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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금강경 강해, ‘소승’은 뭐고 ‘대승’은 뭐냐? - 4. 금강경은 선이 아니다 본문

고전/불경

금강경 강해, ‘소승’은 뭐고 ‘대승’은 뭐냐? - 4. 금강경은 선이 아니다

건방진방랑자 2022. 6. 17.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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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금강경은 선이 아니다

 

 

올 봄, 초파일의 신록이 우거질 즈음의 일이었다. 나는 우연히 내설악(內雪岳)의 백담(百潭)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의 회주(會主) 큰스님께서 날 알아보시고 만남을 자청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오실(奧室)로 안내되었다. 법명(法名)이 오현(五鉉)! 아무리 그것을 뜯어 보아도 법명의 냄새가 없었다. 나는 우선 그것부터 여쭈었다.

 

그건 어릴 적부터의 내 이름입니다. 중이라 할 것이 따로 없으니 그 속명이 바로 내 법명이 된 것이지요.”

 

낌새가 좀 심상치 않았다.

 

내가 도올선생을 뵙자고 한 뜻은, …… 아무리 여기 백담에 백칸짜리 가람을 짓는다 한들, 그곳에 인물이 없고 지혜가 없으면 자연만 훼손하는 일이지 뭔 소용이 있겠소?”

 

오현 스님은 다짜고짜 나에게 이와같은 제안을 하시는 것이었다.

 

인류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만한 지혜의 책을 여기 백담에 앉아 쓰시오. 백담사가 만해(萬海) 이래 텅 비었소이다. 도올 선생이 여기 오신다면 내가 무금선원(無今禪院)을 통채로 내드리리다. 여기와서 무금선원(無今禪院) 방장이 되시오. 그리고 도올총림을 만드시오!”

 

스님의 거친 입담에 난 좀 소름이 끼치었다. 방장이니 총림이니 하는 말은 스님과 같이 책임있는 자리에 계신 분이 나같은 속인에게 함부로 쓸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방장이란 현 조계종 체제상으로 거의 스님의 최고의 존숭(尊崇)의 지위를 의미하는 말인 것이다. 이날 우리의 이야기는 하염없이 깊어만 갔다. 백담에 하염없이 졸졸 흐르는 푸르른 물소리와 함께……

 

스님이 어려서 출가한 시절, 산골의 대가람이라 해봤자 아주 극빈한 처지였다. 그리고 일제 강점시기 대처스님들이 절깐을 운영하던 시절이었고, 대처스님들의 생활은 절도가 있었으나 곤궁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스님도 배가 고파 절깐에 들어가 머리를 깎았는데, 또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죽으라고 하루종일 걸식을 해야만 했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가 주로 걸식을 하러 다니는 동네에, 걸식을 하는 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문둥이었다. 아마도 한하운님과 같이 학식 꽤나 있었던 문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걸인의 상당수가 문둥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오현 스님은 매번 그 문둥이만큼도 밥을 얻을 수 없었다. 그 문둥이는 샘나게도 밥을 곧잘 얻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시의 스님을 바라보는 조선민중의 눈초리가 스님을 문둥이만큼도 대접을 하지 않는 분위기였던 탓도 있겠지만, 문둥이라는 전염병환자를 사람들은 공포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에 미리미리 밥을 주어 쫓아내곤 했던 것이다.

 

부화가 치밀어 견딜 수 있어야지요. 에이 비러먹을 중 때려치고 문둥이나 될란다!”

 

배고픈 오현 스님은 진실로 문둥이가 되기로 작심했다. 그리고 그 문둥이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 문둥이가 밥을 걸식하는 비법도 전수받고, 그 문둥이와 같이 한 깡통에 밥을 비벼먹고 추울 때는 추운 동굴 한 거적지 속에서 껴안고 자고 뒹굴었다.

 

처음에 이 문둥이는, 요놈 사미승, 맛 좀 봐라! 너 정말 문둥이 될래? 하고 참으로 날 문둥이로 만들 생각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

 

그런데 오현 스님이 진실로 문둥이가 될려면 되라 하고 분별심을 버렸다는 것을 그 문둥이가 깨닫게 된 어느 날, 추운 동굴에서 하루를 지새우고 일어나보니 그 문둥이는 자취 없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먼동이 트는 새벽이슬에 젖은 한 종이쪽지가 뒹굴고 있었다.

