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그 까닭이 무엇이뇨? 수보리야!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所以者何? 須菩堤!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소이자하? 수보리!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여기에 이르면 누구든지, 선가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의 한 주인공 덕산선감(德山宣鑑, 780~865)의 그 유명한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덕산(德山)은 청원행사(靑原行思)에서 석두희천(石頭希遷)으로 이어지는 법통에서 나온 『금강경』의 대가(大家)였다. 아주 어려서 출가(出家)하였고, 율장(律藏)을 정구(精究)하고 성상(性相)의 제경(諸經)의 지취(旨趣)를 관통하였는데, 그가 『금강경』에 미쳐있었기 때문에 그를 ‘주금강(周金剛)’이라 불렀다【주(周)는 그의 속성(俗姓)이다】.
그가 남방(南方)에서 선풍(禪風)이 성행한다는 소리를 듣고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여 그 선풍(禪風)의 소굴로 뛰어들어 직지인심(直指人心) 운운(云云)하는 새끼들의 씨종자를 다 말려버리겠다고 결심하고, 그는 호남 예양, 당대의 최고의 선사 용담숭신(龍潭崇信)이 주석하고 있는 예강변으로 긴 여로를 떠났다. 자기가 지은 『청룡소초(靑龍疏鈔)』라는 『금강경』 주석서를 멜빵에 메고!
다 왔을 무렵, 해는 저물어가고 낙엽은 소조히 스치는데, 배가 심히 고파 참을 수가 없었다. 때마침 노상에서 한 노파가 빈대떡(유자油糍, ‘油餈’라고도 쓴다. 인절미 자)을 자글자글 부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돈은 없지, 끼웃끼웃 거리고 있는데, 노파가 말을 걸었다.
“거추장스럽게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것이 뭐유?”
“『청룡소초』니라.”
“소초라구? 뭔 경을 해설한 게요?”
“『금강경』이니라.”
“『금강경』이라구? 내 일찌기 항상 궁금한 게 있었는데, 그대가 내 물음에 대답을 하면 점심을 거져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딴 곳으로 꺼지게나!”
“어서 씹어보아라!”
우리말에 ‘점심’은 ‘lunch’를 의미한다. 그런데 중국말에서 ‘점심(點心)’【우리말의 ‘점심’을 많은 사람이 순수 국어로 아는데, 그것은 중국말의 점심(點心)을 그대로 옮긴 것일 뿐이다】은 ‘lunch’를 의미할 때도 있겠지만, 우리말에 더 정확히 해당되는 말은 ‘간식’이다. 사이사이 조금조금 먹는 비정통 식사를 말한다. 그런데 이 점심은 보통 배고플 때 먹기 마련이다. 배고프면 머리가 혼란스럽고 마음이 어두워진다. 점심(點心)이란 문자 그대로 ‘마음에 불을 켠다’는 뜻이다. 음식은 한의학적으로 화(火)다. 그것은 탄수화물 에너지다! 배고픈 마음에 퍼뜩 불을 켜는 데는 점심 이상이 없는 것이다. 바로 이 노파의 질문은 이 점심(點心)이라는 말의 의미의 펀(pun: 쌍관희어雙關戱語)과 관련된 것이다.
“여보게 청년! 난 말이지, 옛날부터 『금강경』에 있는 이 말이 뭔 뜻인지 궁금했거든. 거 중간쯤 어디께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이란 말이 있지 않나?”
고개를 끄떡이는 덕산에게 노파는 대짜고짜 다그친다.
“야 이눔아! 근데 넌 지금 뭔 마음(심心)을 점(점點) 하겠다는 게냐?”
이 노파의 한마디는 『금강경』에 관한 한 더 이상 없는 아뇩다라 천하(天下)의 명언(名言)이다. 여기서부터 흥미진진한 덕산의 오도(悟道)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 과연 덕산은 뭐라 말했을까? 이놈들아! 뭘 꾸물거리는 게냐! 내 책을 보아라! 『화두(話頭), 혜능과 셰익스피어』(통나무, 1998) 제4칙(第四則) 부분에 상술되어 있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픽션이 아닐 것이다. 당나라 선승들의 뼈저린 구도적 삶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노파도 결코 픽션 속의 인물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절깐 앞에서 빈대떡을 팔고 있는 조선의 할머니 중에, 지금도 『금강경』을 암송하고 있는 분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덕산 같은 큰스님에게 이와 같은 통찰력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지혜를 가지신 분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들은 단지 침묵할 뿐인 것이다.
지혜는 지식의 단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성의 교만이나 오만을 불식하지 않으면 우리는 『금강경』의 지혜로 영원히 입문할 수 없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불행하게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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