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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제주도 자전거 일주기 - 5. 제주를 보니 열정이 샘솟는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제주도 자전거 일주기 - 5. 제주를 보니 열정이 샘솟는다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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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주를 보니 열정이 샘솟는다

 

 

비행기는 1시간 정도를 날아 마침내 제주에 도착했다. 2011년에 제주에 처음 왔을 때의 그 설렘이 지금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 같은, 그리고 이곳이라면 무엇이든 관념에 갇히지 않고 맘껏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말이다.

 

 

비행기는 날아갈 때보다 떠오를 때와 내려앉을 때의 기분이 좋다.    

   

 

제주를 마주치는 순간, 전혀 다른 나를 발견하다

 

그런데 더 재밌는 점은 마침내 제주가 한 눈에 내려 보이는 순간부터 이상하리만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분명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별 다른 계획도, 별 다른 의미도 없이 갔다가 오자고만 생각했었는데, 제주도가 보이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파고를 치며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활화산처럼 타올랐기 때문이다.

 

 

2011년 10월에 제주를 달릴 수 있던 그 때.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았다. 

 

보통 사람들은 이미 머릿속에 계획이 있고 그 계획을 실천해가는 게 삶이라 생각할 것이다. 물론 나 또한 그런 생각으로 여태껏 살아왔고, 그게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토종단 때나 지금 이 순간을 보고 있노라면, 그 말은 100% 맞는 말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나의 머릿속에 짜인 계획이 일상으로 스며들어 삶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나를 뒤흔들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삶속에 나를 던져놓아 살아가려다 보니 삶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확고한 생각이 있어 그리 사는 게 아니라, 살다 보니 그리 살게 됐고 그리 생각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단재학교에서 들어와 여태껏 교사로 살 수 있는 건 나에겐 말로 할 수 없는 축복이었다. 그 덕에 교육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으며, 아이들과의 관계에 대해 심사숙고할 수 있었다. 바로 그런 고민들을 단재학교는 해도 되는 곳이었고, 그걸 더 깊이 고민해도 괜찮은 곳이었다. 그래서 얼렁뚱땅 교육학, 흐리멍덩 배움학이란 카테고리를 만들어 교육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너는 원래 교육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그래서 다양한 교육에 대해 말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라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뭔가 그럴 듯하게 포장된 말에 다름 아니다. 그건 나라는 확고한 상이 있고 그게 어떤 환경이든 휩쓸리지 않고 발현된다고 보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단재학교에서 교사로 일하지 않고 학원 강사나 과외 선생님을 했다면 지금과 같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하며 더 경쟁을 시켜야 한다거나, 좀 더 분발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나란 인간이 어디서 독야청청하게 솟아난 인간이 아니라, 처한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흘러가는 인간일 뿐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재학교는 교육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생각하게 하고 고민한 것들을 맘껏 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에 감사할 뿐이다.

이처럼 제주도와 마주치는 순간, 비행기를 탈 때만 해도 느끼지 못했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고, 무엇이든 이곳에서 하고 싶다는 의욕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순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혼자 떠나는 여행을 나는 무척이나 사랑한다.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여행도 좋지만, 혼자 떠날 수 있다면 맘껏 떠나보시라. 이렇게 살짝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하자 마음은 앞을 향해 무작정 나아가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지만 내가 어쩔 수 없게 된 거다. 이런 작은 동요가 이번 여행의 컨셉을 한순간에 바꿔 버렸다.

 

 

▲  Welcome To Jeju! 하지만 제주와 마주치는 순간, 온갖 생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만남은 맛남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제주여행의 특징은 거의 계획을 세우지 않고 무작정 왔다는 점이다. 물론 큰 틀은 45일 동안 머물며 처음 이틀은 제주시에서, 그 다음 이틀은 서귀포시에서 그때의 기분에 따라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때론 한가롭게 바다가 보이는 커피숍에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자는 거였다.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제주로 오는 내내 신나게 바깥으로 보이는 광경에 심취해 사진을 열나게찍었다(비행기를 타는 건 아직까지도 매우 신나는 일임^^). 그렇게 어느새 뭍은 사라지고 남해 바다의 청명함이 보이는가 싶더니, 바다 한 가운데 감추어진 보배처럼 제주의 푸르른 비경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한다. 비행기에서 이제 곧 착륙할 예정이오니, 안전밸트를 매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당연히 제주행 비행기를 탔으니 제주를 보게 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막상 눈앞에 제주가 보이니, 마음이 사정없이 들뜨고 온갖 의욕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것이야말로 만남이 주는 말로는 정의할 수 없는 선물이라 할 수 있다. 만날 때 우린 그 전엔 전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3를 불러내게 되며 그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의 향로로 뚜벅뚜벅 걸어가게 되니 말이다. 이 말이 어렵다면 아래에 인용한 글을 읽으면 좀 더 쉽게 다가올 것이다.

