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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선진 제십일 - 10. 문인들이 공자의 말을 어기고 안연을 후장지내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선진 제십일 - 10. 문인들이 공자의 말을 어기고 안연을 후장지내다

건방진방랑자 2022. 12. 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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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문인들이 공자의 말을 어기고 안연을 후장지내다

 

 

11-10. 안연이 죽었다. 공자의 문인들이 그의 장례를 후하게 치르기를 원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안된다.” 그런데 문인들이 후하게 치르고 말았다.
11-10. 顔淵, 門人欲厚葬之, 子曰: “不可.” 門人厚葬之.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안회는 말이다, 날 보기를 아버지처럼 대했는데, 나는 그를 자식처럼 소담(素淡)하게 대해주지 못했구나. 이건 내 잘못이 아니로다. 진실로 너희들이 잘못한 것이로다.”
子曰: “回也視予猶父也, 予不得視猶子也. 非我也, 夫二三子也.”

 

7장부터 10장까지 한번 원문을 봐주기 바란다. 원문의 시작구에서 놀라운 일치점을 발견할 것이다. 바로 안연사(顔淵死)’라는 짤막한 한마디로 모든 파편이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편집자들의 놀라운 감성을 엿볼 수 있다. 안연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모은 것에다가 안연사라는 시작구를 관()하는 이 양식적 감각은 참으로 탁월한 발상이다. ‘안연이 죽다.’ 양식적 도입부이면서 절묘한 감성적 분위기를 흥기(興起)시킨다. 중국인들의 후장습관은 예나 지금이나 뻑쩍찌끌한 것이다. 내가 대만에 유학하고 있던 시절에도 기숙사 창밖으로 지나가는 장례행렬은 가관이었다.

 

안회는 날 아버지처럼 아무 격 없이 대했는데, 나도 그를 아무런 격식 없이 대해주고만 싶었는데 공자는 아마도 안회를 자로나 자공 몇몇의 제자들과 함께 뒷산에 묻어주고 혼자 무덤을 쓰다듬으며 눈물짓고 조용히 끝냈으면 했을 것이다. 분명 공자는 자식인 백어가 죽었을 때는 그렇게 소탈한 장례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회는 이미 비대해져버린 공문학단의 영수(領首)급 인물이었다. 그 밑에 제자들이 주렁주렁, 그들은 공문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후장 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인(門人)’을 안회의 제자로 보려는 주석은 잘못된 것이다. 문인은 공문 전체를 가리킨 것이다. 그리고 그와 생사고락을 같이 한 친구들이다. 마지막 공자의 말을 보라: “회야(回也), 시여유부야(視予猶父也), 여부득시유자야(予不得視猶子也). 비아야(非我也), 부이삼자야(夫二三子也).’ 놀라웁게도 ()’라는 어조사가 다섯 번이나 나오고 있다. 공자의 정감어린 말투가 현장감 있게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에는 격한 감정에 거리를 두는 듯한 포즈의 의미가 숨어 있는가 하면, 자신의 감정을 밀집시키면서 제자들을 혹독하게 나무라는 그런 살아있는 인간의 어조가 여실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다.

 

 

상구(喪具)는 가세(家勢)의 형편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沃案, 예기』 「단궁상에는 상구를 미리 다 구비해놓는 것을 군자는 부끄럽게 여긴다[喪具, 君子恥具].’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자유(子游)가 상구에 관해 묻자 공자가 대답하는 말에 상기의 말이 나온다: 칭가지유무(稱家之有亡). 가난하면서도 후하게 장사지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만류하신 것이다. (門人厚葬之) 대저 그 아비 안로가 들어준 것일 게다. (子曰) 아들 백어를 장사지낼 때 마땅함을 얻은 것처럼 소탈하고 정겨웁게 안회에게 못해준 것을 한탄하심으로써, 문인들을 책망하시는 것이다.

喪具稱家之有無, 貧而厚葬, 不循理也. 故夫子止之. 蓋顔路聽之. 歎不得如葬鯉之得宜, 以責門人也.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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