팍손이 극심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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