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수보리는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말씀하신 바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須菩堤白佛言: “世尊! 如來無所說.”
수보리백불언: “세존! 여래무소설.”
13-5.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삼천대천 세계의 모든 티끌이 많다 하겠느뇨?”
“須菩堤! 於意云何? 三千大千世界所有微塵, 是爲多不?”
“수보리! 어의운하? 삼천대천세계소유미진, 시위다불?”
13-6.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須菩堤言: “甚多. 世尊!”
수보리언: “심다. 세존!”
13-7.
“수보리야! 그 모든 티끌을 여래는 설하기를, 티끌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비로소 티끌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여래는 이 세계가 세계가 아니라고 설파한다. 그래서 비로소 세계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須菩堤! 諸微塵如來說非微塵, 是名微塵. 如來說世界非世界, 是名世界.”
“수보리! 제미진여래설비미진, 시명미진. 여래설세계비세계, 시명세계.”
우리나라의 여타 번역이 바로 이 ‘시명(是名)’의 해석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이미 지적한 바 대로다. 반야의 사상은 근원적으로 우리의 ‘언어’의 세계를 부정한다. 그러나 비록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언어라는 방편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도 잘 뜯어보면 모순덩어리에 불과하다. 언어 그 자체가 파라독스 덩어리인 것이다. 아무 낙서도 없는 깨끗한 벽에 ‘낙서금지’라는 불필요한 팻말을 걸어놓는 것과도 같은 근본무명의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금강경』은 언어를 ‘묘유적(妙有的)’으로 긍정한다. 우리는 티끌을 티끌이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세계를 세계라 이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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