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표현론: 입의(立意) → 명어(命語) → 점철성금(點鐵成金)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 편의 시 속에 나만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을까? 이글에서 다루려는 두 번째 화두는 ‘표현론’이다. 허균은 「시변(詩辨)」에서 그 과정과 단계를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설명한다.
먼저 뜻을 세움에 나아가고 그 다음으로 말을 엮는 것을 바르게 하여, 구절이 살아 있고 글자가 원숙하며, 소리가 맑고 박자가 긴밀해야 한다. 그리고 소재를 취해 와서 엮되 놓여야 할 자리에 놓아두고 빛깔로 꾸미지 아니하며, 두드리면 쇳소리가 울리는 것만 같고 가까이 보면 화려한 듯하여, 이를 눌러 깊이 잠기게 하고 높이 올려 솟구쳐 내달리게 한다. 시상(詩想)을 닫는 것은 우아하면서도 굳세게 하고, 여는 것은 호방하고 시원스레 하여, 이를 펼치면 시상이 넘쳐흘러 읽는 이를 고무시켜야 한다. 쇠를 써서 금이 되게 하고 진부한 것을 변화하여 신선하게 만들어야 한다. 평평하고 담담하면서도 얕고 속된 데로 흘러서는 안 되며, 기이하고 옛스럽더라도 괴벽한 것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형상을 노래하되 그 사물의 모양에 얽매이지 않고, 펼쳐 서술하더라도 성률에 병통이 없어야 한다. 아름답게 꾸미더라도 이치를 손상하지 않고, 의논을 펼치더라도 엉기지 않아야 한다. 비유가 깊은 것은 사물의 이치와 통하며, 용사가 공교로운 것은 마치 자기에게서 나온 것 같아야 한다. 작품이 이루어지면 격조가 드러나 혼연(渾然)히 지적할 수가 없고, 말 밖으로 기운이 솟아나 호연(浩然)하게 꺾을 수가 없다. 이를 다 갖춘 뒤에 내놓는다면 시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先趣立意, 次格命語, 句活字圓, 音亮節緊, 而取材以緯之, 不犯正位, 不着色相. 叩之鏗如, 卽之絢如, 抑之而淵深, 高之而騰踔, 闔而雅徤, 闢而豪縱, 放之而淋漓鼓舞. 用鐵如金, 化腐爲鮮, 平澹不流於淺俗, 奇古不隣於怪癖, 詠象不泥於物類, 鋪敍不病於聲律, 綺麗不傷理, 論議不粘皮. 比興深者通物理, 用事工者如己出. 格見於篇成, 渾然不可鐫, 氣出於外言, 浩然不可屈. 盡是而出之, 則可謂之詩也.
시짓기의 출발은 ‘입의(立意)’에 있다. 무심히 지나치던 사물이 설레듯 내게 다가와 하나의 의미로 맺힌다. 저 사물은 내게 무엇을 말하라 하는 것인가? 무정한 것이 오늘 내게 왜 유정하게 느껴지는가? 입의(立意)란 한 편의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 싶어 하는 궁극점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또렷하기도 하고, 막상 모호하다가 점점 형체를 드러내기도 한다. 혹 끝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생각의 덩어리인 채로 남아 있을 때도 있다.
입의(立意)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명어(命語)’의 차례이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생각은 생각이 아니다. 살아있는 언어로 구상화될 때 그것은 비로소 하나의 의미가 된다. 시는 리듬의 언어이니, 그저 의미의 나열로만 되지 않고 음절의 조화가 덧붙여져야 한다. 적절한 표현과 제재를 끌어오고, 있어야 할 자리에 그것들을 배치하며, 쓸데없는 꾸밈으로 감정의 진솔함을 잃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공연히 시선을 놀라게 하는 아름다운 표현에 집착하느라, 정작 제 하려는 말을 놓쳐서도 안 된다.
점철성금(點鐵成金), 쇠를 쳐서 금을 만들어라. 훌륭한 시는 일상 속에 있다. 진부한 일상 속에서 신선한 의미의 샘물을 길어 올려라. 남들이 보면서도 못 보는 사실, 늘 마주하면서도 간과해버리고 마는 사물 속에 삶의 진실이 있다. 사물의 비의(秘儀)는 높고 고원한 것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은 말똥과 소오줌 속에 있고, 길 위에 구르는 자갈돌과 기왓장 속에 있다. 깨어 있는 시인의 눈은 그것을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좋은 시는 평범 속에 비범을 담고 있다. 일상에서 끌어왔다 해서 천박하지도 속되지도 않다. 때로 기이한 것을 끌어와도 괴벽한 데로 흐르는 법이 없다. 그 사물을 노래하되 그 외양에 집착하여 얽매이지 않는다. 길게 설명하는 듯싶어도 언어의 가락은 그대로 살아있다. 보다 나은 표현을 위한 배려가 말하고자 하는 이치를 손상시키지 않고, 더욱이 자신의 이념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러할 때라야 시는 비로소 나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격조가 일렁여 물결을 이루고, 언어의 밖으로 호연한 기상이 솟아나 가슴으로 느낄 뿐 무어라 말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그 시를 읽는 이들이 시를 쓴 나의 마음자리를 알고, 나의 사람됨을 알게 되는 시, 이러한 경계가 바로 허균(許筠)이 추구했던 ‘허자지시(許子之詩)’의 궁극적 도달점이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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