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어느 한 상도 상이 아니어라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
9-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수다원이 ‘나는 수다원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생각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須陀洹能作是念, 我得須陀洹果不?”
“수보리! 어의운하? 수다원능작시념, 아득수다원과불?”
이 제9분은 역사적으로 『금강경』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매우 중요한 분이다. 『금강경』은 소승과 대승이라는 구분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당대에 성립한 부파불교에 대한 통렬한 반성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 바로 이 분(分)은 『금강경』이 쓰여진 당대의 부파불교의 통념에 대한 매우 통렬한 비판의 어조를 깔고 있다. 불교의 언어는 매우 밋밋하고 두리뭉실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배면에 숨어있는 역사적 정황을 날카롭게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시하고 있는 것은 ‘사향사과(四向四果)’라고 하는, 소승 부파불교가 인간수행의 과정으로 설정한 4개의 계위(階位)에 관한 것이다. 여기 집역(什譯)에 즉하여 그를 살피면 다음과 같다.
階位 계위 |
산스크리트 | 음역 | 羅什의 譯 라집의 역 |
통용 |
第一位 제1위 |
srota-āpanna | 須陀洹 수다원 |
入流 입류 |
預流 예류 |
第二位 제2위 |
sakṛdāgāmin | 斯陀含 사다함 |
一往來 일왕래 |
一來 일래 |
第三位 제3위 |
anāgāmin | 阿那含 아나함 |
不來 불래 |
不還 불환 |
第四位 제4위 |
arhat | 阿羅漢 아라한 |
(應供) (응공) |
阿羅漢 아라한 |
제1위는 수다원(須陀洹)이라 음역되는 것으로 ‘인간세의 미혹함을 끊고 성자의 영원한 평안함의 흐름(류流)에 방금 들어간(입入) 자’의 의미다. 즉 속세를 떠나 전문적인 조용한 비구승의 길에 초입(初入)한 자를 말하는 것이다. 초입의 예비단계라는 뜻을 살려 보통 ‘예류(預流)’라고 한다.
제2위는 사다함(斯陀含)이라 음역되는 것으로 원어를 직역하면 ‘한 번 오는 자’가 된다. 인도인의 이상은 ‘해탈(mokṣa)’이다. 해탈이란 곧 윤회(saṃsāra)의 굴레를 벗어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두 번 다시 생사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도록 벗어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은 최후의 가능성이다. 수행이 깊어져 가는 제2단계, 즉 삼결(三結: 유신견有身見, 계금취견戒禁取見, 의疑)을 끊어 버리고 탐ㆍ진ㆍ치의 삼독(三毒)의 죄업이 희박하게 된 이 단계에 오면, 천상(天上)이나 인간세(人間世)에 단 한 번만 다시 태어남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기쁠까? 즉 한 번만 더 윤회의 굴레로 들어갈 뿐, 더 이상의 윤회는 없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인간세(人間世)에서 이 과(果)를 얻으면 반드시 천상(天上)으로 가고, 다시 인간세로 돌아와 열반(涅槃, nirvāṇa)에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천상(天上)에서 이 과(果)를 얻으면 반드시 인간세로 가고, 다시 천상(天上)으로 돌아와 열반에 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사람은 반드시 한 번을 천상과 인간세를 왔다갔다(왕래往來) 하므로 ‘일왕래(一往來)’라 의역한 것이다. 보통 ‘일래(一來)’라고 부른다.
제3위는 아나함(阿那含)이라고 음역되는 것으로, 그 산스크리트 원의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 자(者)’이다. 이 경지는 상당히 높은 경지로, 욕계(欲界)의 번뇌를 완전히 절단시킨 사람으로, 사후(死後)에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에 태어날지언정, 절대 두 번 다시 욕계에는 태어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색계에서는 이미 각자(覺者)의 위치에 간 사람으로, 욕계로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불환(不還)’ ‘불래(不來)’로 의역된 것이다.
제4위인 아라한은 이미 첫머리에 소승ㆍ대승에 관한 개략에서 논의한 바대로, 소승불교에서 인간이 수행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다. 이미 학도(學道)가 완성(完成)되어 더 이상 배움이 필요없기 때문에 ‘무학위(無學位)’라 하고, 그 이하의 3위를 ‘유학위(有學位)’라고 하는 것이다. 아라한은 열반(涅槃, nirvāṇa)에 들었기 때문에 미망의 세계 즉 삼계(三界: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으므로 ‘불생(不生)’, ‘살적(殺賊)’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붓다의 위치보다는 아래로 설정된 것이다.
‘사향사과(四向四果)’라 할 때 ‘향(向)’은 수행의 목표를 말하며 ‘과(果)’는 도달한 경지를 나타낸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팔위(八位)가 된다.
향(向) | 과(果) | ||
예류(預流) | 향(向) | 예류(預流) | 과(果) |
일래(一來) | 향(向) | 일래(一來) | 과(果) |
불환(不還) | 향(向) | 불환(不還) | 과(果) |
아라한(阿羅漢) | 향(向) | 아라한(阿羅漢) | 과(果) |
우선 소명태자의 분(分)이름은 그가 만약 이 내용에 즉해서 얘기했다면, 이런 의미가 될 것이다. 이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어느 한 모습도 참으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수행자의 모습이 아니다. 어느 한 모습도 근원적으로 모습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본문의 ‘수다원과(須陀洹果)’는 수다원의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즉 수다원의 향(向, 발심)을 가진 자가 수다원의 과(果, 결과로서의 경지)를 획득했다할 때, 우리는 그 획득함을, 획득했다하는 자부감대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
우리 해인사판에는 ‘수다원’의 ‘다’가 타(陁)로 되어 있다. 기타 판본은 거의 다(陀)로 통용된다. 이하 ‘사다함(斯陀含)’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타(陁)는 다(陀)의 속자(俗字)이다. 본 경(經)에서는 속자(俗字)의 경우, 정자(正字)로 환원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세조본 역시 ‘타(陁)’를 썼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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