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그 많은 부처님 나라에 살고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을 여래는 다 아느니, 어째서 그러한가? 여래가 설한 갖가지 마음이 모두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로소 마음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佛告須菩堤: “爾所國土中所有衆生若干種心, 如來悉知. 何以故? 如來說諸心, 皆爲非心, 是名爲心.
불고수보리: “이소국토중소유중생약간종심, 여래실지. 하이고? 여래설제심, 개위비심, 시명위심.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이라는 표현에 내가 윗절에서 말한 ‘삶의 세계’의 의미가 잘 드러나고 있다. ‘갖가지’라는 우리말 속에는 ‘온갖 종류의’라는 ‘종(種)’의 뜻이 포함되어 있어 ‘약간종(若干種)’의 번역으로 썼다.
여기서 말하는 ‘심(心)’이란 원어로 ‘citta-dhārā’인데 이것은 실로 ‘의식의 흐름(Flow of Consciousness)’을 뜻한다. 과거의 경험에 기초한 의식 및 무의식이 현재ㆍ미래로 흘러가면서 우리의 의식작용이나 행동을 규정하고 있다는 의미의 맥락에서 사용되는 것이다. 진체(眞諦, Paramārtha, AD 499~569【중국불교사에서 4대 번역가 중의 한 사람. 서인도 아반티국의 학승】는 ‘심상속주(心相續住, 마음이 서로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어떤 아이덴티티를 유지한다)’라고 아주 좋은 번역을 내었고, 현장(玄奘)은 ‘심류주(心流注, 의식의 흐름)라 번역했으니, 이제 와서 제임스 죠이스(James Joyce, 1882~1941)【아일랜드 출신의 소설가】를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
불교는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심의 류주(流注)로 본다. 거대한 마음이 흘러가고 있는 세계가 곧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세계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물리학적 우주도 알고보면, 물리학자들의 마음이 흘러가고 있는 우주인 것이다. 우리는 너무 과도하게 그 하나의 세계에 객관성을 부여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불교라는 것은 이 세계를 인식하는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전환시키려는 거대한 사회운동인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혁명은 생각해봤을지언정, 과연 참으로 위대한 마음의 혁명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 땅의 젊은 이들이여! 일어나라! 혁명을 위하여! 일어나라! 깨어라! 마음의 혁명을 위하여! 동학혁명을 부르짖었던 조선의 민중은 보국안민(輔國安民) 척양척왜(斥洋斥倭)를 서슴치 않고 표방했는데, 지금 우리도 과연 그러한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민중은 너무도 자유로운 사고를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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