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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선진 제십일 - 8.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선진 제십일 - 8.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건방진방랑자 2022. 12. 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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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11-8. 안연이 죽자, 공자는 울부짖었다: “~!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11-8. 顔淵. 子曰: “! 天喪予! 天喪予!”

 

안연의 죽음, 가장 신뢰하던 제자의 상실은 공자에게 더없는 비탄과 절망과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자기 학문의 계승자의 상실은 공자에게 있어서는 자기 존재기반의 상실이었고, 실존의 파멸이었다. 공자는 예수와는 달리 역사의 신(God of History)’을 믿었다. 인문전통 그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유일한 계시였다. 그것이 사문(斯文)이었다. 이 사문을 가장 정확하게 후대의 역사 속에 서 이어가리라고 믿었던 그 실존의 고리가 끊겨나가는 절망감은 실로 실존의 그룬트(Grund, )의 붕괴일 뿐 아니라 역사의 붕괴였고, 하늘의 붕괴였다. 속 좁은 주석가들은 안회는 공자의 정치적 꿈을 실현하는 데 가장 필요했던 조력자였기 때문에 공자의 절망감이 컸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미 노경의 공자에게 그런 계산이 문제될 리가 없다. 안회는 공자의 미래였다. 그 모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역사는 매우 아이러니칼하다. 공자의 비통과는 달리 안회의 죽음이 있었기에 공자는 오늘의 공자가 될 수 있었다. 사문의 공자가 아닌 째즈의 공자! 도통의 공자가 아닌 전 인류의 보편적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공자가 된 것이다. 안회가 장수했더라면 공자는 안회의 공자가 되었을 뿐이고, 유교는 안회의 유교가 되었을 것이다. 오늘의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는 유교는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 공자의 울부짖음 속에는 인간의 선의지를 담보해주는 절대적 존재로서의 하늘에 대한 신뢰의 동요가 깃들어있다. 그러나 이러한 동요야말로 공자를 공자다웁게 만들고, 인간을 인간다웁게 만드는 것이다. 시경의 민요에서 비치고 있는 하늘에 대한 비탄들! 이 모든 것이 결국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는 변증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늘이 나의 존재를 떠받쳐주고 있다는 믿음과 그 믿음의 동요 속에서 오히려 인간은 더 강렬한 절대적 믿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불가지의 영원한 타자를 전제하면서도, 그에 대한 구체적 원망의 언사를 발하는 공자의 걱정이야말로 인간의 종교성의 심원이라고 할 것이다.

 

천상여(天喪予)’는 보통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였다라고 번역하지만, 그것은 ()’이라는 훈에 너무 얽매인 번역이다.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가 훨씬 자연스러운 우리말이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e'-loi, e-lo'i, la'-ma, sa-bakh-tha'-ni)?’(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를 외쳤다. 예수는 오히려 그 순간에 인성을 확인한 것이다. 공자는 안회의 죽음의 그 순간에 신성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은 거성이다. ()’는 상심하고 애통해하는 소리이다. ()가 역사에서 전해지지 못하는 것을 애도함이 마치 하늘이 자기를 버리셨다고 하는 느낌으로 표현한 것이다.

, 去聲. , 傷痛聲. 悼道無傳, 若天喪己也.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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