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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마복음한글역주, 제107장 - 가장 큰 양 한 마리 본문

고전/성경

도마복음한글역주, 제107장 - 가장 큰 양 한 마리

건방진방랑자 2023. 3. 26.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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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

 

 

가장 큰 양 한 마리

 

 

107

1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라는 일백 마리의 양을 가지고 있는 목자와도 같다. 2백 마리 중에 가장 큰, 그 한 마리가 무리를 떠났다. 목자는 아흔 아홉 마리를 버려두고 그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헤매었다. 3그리고 이 모든 수고를 끝내었을 때, 목자는 그 양에게 말했다: ‘나는 아흔아홉 마리보다도 너를 더 사랑하노라.’”

1Jesus said, “The kingdom is like a shepherd who had a hundred sheep. 2One of them, the largest, went astray. He left the ninety-nine and sought the one until he found it. 3After he had gone to this trouble, he said to the sheep, ‘I love you more than the ninety-nine.’”

 

 

이것도 큐복음서에 속하는 너무도 유명한 길 잃은 양(The Lost Sheep)’의 비유이지만, 도마자료가 큐자료로 변형되는 과정은 참으로 놀랍다. 어떠한 경우에도 큐자료에서 도마가 나왔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양자가 다 그 나름대로 독특한 의미구조를 지니고 있다.

 

 

(18:12~14)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 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小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15:4~7)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이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 하겠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마태와 누가의 전승을 놓고 과연 어느 것이 더 오리지날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의견대립이 팽팽하다. 결정하기 곤란하다마태 오리지날리티: Bultmann, Linnemann, J. Dupont, Schulz; 누가 오리지날리티: W. Pesch, Stuttgart, K. E. Bailey. 그러나 결국 하나의 비유가 각기 다른 전승으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가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처신을 비판하는데 대한 대답으로서 이 비유를 썼다. 그러니까 누가는 이 비유를 그의 적들에게 발한 것이다. 그 적들의 비판은 예수가 세리들과 죄인들을 영접하고 그들과 공동식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비유는 죄인 하나라도 회개하기만 한다면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로운 아흔아홉 사람보다 더 귀중하다고 하는, 이른바 구원론적인 열정에 더 강조점이 있다.

 

그러나 마태의 비유는 예수의 제자들에게 말하여진 것이다. 따라서 마태의 비유는 공동체의 사람 중에서 단 하나의 연약한 자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즉 초기교회공동체에 있어서 연약하고 소외된 소수에 대한 목자적 관심(pastoral care)을 강조하는 데로 논지가 모아지고 있다.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그러나 누가가 되었든, 마태가 되었든 공통된 것은 100마리의 양 모두에 대한 보편적 관심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외되었거나, 연약하거나, 죄를 지었거나, 어느 한 개체에 대한 관심은 소중하다는 것이며, 그 개체가 100마리 중에 누구든지 될 수가 있다. 한 마리를 찾는 기쁨에 그 강조점이 있다 할지라도 아흔아홉 마리를 본질적으로 소홀히 한다는 뜻은 아니다. 100마리에 대한 보편주의적 가치가 기본적 골격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도마에서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아흔아홉 마리와 한 마리는 근원적으로 다른 가치관의 소산이다. 한 마리는 백 마리 중의 임의의 한 마리가 아니라, 아흔아홉 마리와 본질적으로 대비되는 한 마리인 것이다. 그 한 마리는 그 중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것이다.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와 비교도 안되는 가치있는 소중한 한 마리인 것이다.

 

여기 아흔아홉 마리의 떼는 일상적 자아를 상징하며 군중 속에 파묻혀 사는 비본래적인 자아의 모습이다. 이에 반해 한 마리는 본래적인 자아의 모습이며, 내가 획득해야만 하는 나의 본래의 하나된 자로서의 모습이다. 이 한 마리는 아흔아홉 마리로부터 떠나야만 한다. 그것은 실종이나 길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흔아홉 마리를 버리는 결단이다. 목자 또한 아흔아홉 마리를 버려두고 그 한 마리를 향해 고독한 여행을 떠난다. 이 모두가 버림고독방랑무소유를 상징하고 있다. 숫타니파타에도 이런 구절이 있었다: “어깨가 딱 벌어져 연꽃처럼 늠름한 거대한 코끼리가 그의 무리를 떠나 가고 싶은 대로 숲속을 노닐듯, 거 광야를 가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홀로 가거라.” 8에서 작은 고기들과 큰 고기 한 마리가 이미 논의되었고, 76에서도 매매할 많은 상품들과 단 하나의 진주가 논의되었다. 물론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 로기온이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태-누가의 길 잃은 양의 비유와는 본질적으로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이러한 도마자료가 큐복음서(마태-누가)에 의하여 변용된 과정은 비록 그것이 다른 맥락에서 왜곡되었다 할지라도 왜곡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 나름대로의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새로운 전승을 창조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마 도마자료가 변형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가장 긍정적 수확 중의 하나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인간에 대한 평등주의적 가치관, 그리고 개체에 대한 존중, 그리고 약자나 소외된 자 그리고 죄지은 자에 대한 관심과 구원론적 열정은 기독교를 인류의 고등종교로서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이다.

 

 

(Job)은 이슬람에서도 중시되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다. 욥은 사탄의 질시를 받아 건강과 부와 가정을 잃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잃지 않고 7년간을 이 우물 옆 동굴에서 비참하게 살았다. 결국 욥은 회복된다. 그리고 내가 서있는 이 우물의 물로 온 몸의 부스러기가 씻은 듯이 낳았다. 선한 자가 이 세상에서 별 악업 없이도 당하는 고통에 대한 치열한 인종을 말하는 욥기는 세계 문학사의 한 금자탑으로 꼽힌다. 칼라일(Carlyle)은 역사가 있은 이후 붓으로 쓴 것 중에 가장 숭고한 걸작이라고 말했다. 나의 어머니도 항상 말하시곤 했다: “내가 구악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글이 욥기이다.” 그 옵의 수난의 현장이 바로 여기 우르파라고 이슬람사람들은 믿는다.

 

 

인용

목차

본문

성경

주제상관도표

기독교성서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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