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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선진 제십일 - 7. 안연이 죽자 그의 아버지가 외곽을 사주길 공자에게 청하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선진 제십일 - 7. 안연이 죽자 그의 아버지가 외곽을 사주길 공자에게 청하다

건방진방랑자 2022. 12. 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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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안연이 죽자 그의 아버지가 외곽을 사주길 공자에게 청하다

 

 

11-7. 안연이 죽었다. 그 아버지 안로(顔路)가 공자의 수레를 팔아 관 밖의 화려한 외곽을 만들어주실 것을 청하였다.
11-7. 顔淵, 顔路請子之車以爲之槨.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잘난 자식이든 못난 자식이든, 각기 그 부모에게는 다 귀한 자식일 뿐이다. 나는 내 아들 리()가 죽었을 때 관은 만들어주었으나 외곽은 만들어주지 못했다. 그냥 도보로 걸어다닐 생각을 하고서 내 아들에게 곽을 만들어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래도 대부들과 같이 다니는 사람, 어찌 수레 없이 걸어다닐 생각을 하고 네 아들 곽을 만들어주겠느냐?”
子曰: “才不才, 亦各言其子也. 鯉也死, 有棺而無槨. 吾不徒行以爲之槨. 以吾從大夫之後, 不可徒行也.”

 

안회의 죽음은 공자에게는 청천벽력이었고, 지극한 슬픔을 안겨준 절망 의 심연이었다. 그러한 정신적 충격 속에서도 한 치의 상식도 양보하지 않는 공자의 한 정신! 참으로 박수를 보내고 또 보내야 하지 않을까? 안회의 아버지 안로(顔路)도 공자의 초기제자였다. 공자보다 6세밖에 어리지 않다. 바로 노나라 곡부 성내 사람이다. 성이 안씨, 이름이 무유(無繇), 자는 로(), 혹은 계로(季路). 아주 초기부터 공자의 측근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오랜 친숙함 때문에 약간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안로의 요청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지만, 그것을 대놓고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공자는 가차없이 논박해버린다. 역시 범인은 아니다.

 

공자의 말씀 중에, ‘재부재(才不才)’는 네 아들 안회는 재주가 출중한 인물임에 틀림없고, 내 아들 리()는 재주 없는 못난 놈에 틀림없다는 뜻을 암시한다. 그래도 부모에게는 다 같은 자식이다 운운. 참으로 평범한 부모의 심정을 있는 그대로 대변해준다.

 

이오종대부지후(以吾從大夫之後)’라는 말을 놓고 갑론을박이 많으나 내가 번역한 느낌이 가장 공자의 평상심을 대변한 말일 것이다.

 

()’()’ 밖에 굵은 재목으로 다시 짜는 것인데 수레를 팔아야 할 정도로 돈이 많이 드는 모양이다. 아마도 단단한 괴목 같은 나무로 두껍게 짜는 것일 게다. 투탕카문(Tutankhamun, BC 1336~1327 재위)의 경우 미라를 싼 화려한 관만 3, 그리고 석관 하나, 그리고 석관을 싼 외곽만 4, 8겹이다. 8겹이 모두 극도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카이로국립박물관(The Egyptian Museum in Cairo)에 진열되어 있다.

 

 

안로(顔路)’는 안연의 아버지이다. 이름이 무유(無繇)이며 공자보다 여섯 살 아래인데, 공자가 가르침을 베풀기 시작한 아주 초기로부터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은 관을 둘러싸는 또 하나의 외관(外棺)이다. ‘청위곽(請爲槨)’은 공자의 수레를 팔아서 곽을 사자고 요청한 것이다.

顔路, 淵之父, 名無繇. 少孔子六歲, 孔子始敎而受學焉. , 外棺也. 請爲槨, 欲賣車以買槨也.

 

()’는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이다.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沃案. 뿐만 아니라 안회의 죽음이 백어의 죽음 후에 온다. 어떤 주석가는 안회가 죽었을 때 백어가 살아있었다고 고증하지만 헛소리일 뿐. 아들 리()의 재주가 안연의 재주에는 못 미치지만, 자기나 알로나 아버지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 자식일 뿐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공자가 이때 이미 벼슬길에서는 벗어나 있었지만 대부의 반열에서 대접받고 있었다. ‘대부의 뒤를 따라간다고 표현하신 것은 단지 당신의 처지에 대한 겸손한 표현일 뿐이다.

, 孔子之子伯魚也, 先孔子卒. 言鯉之才雖不及顔淵, 然己與顔路以父視之, 則皆子也. 孔子時已致仕, 尙從大夫之列, 言後, 謙辭.

 

 

주희의 주석이 명료하다.

 

 

호인이 말하였다. “공자가 구관(舊館)의 사람의 상을 당하였을 때는 부속말[()]을 벗겨 부의로 준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안의 청을 거절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라는 것은 곽이 없이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부속말은 없다가도 다시 장만하면 되는 것이나, 대부급의 사람들이 도보로 걸어다닐 수는 없는 것이고, 또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수레는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시장에 내다팔 수 없는 것이다. 평소 알고 있는 궁핍자가 내 은혜를 감사히 여긴다고 해서 억지로 그 뜻에 부합하려고만 한다면 그것이 어찌 성심(誠心)이고 직()한 도리이겠는가? 혹자는 말하기를, 군자가 예를 행하는 것은 자기자신의 재물의 있고 없음을 보아서 판단한다고 하였는데, 대저 군자의 재물 씀새란 의로움의 가부(可否)에 의하는 것이지, 어찌 재물이 있고 없고를 보아 판단한다는 말인가?”

胡氏曰: “孔子遇舊館人之喪, 嘗脫驂以賻之矣. 今乃不許顔路之請, 何邪? 葬可以無槨, 驂可以脫而復求, 大夫不可以徒行, 命車不可以與人而鬻諸市也. 且爲所識窮乏者得我, 而勉强以副其意, 豈誠心與直道哉? 或者以爲君子行禮, 視吾之有無而已.’ 夫君子之用財, 視義之可否, 豈獨視有無而已哉?”

 

 

호인의 주석은 전혀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변명일 뿐이다. 성인의 뜻을 모르면 침묵함이 옳다. 자신의 좁은 소견으로 공자의 넓은 생각을 변명하고 있으니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 공자는 변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공자는 그냥 상식적으로 행동했을 뿐이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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