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시대 개막과 다짐
01년 12월 14일(금) 무지 추움
어젠 영상의 날씨였다. 그래서 흐린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EENT일 땐, 눈 대신 비가 내린 것이다. 겨울에 비가 오다니, 얼마나 포근한 날씨인 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김없이 나의 은근한 바람대로 합동근무 투입하려 할 땐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온도는 영상이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바람으로 인해 체감 온도가 낮았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그렇게 조금의 눈이 내린 밤이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
아침엔 그저 평이한 겨울의 날씨여서 별반 걱정이 없이 구보 후 잠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오후였다. D조 근무 사수였기에 일찍 12시 50분에 일어나야만 했다. 그런데 다른 때완 달리 진짜로 침낭에서 나오기 싫다는 걸 느꼈다. 도대체 날씨가 어느 정도이기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나중에 대공 온도를 알아보니, 영하 8도란다. 어떻게 햇살이 저렇게 내리쬐고 있는 오후에도 새벽의 그 어슴프레함보다 더 더 추울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우리들의 현실적 암울함을 더욱 배가시킨 말은 “이게 시작이군, 앞으론 이런 날씨가 계속 될 거야.”라는 김솔잎 상병의 말이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로 들어선 것이며 영하 시대로의 진입을 한 것이리라.
여름과 그 짜증 나는 비와 무더위 속에서도 내 자신을 돌이키며 느낀 거지만, 난 그러한 더위와 찌꺼분의 짜증이 겨울 속의 힘듦보다 배나 나은 것이다. 그러한 나이기에 지금은 그저 걱정스러울 뿐이다. 이렇게 암담하고도 참혹한 겨울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 걱정인 것이고 이 추위 가운데서 참아내며 근무 잘 설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난 어떤 일이든 미처 몸으로 겪어보기 전에 걱정 먼저 하는 게 문제다. 그래서 남들로부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단 소릴 듣는 것이고 ‘걱정도 사서 한다’라는 비아냥을 듣는 걸 거다. 하지만 나도 사실 그러한 사실을 알지만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날 자꾸 그렇게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현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삶이 버겁고 힘들게 할지라도 결코 그대가 그걸 즐겨야 하는 까닭은, 나 하나로 인해 슬퍼하고, 기뻐할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들었을 듯한 이 말, 힘듦에 지쳐서 포기하고픈 사람들에게 결단코 세상은 살아야만 한다는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일 거다. 그대의 값어치를 그대 혼자 판단해 버리기 전에 주위 사람들을 통해 나의 가치, 그대의 가치를 바로잡아 가야 한다.
영하시대의 개막, 결코 내가 지금까지 겪어온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점에 암담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것보다 더 혹한에서도 사람은 살았고 이런 가운데서도 군 생활을 잘 마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집중하며 이겨나가며 즐길 것이다. 이 추위를 이김은 결국 나를 이기는 것이고 이 어려운 세태를 이기는 것일 거니깐.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부심 아니겠는가! 군대엔 한 번 정도는 가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부모라는 온실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첫 경험을 하게 되는 계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보호의 틀을 떠나 잘 적응해왔으니 당연히 자부심이 쌓일 수밖에 없고 그런 자부심을 이 험한 세상에 도전케하는 용기로 변할 것이다. 영하의 시기도 잘 참아 나가자 이깟 걸로 무너질 내가 아니다.
02년 1월에 찍은 사진. 일병 말호봉 때 얼어붙은 강물 위에 서서.
인용
'연재 > 여행 속에 답이 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대 수양록, 일병 - 01.12.24(화)~25(수) 화이트 크리스마스 (0) | 2022.06.30 |
---|---|
군대 수양록, 일병 - 01.12.17(월) 그저 이루어지는 건 없다 (0) | 2022.06.30 |
군대 수양록, 일병 - 01.12.01(토) 첫 폭설에 바뀐 감정 (0) | 2022.06.30 |
군대 수양록, 일병 - 01.11.05(월) 연탄 갈이 (0) | 2022.06.30 |
군대 수양록, 일병 - 01.10.29(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0) | 2022.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