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가르침을 아들에게 남긴 까닭
훈자오설 병서(訓子五說 幷序)
강희맹(姜希孟)
訓子五說者, 無爲子爲其子龜孫作也.
曷爲訓之? 訓其所不逮也. 曷不自揆而濫爲之說歟? 其言則俚, 而其意則古昔聖賢之遺意也. 何以不敢直斥, 而微示其意歟? 父子之間, 言猶婉也.
龜兒之解官歸學也, 或云: ‘爵祿不可辭也.’ 或云: ‘學業當及時也.’ 所論不同, 使人不能不眩於去就. 於是諭以大義, 令赴學籍, 猶恐有所闕漏, 略示筆談, 且勖之曰: ‘日省乎此, 深究其旨, 則去就之分明, 而進德之事熟, 靡不爲涓埃之補.’
竊觀子朱子與長子受之書曰: ‘大抵勤謹二字, 循之而上, 有無限好事, 吾雖未敢言, 而竊爲汝願之; 反之而下, 有無限不好事, 吾雖不欲言, 而未免爲汝憂之. 汝若好學在家, 足以讀書作文, 講明義理, 不待遠離膝下, 汝旣不能, 今遣汝者, 恐汝在家, 汨於世務, 不得專意. 汝若到彼, 奮然勇爲, 力改故習, 一味勤謹, 則吾猶望焉. 不然則與在家一般, 他日歸來, 只是舊時伎倆人物, 汝將何面目, 歸見父母親戚鄕黨故舊歟? 無忝爾所生, 在此一行.’
噫! 古昔賢哲, 父子之間, 勸勉之思, 懇惻之情, 亦足想見矣. 夫父之於子, 猶農夫之於嘉穀也, 養穀不成, 終罹餓餒之患; 敎子無成, 竟致孤危之禍. 其糞壤耘耨之法, 訓誨厲翼之方, 曷嘗少弛於心歟? 而况垂老之年, 支多不榮, 只留雙顆, 夏日冬夜, 追悼無期, 稠人衆會, 念至涕零, 居然爲一段恠物, 爲汝冀望之情, 當如何耶? 此吾說之所以作也. 爲人父者, 體吾情而敎子; 爲人子者, 㦖吾情而孝親, 則庶幾乎吾說之非空言矣.
龍集戊子季夏旣望, 晉山後學無爲子姜景醇, 序. 『私淑齋集』 卷之九
해석
訓子五說者, 無爲子爲其子龜孫作也.
아들을 가르치는 다섯 가지 말[訓子五說]이란 무위자(無爲子, 희맹의 號)가 아들 귀손(龜孫)을 위해 지은 것이다.
曷爲訓之? 訓其所不逮也. 曷不自揆而濫爲之說歟? 其言則俚, 而其意則古昔聖賢之遺意也.
어찌 그것을 가르칠까? 생각지 못한 걸 가르친다. 어찌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함부로 설(說)을 짓는 걸까? 그 말은 속되지만 그 뜻은 옛 성인과 현인이 남겨둔 뜻이다.
何以不敢直斥, 而微示其意歟? 父子之間, 言猶婉也.
어째서 감히 곧장 배척하지 않고 은미하게 그 뜻을 보인 걸ᄁᆞ? 부자지간이라 말이 오히려 부드러운 것이다.
龜兒之解官歸學也, 或云: ‘爵祿不可辭也.’ 或云: ‘學業當及時也.’ 所論不同, 使人不能不眩於去就.
귀손(龜孫)이 관직에서 나와 학문에 복귀함에 혹자는 ‘벼슬과 녹봉은 사양할 게 없다.’고 말하고 혹자는 ‘학업은 마땅히 때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해서 말하는 게 같지 않아 사람에게 거취에 대해 현혹되지 않음이 없다.
於是諭以大義, 令赴學籍, 猶恐有所闕漏, 略示筆談, 且勖之曰: ‘日省乎此, 深究其旨, 則去就之分明, 而進德之事熟, 靡不爲涓埃之補.’
이에 큰 뜻을 가르쳐 학적(學籍)에 달리게 했지만 오히려 빠진 게 있음을 걱정해서 대략적인 것은 필담으로 보여줬고 또한 ‘날로 이것을 살피고 깊이 그 뜻을 궁구하면 거취가 분명해지고 덕에 나아가는 일이 익숙해져서 잘못을 버리는 데 보탬이 되지 않음이 없다.’라고 그에게 힘주어 말한다.
竊觀子朱子與長子受之書曰: ‘大抵勤謹二字, 循之而上, 有無限好事, 吾雖未敢言, 而竊爲汝願之; 反之而下, 有無限不好事, 吾雖不欲言, 而未免爲汝憂之.
