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리나무처럼 볼품없고 돌피처럼 하찮은 문집에 붙인 서문
역옹패설전서(櫟翁稗說前序)
이제현(李齊賢)
至正, 壬午夏雨連月. 杜門無跫音, 悶不可袪持. 硯承簷溜, 聯友朋往還折簡, 遇所記書諸紙背, 題其端曰: 『櫟翁稗說』
夫櫟之, 從樂聲也, 然以不材遠害, 在木爲可樂, 所以從樂也. 予嘗從大夫之後, 自免, 以養拙, 因號櫟翁, 庶幾不材而能壽也.
稗之從卑, 亦聲也. 以義觀之, 稗, 禾之卑者也. 余少知讀書, 壯而廢其學, 今老矣. 顧喜爲駁雜之文, 無實而可卑, 猶之稗也.
故名其所錄, 爲稗說云. 『麗韓十家文鈔』 卷二
해석
至正, 壬午夏雨連月.
지정(元順帝의 연호) 임오(1342)년 여름에 비가 달을 이어 내렸다.
杜門無跫音, 悶不可袪持.
문을 닫고 날 찾아오는 이【공음(跫音): 빈 골짜기에 들리는 사람의 발소리, 즉 지극히 반갑고 기쁜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에 “혼자 빈 골짜기에 도망쳐 살 적에 인기척만 들려도 반가울텐데, 더구나 형제와 친척의 기침 소리가 옆에서 들려온다면 어떻겠는가[夫逃虛空者 聞人足音跫然而喜 又況乎昆弟親戚之謦欬其側者乎].”라고 하였다.】도 없어 답답함을 없앨 수 없었다.
硯承簷溜, 聯友朋往還折簡,
벼루에 낙숫물 받아 친구 사이에 왕래한 편지를 이어서
遇所記書諸紙背, 題其端曰: 『櫟翁稗說』
기억나는 게 있으면 종이 뒤에 썼고 끝에 『역옹패설』이라 제목을 붙였다.
夫櫟之, 從樂聲也,
‘역(櫟)’은 ‘낙(樂)’의 소리를 따른 것이지만
然以不材遠害, 在木爲可樂,
그러나 재목이 되지 못해 해로움에서 멀어진 것【부재원해(不材遠害): 고약한 냄새가 나고 옹이가 많아 목수들이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에 일찍 해침을 당하지 않고 오래도록 수명을 누리는 것을 표현할 때 쓰는 나무 이름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인간세(人間世)」】이 나무에게 있어 즐거울 만한 것이 되기에
所以從樂也.
‘낙(樂)’ 자를 따른 것이다.
予嘗從大夫之後, 自免,
내가 일찍이 대부의 뒷꽁무리를 따랐지만 죄를 스스로 면하고
以養拙, 因號櫟翁,
졸렬함을 길러서 호를 역옹(櫟翁)이라 했으니,
庶幾不材而能壽也.
거의 재목이 아니어서 장수할 수 있는 것에 가까웠다.
稗之從卑, 亦聲也.
패(稗)가 비(卑)를 따른 것은 또한 소리 때문이다.
以義觀之, 稗, 禾之卑者也.
뜻으로 이 글자를 보자면 돌피[稗]는 벼 중에 하잘 것 없는 것이다.
余少知讀書, 壯而廢其學, 今老矣.
내가 어려선 독서할 줄 알았지만 장성해선 배움을 그만뒀고 이젠 늙은이가 됐다.
顧喜爲駁雜之文, 無實而可卑,
너저분한 글쓰기를 좋아하여 내용은 없고 비천하기만 하였기에
猶之稗也.
돌피와 같았다.
故名其所錄, 爲稗說云. 『麗韓十家文鈔』 卷二
그러므로 기록한 것을 명명하여 ‘패설’이라 말한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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