 

 

교육의 중심은 가르침과 배움의 만남에 있습니다. 그 만남 속에서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것이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교사에게도 아이에게도 속하지 않는 것, 그것을 외부라 해도 좋고, ‘타자’, ‘3라 해도 좋습니다. 교육에서 교사 이외의 어떤 주주도 아이와의 대면 상황에서 그러한 제3자를 불러낼 수 없습니다. 오직 교사와 아이의 대면 상황에서만 제3자가 나타납니다. 바로 그곳이 여기와는 다른 장소, 여기와는 다른 시간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회로가 열리는 기적적인 지점입니다. 교사가 그 이외의 주주와 전혀 다르게 기능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역할 때문인 것입니다.

-우치다 타츠루 저, 박동섭 역, 교사를 춤추게 하라, 민들레 출판사, 2012, 43~44

 

 

이 책에서 저자는 학교가 사회의 요구에 맞춰 사용자의 입김이 대폭 반영되어 교육과정이 편성되기에 학교는 점차 정글이 되어가 교사와 학생은 기계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니 교사가 사용자의 입장이나 주주의 입장이 아닌 교사 본연의 입장으로 학생들과 대면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럴 때 3(새로운 것)’가 탄생한다고 보았다. 즉 교육의 본질을 취업률이나 사회 적응의 문제가 아닌 만남과 어우러짐으로 본 것이다.

그걸 달리 말하면 어떤 것이든 제대로만 만날 수가 있다면, 전혀 다른 관계로의 진입이 가능하며 여태껏 살아온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럴 때 만남은 맛남이 되고, 서로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작년 12월에 아이들과 함께 짐을 나르고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 만남이 맛남이 되는 순간들.  

 

 

 

타발로 하이킹 덕에 관덕정을 보다

 

이처럼 제주와 마주치는 순간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만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상상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됐다. 이미 두 번의 제주여행을 자전거를 타며 했기 때문에, 이번엔 절대 자전거는 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여행을 하고 싶었고, 좀 여유를 부리는 여행을 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제주를 보는 순간 가슴이 뛰며 대중교통을 이용할 게 아니라, 자전거를 빌려서 가고 싶은 곳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해본 경험이 좋은 추억으로 남은 탓(?)에 막상 떠날 때와는 180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12년 4월 11일에 아이들과 제주를 돌았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공항에 내려 2011년 당시에 자전거를 대여한 적이 있는 타발로 하이킹이란 대여점을 폭풍검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공항에서 바로 그곳에 가는 버스가 있더라. 그래서 별로 고민하지 않고 그 버스에 몸을 실었고 제주목관아가 있는 곳에서 내렸다.

제주목관아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져 제주의 행정을 총괄하던 곳이다. 바로 그 앞엔 관덕정觀德亭(활 쏘는 것은 성대한 덕을 나타내는 것이다射者, 觀所以盛德也.)이란 정자가 위용을 자랑하며 서있는데, 이곳에 수령이 올라 군사훈련을 지휘하고 감독했다고 하더라. 제주목관아를 둘러볼까 하다가 지금은 자전거를 빌리는 게 먼저라 생각해서 곧바로 북초등학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관덕정, 정말 우람한 정자다.  

 

 

거기서 조금 더 걸으니 2011년 당시의 모습 그대로 타발로 하이킹이 있더라. 오랜만에 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게 있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런데 막상 가게에 들어가려 다가가보니 문은 굳게 닫혀 있고 가게 안은 텅 비어 있더라.

아마 처음부터 자전거를 빌릴 생각이었다면 계획이 어긋났다며 황당해하고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엔 무작정 떠난 것이고, 공항에 와서야 자전거를 생각한 것이니 아무래도 괜찮았다. 도리어 이렇게 생각대로 안 되고, 보란 듯이 어긋나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묘미라는 생각까지 들며, ‘제대로 된 여행을 하고 있구나라는 긍정적인 생각까지 들더라. 더욱이 두 번의 도보여행 땐 스마트폰도 없이 지도만 가지고 다닐 때라 이런 상황에선 많이 당황했었는데, 지금은 무려 언제 어디서든 모든 걸 검색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있으니 조금도 놀랄 필요가 없다. 물론 스마트폰이 없이 떠났던 두 번의 도보여행이야말로 정말 여행다운 여행이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왼쪽이 2011년 당시의 모습, 그리고 오른쪽이 지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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