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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금강경 강해, 제십오분 - 15.3 若有人能受持讀誦 ~ 則爲荷擔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 본문

고전/불경

금강경 강해, 제십오분 - 15.3 若有人能受持讀誦 ~ 則爲荷擔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

건방진방랑자 2022. 11. 23.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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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여기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널리 사람들을 위하여 이를 설한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나니, 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고 가없는 불가사의 공덕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 이와 같은 사람들은 여래가 깨달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스스로 깨닫게 되리라.

若有人能受持讀誦, 廣爲人說, 如來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不可量不可稱無有邊不可思議功德. 如是人等, 則爲荷擔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

약유인능수지독송, 광위인설, 여래실지시인, 실견시인, 개득성취불가량불가칭무유변불가사의공덕. 여시인등, 즉위하담여래아뇩다라삼먁삼보리.

 

 

광위인설(廣爲人說)’()’ 자 같은 표현은 좀 후대의 전도주의적 성격(evangelistic tone)이 강화된 표현이다.

 

성서4복음서에도 이와 같은 전도주의적 입장은 강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마가복음의 끝머리에 나타나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16:15)’는 이야기도 원래 마가복음에 없던 텍스트로 후대에 구성되어 삽입된 것이다. 재미있게도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의 원형제일 먼저 쓰여짐, AD 65~75?으로 간주되는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부활이나 부활현현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다. 보통 땅끝까지 전파하라" 운운하는 따위의 전도주의는 사도행전첫머리에 나온 말이다(1:8). 모두 종단조직의 이해와 관계되는 말이다.

 

이 절에서는 불가사의(不可思議)’가 개념화되어 있으므로 그 뜻을 풀어 번역하지 않았다. ‘불가사의공덕(不可思議功德)’은 물론 무슨 신비스러운 공덕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가 단절된 무아(無我)의 공덕을 이름이다.

 

끝 귀에 나오는 하담(荷擔)’걸머멘다는 의미인데, 해당되는 원문은 ‘samāṃśena bodhim dhārayiṣyanti’로 되어 있다. 우이 하쿠쥬(宇井伯壽, 1882~1963)타카쿠스(高楠順次郎)의 제자. 옥스포드대학에 유학. 동경제대 교수가 됨. 인도철학의 대가. 나카무라는 그의 제자는 한역(漢譯)에 의거하여 ‘samāṃśena’‘svāṃśena’의 오사(誤寫)로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뜻은 자기의 어깨로써 보리를 걸머진다가 된다. 콘체의 번역은 ”All these beings, Subhuti, will carry along an equal share of enlightenment.“로 되어 있다.

 

티베트역문은 일체중생은 자기의 깨달음을 어깨에 멘다이다. 그 뜻을 종합해보면, ‘자기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어깨에 멘다는 관용구적 용법이 우리 독자에게 잘 전달되지 않으므로 나는 여래가 깨달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스스로 깨닫는다로 의역하였다.

 

"어깨에 멘다는 것은 내 자신의 것으로 한다, 내 자산으로 만든다, 내 힘으로 삼는다의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야 한다. 불교에는 자력(自力)과 타력(他力), 모든 가능성이 공존(共存)한다. 그러나 대승은 철저한 자력(自力)의 믿음 위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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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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