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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금강경 강해, 제구분 - 9.5~6 阿那含能作是念 ~ 是故名阿那含 본문

고전/불경

금강경 강해, 제구분 - 9.5~6 阿那含能作是念 ~ 是故名阿那含

건방진방랑자 2022. 11. 17.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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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아나함이 나는 아나함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생각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阿那含能作是念, 我得阿那含果不?”

수보리! 어의운하? 아나함능작시념, 아득아나함과불?”

 

9-6.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 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아나함을 이름하여 이제 다시 아니 올 자라 하지만, 실제로 온다 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만 아나함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須菩堤言: “不也. 世尊! 何以故? 阿那含名爲不來, 而實无來. 是故名阿那含.”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아나함명위불래, 이실무래. 시고명아나함.”

 

 

우리 해인사본()실무래(實无來)’로 되어 있는 부분이 명본(明本)에는 실무불래(實無不來)’로 되어 있고, 세조본도 명본(明本)을 따랐다. 우리나라 시중 통용본도 한결같이 무불래(無不來)’로 되어 있다.

 

언뜻 보기에는 아나함(阿那含)이 불래(不來)의 뜻이므로 그것의 부정은 무불래(無不來)’가 되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문에서 무불래(無不來)’라고 하면 그것은 이중부정이 되어, ‘오지 않음이 없다.’ 언제고 온다가 된다. 근본적으로 불래(不來)’라는 개념의 부정이라는 맥락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라집(羅什)무래(無來)’ 즉 온다고 하는 것 그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다시 아니 올 자라고 하는 개념을 파기시켜 버린 것이다. 이러한 깊은 뜻을 모르고 그것을 무불래(無不來)’로 고치는 것은 옛사람들, 특히 교정을 좋아하는 소학가(小學家)들의 천박함에 지나지 않는다. 육조(六祖)의 주석에도 고명불래(故名不來), 이실무래(而實無來)’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육조(六祖)가 본 금강경판본에는 무래(無來)’로 되어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 해인사판본의 우수성이 이런 데서 입증되는 것이다. 대정(大正)본은 바로 우리 고려본을 따랐다. 따라서 나카무라도 이 부분을 무래(無來)’로 바르게 번역했는데(ることければなり), 이기영은 또 이 부분만 무불래(無不來)’로 원문도 고치고 번역도 그에 따라 했으니 도무지 그 일관성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별 생각 없이 통용본을 따르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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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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