가만히 주자께서 큰 아들 수지(受之)에게 준 편지를 보니 다음과 같다. ‘대체로 부지런함[勤]과 조심함[謹]이란 두 글자를 따라 올라가면 끝없는 좋은 일이 있으니 내가 비록 감히 말하지 않아도 속으론 너에게 원하는 것이고 두 글자를 거슬러 내려가면 끝없는 안 좋은 일이 있으니 내가 비록 말하려 하지 않아도 너를 위해 그걸 걱정하길 피하지 못한다.
汝若好學在家, 足以讀書作文, 講明義理, 不待遠離膝下, 汝旣不能, 今遣汝者, 恐汝在家, 汨於世務, 不得專意.
네가 만약 배움을 좋아한다면 집에 있더라도 넉넉히 책을 읽고 문장을 지어 의리를 강론하고 밝히리니 슬하를 멀리 떠날 걸 기다릴 게 없지만 너는 이미 할 수 없어 이제 너를 보내는 것은 네가 집에 있을 적에 세상의 일에 골몰해 전념할 뜻을 얻지 못함이 걱정되서다.
汝若到彼, 奮然勇爲, 力改故習, 一味勤謹, 則吾猶望焉.
네가 만약 그곳에 가서 분연히 용기를 내고 힘써 옛날의 습관을 고치며 한결같이 근근(勤謹)을 맛들인다면 나는 오히려 희망스러워할 거다.
不然則與在家一般, 他日歸來, 只是舊時伎倆人物, 汝將何面目, 歸見父母親戚鄕黨故舊歟? 無忝爾所生, 在此一行.’
그렇게 안 해서 집에 있을 때와 같다면 다른 날 돌아오더라도 다만 예전 그대로의 재주와 솜씨인 인물이기만 하니 네가 장차 어떤 면목으로 친히 부모와 친적과 마을의 친구들을 보려는가? 너의 자식들을 욕되게 않는 것이 이런 행동에 있는 것이다.’
噫! 古昔賢哲, 父子之間, 勸勉之思, 懇惻之情, 亦足想見矣.
아! 옛날의 현인이나 철인가 부자지간에 권면이 생각과 간절히 측은하게 여기는 정을 또한 넉넉히 상상해볼 수 있다.
夫父之於子, 猶農夫之於嘉穀也, 養穀不成, 終罹餓餒之患; 敎子無成, 竟致孤危之禍.
대체로 아버지가 자식에 대해서는 농부가 좋은 곡식에 대해서와 같으니 곡식을 기름에 자라질 않는다면 끝내 굶주리는 걱정에 걸려들고 자식을 가르쳐 이루지 못하면 마침내 쓸쓸하고 위태로운 재앙에 이른다.
其糞壤耘耨之法, 訓誨厲翼之方, 曷嘗少弛於心歟?
땅에 거름주고 김매는 농법이나 가르치고 엄하게 돕는 방법을 어찌 일찍이 마음에 而况垂老之年 조이라도 늦출 것인가?
而况垂老之年, 支多不榮, 只留雙顆, 夏日冬夜, 追悼無期, 稠人衆會, 念至涕零, 居然爲一段恠物, 爲汝冀望之情, 當如何耶? 此吾說之所以作也.
더군다나 거의 늙은 나이에 자식[支]이 대개 좋지 못해서 다만 두 자식만이 남아 여름 낮과 겨울 밤엔 추도함에 기한이 없었고 빼곡한 사람이나 많은 이가 모였을 적엔 생각하며 눈물이 남에 이르러 슬그머니 한 번에 괴이한 사물이 되니 너를 위해 바라는 정이 마땅히 어떠하겠는가? 이것이 내가 이야기를 지은 까닭이다.
爲人父者, 體吾情而敎子; 爲人子者, 㦖吾情而孝親, 則庶幾乎吾說之非空言矣.
부모된 이가 나의 정을 체득하여 자식을 가르치고 자식된 이가 나의 정을 고민하여 어버이에 효도한다면 나의 이야기가 부질없는 말이 아님에 가까우리라.
龍集戊子季夏旣望, 晉山後學無爲子姜景醇, 序. 『私淑齋集』 卷之九
용집(龍集)【용집(龍集): 용(龍)은 별[星] 이름이고, 집(集)은 자리[次]의 뜻으로 기년(紀年)에 쓰이는 말. 예를 들면 용집갑오(龍集甲午)는 즉 세차갑오(歲次甲午)라는 뜻.】 무자(戊子, 1468)년 여름 16일에 진산(晉山, 진주)의 후학 무위자(無爲子)인 강경순(姜景醇)이 쓰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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