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1) 이생규장전, 구조적 측면의 의미
송도(宋都)의 이생(李生)은 국학에 가던 도중 최가의 담장 안을 엿보다가 아름다운 최낭자(崔娘子)를 보고 마음이 끌리게 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곧 꽃다운 인연을 맺지만, 이를 눈치 챈 이생(李生)의 아버지는 그를 멀리 울주농장(蔚州農場)으로 쫓아버리고, 이를 상심한 최낭자(崔娘子)는 그를 사모하여 몸져눕게 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그녀의 부모는 곧 매자(媒者)를 이가에 보내어 이 사실을 알리고, 드디어 양인은 결혼하여 끊겼던 사랑을 다시 잇게 된다.
그러나 그 뒤 홍건적의 난을 만나 이생(李生)은 겨우 목숨을 구하였으나, 최낭자(崔娘子)는 끝내 정조를 지키려다 피살되고 만다. 난 후 이생(李生)은 죽은 최낭자(崔娘子)의 환신(幻身)과 다시 만나 옛사랑을 다시 잇게 되지만, 삼년이 지난 어느 날 최낭자(崔娘子)는 문득 이승의 인연이 다하였음을 말하고 작별을 고한다. 이생(李生)은 하릴없이 그녀를 떠나보내고, 자신도 아내를 생각한 나머지 병을 얻어 곧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생규장전이 만복사저포기보다 뛰어나다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는 이생(李生)과 최낭자(崔娘子)의 만남이 거듭되는 특이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에서는 현실의 양생(梁生)이 처음부터 죽은 여인의 환신(幻身)을 만나 동거하는 전개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에서 보면 이생(李生)과 최낭자(崔娘子)의 첫 번째 만남은 명계와의 관계없이 현실적인 사랑을 맺는다. 그러나 홍건적의 난을 계기로 재회하는 과정에서는 전자처럼 환신(幻身)과의 만남으로 변모된다.
두 작품(作品)의 구성을 비교해 보면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의 후반이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라고도 할 수 있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는 애당초 환신(幻身)과의 만남에서 이들의 이별까지를 다룬 작품(作品)인데 반하여,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는 양인이 현실에서 사랑을 맺었다가 다시 환신(幻身)을 만나 못 다한 사랑을 성취하고 이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작품(作品)의 기교나 가치면에서 본다면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가 전자에 비해 월등한 가치 부여를 받을 만하다.
이생규장전의 만남과 이별의 세 단계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는 결합과 이별의 단계가 세 단계로 복잡화되어 있다.
그 첫 번째 단계는 이생(李生)과 최낭자(崔娘子)가 가연을 맺었다가 이생가(李生家)의 반대로 서로 이별하게 되는 사건이다. 사랑에의 도발은 이생(李生)이 먼저이지만 다음 단계의 행위부터는 최낭자(崔娘子)가 더욱 적극성을 띤다. 이생가(李生家)에 의해 두 사람은 다시 이별을 맛보게 되지만 최낭자(崔娘子)의 적극성으로 말미암아 양인은 재결합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梅月堂外集 권 1,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父母如從我願 終保餘生 徜違情款 斃而有已 當與李生 重遊黃泉之下 誓不登他門也.】.
그러나 홍건적의 난은 그 두 번째 이별의 단서를 마련해 주고 있다. 최낭자(崔娘子)의 죽음은 정조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전란이 끝난 후 이생(李生)은 최낭자(崔娘子)의 환신(幻身)과 다시 만난다. 두 사람은 삼세(三世)의 깊은 인연이 있어 옛날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고 다시 만난다고 하였다. 그들은 세상의 벼슬을 구하지 않고 사랑에만 몰두한다.
그러나 또 다시 세 번째의 이별이 다가온다【三遇佳期, 世事蹉跎, 歡娛不厭, 哀別遽至.세 번이나 가약을 맺었지만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즐거움이 다하기도 전에 슬프게 헤어져야만 하겠어요】. 이 이별도 최낭자(崔娘子)가 선창한다. 저승길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가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머물면서 산 사람을 미혹시킬 수는 없답니다[非久留人世以惑陽人].’을 말하며 옥루춘(玉樓春) 일결(一闋)로 이별을 고한다.
