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승’은 뭐고, ‘대승’은 뭐냐?
1. 소승과 무관한 소승개념
자아! 너무 번쇄(煩瑣)한 학구적 논의를 떠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개념들을 분석해보자! 도대체 소승(小乘, hīnayāna)이란 무엇이냐? 작은 수레다! 그럼 대승(大乘, mahāyāna)이란 무엇이냐? 큰 수레다! 그럼 소승이 좋은 거냐 대승이 좋은 거냐? 요즈음 아파트도 모두 작은 아파트보다 큰 아파트 못 얻어서 야단인데 아무렴 큰 게 좋지 작은 게 좋을까보냐? 큰 수레가 넉넉하고 좋을 게 아니냐? 작은 길 가는 데는 작은 수레가 좋지, 뭔 거추장스런 큰 수레냐??
사실 ‘히나(hīna)’라는 의미에는 단순히 싸이즈가 작다는 물리적 사실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용렬하고 옹졸하다’는 가치판단의 의미가 들어가 있다. ‘마하’의 의미에는 상대적으로 ‘크고 훌륭하고 장엄하다(magnificent)’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그 누가 ‘히나’로 불리기를 좋아할 것인가?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상적인 불교이해, 교과서적인 불교이해를 잠깐 들여다보면, 누구든지 이런 말을 서슴치 않는다. 남방불교는 소승불교고, 북방불교는 대승불교다. 그럼 버마ㆍ타이 등지에서 보는 불교는 소승이고, 중국ㆍ한국ㆍ일본의 불교는 대승이란인가? 마치 소승ㆍ대승이라는 말이 규정되는 어떤 고정적 대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어휘 속에서는 소승과 대승이 실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과연 불교와 같이 추상적인,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구원의 정신세계를 더듬는 종교적 세계에 소승과 대승이라는 확연한 구분의 기준이 가능할까? 누런 까샤야를 걸친 미얀마의 스님들은 모두 소승불교인이고, 회색의 가사를 걸친 조선의 스님들은 모두 대승불교인인가? 우리가 흔히 불교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통시적으로나 공시적으로나, 모두 소승이니 대승이니 하는 개념들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향이 있는데, ‘소승ㆍ대승’이라는 개념이야말로 실로 불교를 이해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일대 편견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소승ㆍ대승의 이해가 철저히 ‘실체화’ 되어 있는 오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교상판석(敎相判釋)’도 중국불교의 교리체계화에 기여한 바가 크지만, 그러한 아전인수격의 서열적 가치판단은 오히려 근원적으로 불교의 이해를 그르치게 만드는 도식성을 조장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경전해석학의 방편으로 수용할 수는 있으나, 불교의 근본교의를 이해하는 열쇠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대승’이란 말은 물론 ‘대승’이라는 말을 사용한 사람들이 그들의 ‘대승’됨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대적으로 ‘소승’이라는 말을 지어냄으로써 역으로 대승의 존재 이유를 확립하려 한 데서 생겨난 말일 뿐이다(소승이라는 말 자체가 대승이라는 말보다 수백 년 후에 생겨났다). 다시 말해서, 소ㆍ대승의 구분개념은 실제로 ‘소승’과는 무관한 개념이다. 즉, 대승에게는 소승이 존재하지만, 소승에게는 소ㆍ대승의 구분근거가 근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남방에 가서 그들에게 우리가 규정하는 의미맥락에서 당신은 소승이냐고 물으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자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유태인들에게 가서 ‘구약’을 운운하는 것과 똑같은 바보짓이다(유대인들에게 ‘구약’은 없다. ‘바이블’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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