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⑤강: 구의역 사고와 교환논리
5월 28일 오후 5시 57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19살 김군은 역으로 진입하던 전철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전철과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사망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 벌어진 일들은 지금 우리가 얼마나 교환의 논리가 횡행하는 곳에 살고 있는지를 실감케 했다.
▲ 벌써 이런 사고가 3건이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까진 크게 이슈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무신경하게 흘려버렸다.
구의역 사고는 정비업체 직원의 부주의 때문?
스크린도어 수리는 원칙적으로 2인 1조로 작업을 해야 한단다. 하지만 이날 구의역엔 김군만 작업을 하고 있었고 스크린도어 안쪽 센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혼자 들어가 고치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현실이 이러니 메트로 관계자는 ‘원칙을 지키지 않은 정비업체 직원의 부주의’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라며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 심지어 조선일보는 통화로 인해 사고가 났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기도 했다.
하지만 김군이 소속된 ㈜은성PSD라는 회사의 시스템은 사고접수를 받으면 1시간 내에 해당역에 도착해야만 하고 그러지 않으면 벌점을 줬다고 한다. 이날 구의역에서 작업을 할 때에도 을지로4가역에서 새신고가 접수되어 시간은 매우 촉박했고, 함께 작업해야 할 파트너는 경복궁역에서 작업 중이어서 ‘2인 1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이 사건이야말로 극단적인 자본주의 사회, 교환만이 최상의 가치가 된 사회의 진풍경을 보여준다. 원청업체는 계약을 체결할 때, 최저가 입찰방식으로 공모를 하여 하청업체를 선정한다. 최저가란 결국 하청업체 소속의 직원들에게 불합리한 대우(신고 후 1시간 내에 도착해야 한다)와 열악한 처우(박봉)를 해야지만 겨우 맞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김군은 언제 신고가 들어올지 몰라 밥 먹을 시간도 없어, 그의 가방엔 ‘컵라면 하나와 공구’들이 뒤섞여 있었다고 한다.
▲ 가슴 아픈 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속품처럼 살아가지만,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엔 관심조차 없다는 거고 내 자식은 승자가 되길 바라는 거다.
교환이 판치는 세상의 진풍경
구의역 사고가 발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6월 1일에는 4호선 남양주 공사 현장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철근 용단 작업 중 인화물질과 닿으며 폭발하여 붕괴된 것이다. 이로 인해 4명이 죽고, 10명이 다쳤다. 그런데 이때 지하 15m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일당 16만원을 받고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였다고 한다. 이건 곧 구의역 사고나 남양주 사고나 원가절감만을 추구하고 사람을 부속품쯤으로 여기는 사회시스템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사고를 당한 것일 뿐, 누구든 그런 일을 당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구의역에서 포스트잇을 붙이며 추모하던 사람들은 ‘너는 나다’라는 글을 쓴 것이다.
▲ 우리 시대의 모든 김군들, 그래서 그들이 함께 외쳤다. '너는 나다'
그런데 이런 사고 소식을 접할 때 사람들은 “저 봐 저 봐. 저러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버젓한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니까”라고 혀를 차며, 오히려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일하며 변을 당한 사람들을 욕보인다. 이런 말은 한 편으론 공부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그건 다름 아닌 사회의 부조리엔 완전히 눈을 감고, 아니 눈을 감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용인하고 부추기며 ‘나만 아니면 돼’라는 극도의 이기적인 욕망이 분출된 것이니 말이다. 이런 공부의 어두운 면을 여실히 보았기에 황경민 시인은 “세월호가 침몰한 뒤 집회를 하고 서명을 받고 촛불을 켜면서도 내 아이는 바로 그 학교에 보내고 있는, 내 아이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내 아이는 성적이 올라야 하는, 내 아이는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 이 내면화된, 체제의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 우린 이런 상황을 대할 때, 이런 말도 안 되는 처사와 시스템에 분개하기보다 '나만은 아니길', '내 자식만은 아니길' 바란다.
결국 우린 교환의 논리만이 활개 치는 사회가 되도록 은연중에 돕고 있었으며, 이젠 유지되도록 힘을 보태주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완벽하게 나누고, 정규직이란 이유로 비정규직을 깔보거나 착취하는 걸 너무도 당연하게만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전철이 수시로 드나드는 것을 알면서도 스크린도어 안쪽으로 김군을 밀어 넣었고, 폭발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용직 노동자들만 지하공사장에 쑤셔 넣었으며, 소수만이 성공하여 다수는 실패의 쓰라림과 멸시의 고통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너만은 승자가 되라’며 경쟁에 끌어넣었다.
이제야 자식을 잃은 김군의 어머니는 자신 또한 그렇게 이 사회를 유지하며 살아왔음을 인정하며 “하지만 둘째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책임감 있고 반듯하게 키우지 않겠다. 책임자 지시를 잘 따르면 개죽음만 남는다. 산산조각 난 아이에게 죄를 다 뒤집어 씌웠다. 둘째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첫째를 그렇게 키운 게 미칠 듯이, 미칠 듯이 후회가 된다.”고 절규하기도 했다.
▲ 황경민 시인이 필사한 어머니의 절규. 가슴 먹먹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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