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뇨?”
“須菩堤!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見如來不?”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십이상견여래불?”
13-9.
“볼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삼십이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가 없나이다.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여래께서 말씀하신 삼십이상은 곧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삼십 이상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오니이다.”
“不也. 世尊! 不可以三十二相得見如來. 何以故? 如來說三十二相卽是非相, 是名三十二相.”
“불야. 세존! 불가이삼십이상득견여래. 하이고? 여래설삼십이상즉시비상, 시명삼십이상.”
13-10.
“수보리야! 만약 여기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갠지스강의 모래 수와 같은 많은 목숨을 다 바쳐 보시를 했다 하더라도, 또한 다시 여기 한 사람이 있어 이 경 중의 사구게 하나만이라도 받아지녀 딴 사람에게 설하였다 한다면 이 사람의 복이 더 많으리라.”
“須菩堤! 若有善男子善女人, 以恒河沙等身命布施, 若復有人於此經中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其福甚多.”
“수보리! 약유선남자선녀인, 이항하사등신명보시, 약복유인어차경중내지수지사구게등, 위타인설, 기복심다.”
32상(三十二相, dvātriṃśan mahā-puruṣa-lakṣaṇāni)은 제5분에서 이미 상설(辭說)하였다.
이제 아름다운 반복의 선율이 펼쳐지고 있다. 다음의 분에서는 여태까지의 우리의 논리적 논의를 매우 감성적인 텃치로 바꾸어 우리를 감동시키면서 포괄적으로 총술(總述)하고 있다. 다음 분은 참으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감동적이다. 콘체가 이를 혹평한 것은 콘체 자신의 감성의 메마름 때문일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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