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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 - 송이평사(送李評事)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임제 - 송이평사(送李評事)

건방진방랑자 2021. 4. 1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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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평사로 가는 이영(李瑩)을 전송하며

송이평사(送李評事)

 

임제(林悌)

 

 

朔雪龍荒道 陰風渤海

삭설룡황도 음풍발해애

元戎掌書記 一代美男兒

원융장서기 일대미남아

匣有干星劍 囊留泣鬼詩

갑유간성검 낭류읍귀시

邊沙暗金甲 關月照紅旗

변사암금갑 관월조홍기

玉塞行應遍 雲臺畫未遲

옥새행응편 운대화미지

相看豎壯髮 不作遠遊悲

상간수장발 부작원유비 林白湖集卷之一

 

 

 

 

해석

朔雪龍荒道 陰風渤海 오랑캐의 땅용황(龍荒): ()은 흉노족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용성(龍城)을 가리키고, ()은 멀리 떨어진 변방이라는 뜻의 황복(荒服)을 가리키는 말로, 북쪽 오랑캐가 출몰하는 지역이라는 뜻이다.에 북쪽 눈 내리고 발해의 벼랑에 그늘진 바람 부네.
元戎掌書記 一代美男兒 원수[元戎]의 서기를 담당했으니 한 시대의 미쁜 남아라네.
匣有干星劍 囊留泣鬼詩 칼집엔 별을 찌르는 칼이 잇고 주머니엔 귀신마저 울릴 시 있네.
邊沙暗金甲 關月照紅旗 변방의 모래는 갑옷[金甲]을 어둡게 하고 관문의 달은 붉은 깃발을 비추네.
玉塞行應遍 雲臺畫未遲 변방옥새(玉塞): 중국 감숙성(甘肅省) 돈황(敦煌) 서북쪽에 있는 옥문관(玉門關)의 별칭이다. 중국 장안(長安)에서 서쪽으로 36백 리 떨어진 돈황군(敦煌郡)에 있으며, 중원에서 서역(西域)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을 다닐 적에 응당 두루 다닐 것이고 운대운대(雲臺): 후한(後漢) 명제(明帝)가 전세(前世)의 공신(功臣)들을 추념(追念)하여 등우(鄧禹) 28명의 초상화를 그려서 걸어 놓았던 대각(臺閣) 이름이다. 후엔 공신이나 명장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쓰이게 됨가 그려질 날 오래지 않네.
相看豎壯髮 不作遠遊悲 서로 바라보니 굳센 머리를 곤두세우고 멀리 떠남에도 슬퍼하질 않는 구나. 林白湖集卷之一

 

 

해설

이 시는 북평사(北評事)로 가는 이영(李瑩)을 전송하면서 지어준 시이다.

 

1, 2구는 지명을 사용하여 임지의 스산한 분위기를 묘사하였고,

3, 4구는 이영의 인물을 칭송하고,

5, 6구는 문무(文武)를 겸하고 있음을 칭송하고 있다.

7, 8구는 변방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묘사하고,

9, 10구는 곧 공을 세울 것이라 말하고 있으며,

11, 12구에서는 서로를 위안하고 있다.

 

허균(許筠)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 이 시에 대해 시격(詩格)이 양영천(楊盈川, 楊炯)과 매우 비슷하다[絶似楊盈川].”라 하였다. 주지하듯이 초당사걸(初唐四傑)인 양형(楊炯)은 왕발(王勃)ㆍ노조린(盧照隣)과 함께 당시의 궁정시풍(宮廷詩風)을 반대하고 강건한 시풍(詩風)을 주장하여 변새시(邊塞詩)에 뛰어난 시인이다.

 

그리고 성수시화(惺叟詩話)에서는, “임자순(林子順)은 시명(詩名)이 있었는데, 우리 두 형은 늘 그를 추켜 받들고 인정해 주면서, 그의 삭설은 변방길에 휘몰아치네.’라는 시 한 편은 성당(盛唐)의 시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고 했다[林子順有詩名 吾二兄嘗推許之 其朔雪龍荒道一章 可肩盛唐云].”, “기세가 호방하고 시어가 뛰어나다[氣豪語儁].”라고 평하고 있다.

 

이러한 성향을 보여 주는 일화가 연암집(燕巖集)』 「종북소선(鍾北小選)」 「낭환집서(蜋丸集序)에 실려 있는데,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백호 임제가 말을 타려고 하자 종놈이 나서며 말하기를, ‘나으리께서 취하셨군요. 한쪽에는 가죽신을 신고, 다른 한쪽에는 짚신을 신으셨으니 하니, 백호가 꾸짖으며, ‘길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이고, 길 왼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짚신을 신었다 할 것이니, 내가 뭘 걱정하겠느냐.’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논할 것 같으면, 천하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발만 한 것이 없는데도 보는 방향이 다르면 그 사람이 가죽신을 신었는지 짚신을 신었는지 분간하기가 어렵다[林白湖將乘馬, 僕夫進曰: “夫子醉矣. 隻履鞾鞋.” 白湖叱曰: “由道而右者, 謂我履鞾; 由道而左者, 謂我履鞋, 我何病哉?” 由是論之, 天下之易見者莫如足, 而所見者不同, 則鞾鞋難辨矣].”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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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력 및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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