당신의 목숨은 아직 남아 있지만, 저는 이미 귀신의 명부(冥府)에 실려 있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볼 수가 없지요. 제가 굳이 인간세상을 그리워하며 미련을 가진다면 명부의 법도를 어기게 되니, 저에게만 죄가 미치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도 또한 누가 미치게 된답니다.
李郞之壽, 剩有餘紀, 妾已載鬼籙, 不能久視. 若固眷戀人間, 違犯修令, 非唯罪我, 兼亦累及於君.
최랑의 수명은 이미 저승의 명부에 올라있으니 더 오래 머물 수 없으며, 굳이 인세에 미련을 가진다면 명부(冥府)의 법에 위배되어 이생(李生)에게도 죄가 미치게 된다는 논리다. ‘언흘점멸, 료무종적(言訖漸滅, 了無踪跡)’이라는 표현 가운데서 마지막 이별의 슬픔을 본다.
세 번의 헤어짐에 대한 평가
이혜순(李慧淳)은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의 구성을 결합과 이별의 삼단계로 도식화하면서 삶과 죽음의 대조가 아주 강렬하게 나타나는 특색을 들며 중국의 「이장무전(李章武傳)」 패턴의 작품(作品)이라고 설명하였다【李慧淳, 『금오신화(金鰲新話)』에 나타난 人鬼交換說話의 유형적 考察, 前揭書, p.595】.
임형택(林熒澤)은 이를 세 차례의 시련과정으로 설명한다. 이생(李生)이 시골로 쫓겨나고 최낭자(崔娘子)가 상사병으로 눕게 되는 상황, 전란으로 말미암은 최낭자(崔娘子)의 죽음, 최낭자(崔娘子)가 영원히 이생(李生)의 곁을 떠나는 상황, 이 가운데서, 첫 번째 상황은 개인 대 사회의 관계이므로 노력으로 극복되었으며, 두 번째 시련은 전란이라는 불가항력의 것으로 다만 비애의 절실함을 보여주는데 그쳤으나, 세 번째 시련은 절대적인 운명으로 이는 극복되지 못하고 이생(李生)과 최낭자(崔娘子)의 이별을 감수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고 하고 있다. 이생(李生)은 결국 절대적 운명에 순종하지 않자니 자기 자신도 죽음의 길을 택할 도리밖에 없었던 것이며 따라서 비극이 절정에 달하게 된다【林熒澤, 現實主義的 世界觀과 『금오신화(金鰲新話)』, 前揭書, pp.34~35.】.
金一烈은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의 결합과 이별의 반복을 상승과정과 하강과정으로 설명하고, 전자는 求愛와 만남, 부모에 의한 이별, 정식혼인에 이르는 점진적 결합의 상태, 후자는 戰亂에 의한 이별, 생자와 사자의 만남, 생자와 사자의 이별에 이르는 점진적 분리의 상태로 양분화하여 전자에서 성취된 행복이 후자에서 차츰 좌절되어가는 비극적 도식의 작품(作品)이라고 설명한다【金一烈, 『금오신화(金鰲新話)』考察, 前揭書, p.273.】.
“生拾骨, 附葬于親墓傍. 旣葬, 生亦以追念之故得病數月而卒.”의 마지막 대문에서, 이생(李生)이 최낭자(崔娘子)의 유골을 장사지내고 그녀를 추념하다 병을 얻어 결국 자신도 죽음으로써 삶을 끝마쳤다는 귀결은 최낭자(崔娘子)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시 행위이며 사랑을 앗아간 현실에 대한 반항이요 거부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죽은 여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세계와 화합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만큼 처절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나타내며, 필연적 이별을 통해 자아는 패배를 겪게 되는데 이는 세계와의 처절한 투쟁을 겪으면서 이루어지는 비장한 패배이며, 죽음에 이르는 결말은 자아가 세계를 전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좌절에 머물지 않으려는 각오를 나타낸 것이란 표현이 매우 설득력을 갖는다【趙東一, 小說의 성립과 초기小說의 유형적 특징, 前揭書, p.231.】.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