 

너는 훌륭한 스님이 될 터이니 부디 성불(成佛)하거라!’

 

눈시울이 뜨거워진 사미승 오현은 문둥이가 사라진 허공을 향해 절을 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아하! 부처님이 문둥이구나!"

 

이 순간이 바로 그의 생애를 지배한 득도의 순간이었다.

 

 

버드나무 밑에서

찌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개 없다.

 

 

이것은 한하운님의 소록도로 가는 길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그래! 부처님이 문둥이요, 문둥이가 부처님이다. 손톱이 빠지고 손가락이 뭉크러지고, 발톱이 빠지고 발가락이 떨어져나가고, 눈썹 빠지고 코가 뭉그러지고 귀가 찌그러지고, 살갖이 바위처럼 이그러지는, 날로 날로 아상(我相)이 없어져 가는 바로 그 문둥이야말로 부처님인 것이다. 내가 문둥이라면 뭔들 못하겠나? 조선의 스님들에게 묻겠다. 그대들은 과연 문둥이가 될 수 있는가?

 

나는 지금 이 인류의 최고의 지혜서, 금강경을 설()하기에 앞서 독자들에게 이 화두를 하나 던지려는 것이다. 불교는 관념의 종교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불교는 체험의 종교인 것이다.

 

 

부처님은 문둥이다

 

 

“‘시십마(是什麽)’이 뭐꼬가 아니라 그냥 뭐꼬라 한 김선생님의 일갈이 썩 마음에 들었소이다.”

무금선원(無今禪院)을 헐어버립시다.”

그건 뭔 말이요?”

 

나는 이런 제안을 하나 했다. 우리나라 불교가 좌선때문에 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스님들의 수도(修道) 열정 또한 우리나라 수행불교를 떠받치는 힘이다. 나는 백담사만이래도 결제방식을 바꾸자고 했다. 모든 선원이 똑같은 결제방식을 취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안거(安居)란 원래 부처님시대에는 하안거(夏安居)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안거(冬安居)는 불교가 티베트나 중국북방의 추운 지방에 와서 새롭게 발전한 것이다. 하안거(夏安居)란 인도의 기후풍토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우안거(雨安居), 3개월은 우기가 되어놔서 제방(諸方)에 행화(行化)하는 것이 심히 불편하고, 또 초목(草木)ㆍ소충(小蟲)을 살상(殺傷)할 염려가 있어 불제자들을 일개소(一個所)에 집합시켜 금족시킴으로써 수학(修學)을 깊게 하자는 일거양득의 제()였던 것이다. 안거(安居)라 해서 어떤 정해진 규칙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안거는 그냥 그대로 둔다 하더래도 동안거 3개월만이라도 스님들을 선발하여 나하고 집중적으로 불경을 공부하게 하는 새로운 제()를 설()합시다! 3개월 동안만이라도 용맹정진 스타일로 독서하고 토론하면서 정진하면, ‘()’ () 하나 들고 있는 것보다는, 천만 개의 간화(看話)가 쏟아질 것이외다.”

좋소! 거참 좋은 생각이구료!”

 

이날 나는 다음날의 일정 때문에 백담을 떠나와야 했다. 바람이 쌩쌩 스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질주하면서 나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뭔 또 쓸데없는 업을 지으려구. 너 같은 속인이 뭘 또 콧대 높은 스님들까지 교육한다구래! 그런 네 아상(我相)이나 지우려무나!”

 

금강경은 선()이 아니다. 금강경을 선으로 접근하는 모든 주석을 나는 취하지 않는다. 금강경은 오로지 대승(大乘)의 출발이다. 대승됨의 최초의 기준이요, 최후의 기준이다. 만약 선이 금강경과 그 의취가 부합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직 선이 대승의 정신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버트란드 럿셀경은 말했다

 

 

20세기가 인류의 어느 세기보다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지식의 증대를 가져왔지만, 불행하게도 그에 상응하는 지혜의 증대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제 21세기는 지식의 세기가 아닌 지혜의 세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서구의 소피아는 연금술에 빠지고 말았다. 동양의 금강의 지혜는 연단(煉丹)을 부정하고 아()ㆍ인()ㆍ중생(衆生)ㆍ수자(壽者)를 부정했다. 이제 우리는 금강의 지혜에서 모든 종교적 편견을 회통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발견해야 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제 금강의 문을 두드려보자!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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