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에 있는 누각에서 짓다
역루(驛樓)
임제(林悌)
胡虜曾窺二十州 當時躍馬取封侯
如今絶塞煙塵靜 壯士閑眠古驛樓 『林白湖集』 卷之二
해석
胡虜曾窺二十州 호로증규이십주 |
오랑캐가 일찍이 20주를 엿보아 |
當時躍馬取封侯 당시약마취봉후 |
당시엔 말을 달려 후에 봉해졌네. |
如今絶塞煙塵靜 여금절새연진정 |
요즘 같으면 변방에 봉화 연기와 전장의 먼지【연진(煙塵): 봉화(烽火) 연기와 전장에 이는 먼지를 말한다.】가 고요해 |
壯士閑眠古驛樓 장사한면고역루 |
씩씩한 병사는 한가롭게 옛 역루에서 잠자네. 『林白湖集』 卷之二 |
해설
이 시는 고산찰방(高山察訪)으로 있던 1579년경에 역에 있는 누각에서 지은 것으로, 호방한 기개를 엿볼 수 있는 변새시(邊塞詩)이다.
오랑캐가 일찍이 이십 주를 엿볼 적, 그 당시에 장사(壯士)는 말을 달려 후에 봉해졌다【고려 문종(文宗) 때 함주(咸州) 이북이 동여진에 함락되었는데, 睿宗 2년 임금이 윤관(尹瓘)과 오연총(吳延寵)을 파견하여 이들을 이기고 구성(九城)을 쌓은 계기로 삼고 선춘령(先春嶺)에 비석을 세웠음】. 그러나 지금은 머나먼 변방에 싸움 없으니, 장사는 옛 역루에서 한가로이 잠을 자고 있다.
이 시에 대해 허균(許筠)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 “중형도 임자순의 …… 라는 시를 칭찬하여 협기(俠氣)가 펄펄 뛴다고 하였다[仲兄奉使北方 登壓胡亭作詩曰 白屋經年病 靑苗一夜霜 林子順極賞之 以詩贈之曰 白屋靑苗十字史 仲兄亦稱其胡虜曾窺二十州 將軍躍馬取封侯 如今絶塞無征戰 壯士閑眠古驛樓 以爲翩翩俠氣].”라 평했고,
『오산성림초고(五山說林草藁)』에는, “창해(滄海) 양사언(楊士彦)이 안변 군수로 있을 때, 임제는 고산 찰방(지금의 철도 국장과 같은 벼슬)이 되었다. 임제가 창해에게 농담 삼아 말하기를, ‘덕산(德山)역 벽 위에 칠언절구 한 수가 붙어 있는데, 내 못 쓰는 글씨로 쓴 것입니다. 아마 북도(北道) 변장(邊將)이 지은 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고 창해에게 그 시를 죽 불러 주는데, …… 하였더니, 창해가 웃으면서, ‘이것은 무부(武夫)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반드시 고산(高山) 당신의 솜씨일 것이다.’ 하였다. 그 뒤에 최경창(崔慶昌)이 ‘장군약마취봉후(將軍躍馬取封侯)’를 고쳐서 ‘당시약마취봉후(當時躍馬取封侯)’로 하였다[楊滄海倅安邊 林悌爲高山察訪 林悌漫謂滄海曰 德山驛壁上見有七言絶句一首 以拙筆書之 疑是北道邊將之所作也 爲滄海誦之曰 胡虜曾窺數十州 將軍躍馬取封侯 如今絶塞烟塵靜 壯士閑眠古驛樓 滄海笑曰 此非出武夫口中 必高山手也 其後崔公慶昌以將軍躍馬取封侯 改爲當時躍馬取封侯].”라는 일화(逸話)가 전하고 있다.
이덕형(李德泂)의 『송도기이(松都記異)』에는, “사문 임제는 호걸스런 선비이다. 일찍이 평안도 평사(評事)가 되어 송도를 지나다가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가지고 글을 지어 황진이(黃眞伊)의 묘에 제사지냈는데, 그 글이 호방하여 지금까지 전해 오면서 외워지고 있다. 임제는 일찍이 문재(文才)가 있고 협기(俠氣)가 있으며 남을 깔보는 성질이 있으므로, 마침내 예법을 아는 선비들에게 미움을 받아 벼슬이 겨우 정랑(正郎)에 이르고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일찍 죽었으니, 어찌 운명이 아니랴? 애석한 일이다[林斯文悌 豪士也 嘗爲平安評事 行過松都 以隻鷄壺酒操文往祭于眞伊墓 文辭放蕩至今傳誦 悌夙有文才任俠傲物 終爲禮法之士所短 官纔正郞 齎志早沒 豈非命也 惜哉].”라 하여, 임제의 호걸스러운 일화(逸話)를 전하고 있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74~75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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