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름다운 행동은 집착이 없다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4-1.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보살은 법에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여야 한다.
復次須菩堤! 菩薩於法應無所住, 行於布施.
복차수보리! 보살어법응무소주, 행어포시.
‘묘행(妙行)’이란 ‘아름다운 행동’이라 번역했지만, 실제로 여기서의 ‘행(行)’은 ‘보시’를 가리킨다. 대승불교에서의 ‘묘(妙)’라는 글자는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할 때의 묘와 항상 의미적으로 상통해 있는 글자며, 그것은 통속적 인식을 벗어난, 즉 지혜의 인식을 거친 후에 획득되는 상식의 세계를 의미한다. ‘무주(無住)’라는 말은 ‘부주열반(不住涅槃)’ 혹은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이라는 대승의 개념에서 도출되는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생사(生死)가 곧 열반(涅槃, nirvāṇa)이고, 번뇌가 곧 보리(菩提)라고 한다면, 대승보살에게 있어서의 열반은 생사윤회 속에 내재하는 것이지만 그 윤회 속에서 사는 방식이 반드시 ‘무주(無住)’ 즉 일정한 데 머물거나 안주하거나 집착하거나 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제4분의 주제는 ‘보시(布施)바라밀’이다. 아(我)와 타가 존재하는 보시가 아니라, 아(我)와 타(他)가 근원적으로 해소되는 보시인 것이다. 자선을 표방하는 자(者)들에게 크게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복차(復次)’는 ‘또 다음으로’의 뜻인데, 문맥을 살려 ‘또’를 ‘이제’로 바꾸었다. 불문(佛門)에서는 ‘부차’로 읽기도 하나 고운(古韻)을 따르면 ‘복차’로 읽는 것이 옳다.
‘어법(於法)’의 ‘법(法)’은 소승부파불교에서 말하는 존재(存在)이다. 존재의 실체성에 집착하는 그러한 인식구조에서는, 내가 남에게 베푼다는 행위는 불필요한 업(業)의 증대만 가져올 뿐이라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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