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리학적 천기론(天機論)의 문학적 변용
주지하듯, 천기(天機)는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편의 “其嗜慾深者, 天機淺也.”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 까닭에 초기 연구자들 가운데서는 노장(老莊) 철학(哲學)의 ‘무위(無爲)’에 초점을 맞추고 천기론은 주자(朱子) 중심의 재도론(載道論)과는 상반되는 의식에서 제출된 것으로 인식했다【정연봉, 「조선전기(朝鮮前期) 성정(性情) 논의(論議)와 장유(張維)의 천기론(天機論)」, 『민족문화연구(民族文化硏究)』 23, 1990 참조.】. 그러나 장자(莊子)의 말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즉각적으로 주자학에 대한 반발의 논리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조선조에 『장자(莊子)』는 문학적 능력을 배양하고,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문인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열독하던 기본 교양서이다. 그런 까닭에 장자풍의 기세, 수사, 상상 등은 문학작품 속에 쉽게 원용될 수 있는 것이다. 『장자(莊子)』가 철학으로서 심도있게 수용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장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실천적 삶이 예증되어야 한다. 조선조 문인 가운데 장자 철학을 현실 삶의 근본 사상으로까지 수용하여 살았던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장자 철학의 일정한 사유를 부분적으로 자기 입론의 근거로 삼는 경우는 있지만, 이 역시도 대개는 문학작품의 형식을 빌어서였다.】. 초기 연구에서부터 천기론(天機論)을 성정론(性情論), 재도론(載道論) 등과 상치시켜 이해하는 논의들【천기론(天機論)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시론이다. 천기론이 주목받게 된 것은 천기론이 지닌 창신적(創新的) 요소가 조선후기 시풍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종래 다수의 연구는 천기론에는 혁신적 성격을 부여하고 성정론에는 상대적으로 보수적 속성을 부여하면서 이 둘을 대척시켜 이해하였다. 대표적 선행연구는 다음과 같다. 최웅, 「조선중기 시학연구-선조~광해조의 시론 및 시평을 중심으로-」, 서울대 석사학위논문, 1975; 김흥규, 『조선후기 시경론과 시의식』, 고대민족문화연구소, 1982; 장원철, 「조선후기문학사상사의 전개와 천기론」, 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2; 송재소 외, 『이조후기 한시의 재조명』, 창작과 비평사, 1983; 조동일, 『한국문학사상사시론』, 지식산업사, 1984; 정연봉, 「장유의 시문학 연구」, 고려대 박사학위논문, 1989; 천병식, 『조선후기 여항시사 연구』, 국학자료원, 1991; 김상홍 외, 『한국문화사상사』, 계명문화사, 1991; 조종업, 『한국시화연구』, 태학사, 1991 외 다수. 그러나 김혜숙은 「한국한시론(韓國漢詩論)에 있어서 천기(天機)에 대한 고찰(1)」, 『한국한시연구(韓國漢詩硏究)』 2집, 1994; 「한국한시론(韓國漢詩論)에 있어서 천기(天機)에 대한 고찰(2)」, 『한국한시연구(韓國漢詩硏究)』 3집, 1995를 통해 기존 연구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성정(性情)이란 정(情)과 대별되는 것이 아니므로 성정론과 천기론은 대립하는 시론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다만, 성정론은 시적 발화의 발화 근원 및 과정에 초점을 둔 언급이며 천기론은 시적 발화의 진행 방식에 초점을 둔 것에 차이가 있다고 하였다. 박태성은 「조선시대 천기론(天機論)의 전개」, 『연세어문학』26, 1994를 통해 천기론은 중인문인들이 전유한 문학이론이 아니며 성정론과 대척적이지 않은 것임을 주장하였다. 정길수 또한 「‘천기론(天機論)’의 문제」, 『한국문화』 37집, 2006를 통해 천기론은 주희(朱熹) 이래의 성정론과 대척되지 않음을 보이고 오히려 둘은 종합적으로 고찰할 시론임을 주장하였다. 한편, 천기론의 토대가 되는 사상을 고찰하는 연구도 있었다. 이승수(「17세기말 天機論의 형성과 인식의 기반」, 『韓國漢文學硏究』18집, 1995)와 손정희(「17세기 조선의 觀物論에 나타난 玩物과 天機 개념의 연구」, 서울대 석사학위논문, 2012)는 천기론을 소옹(邵雍)의 관물론과 연결시켜 이해하였다. 천기론의 토대가 되는 사상을 고찰하려 한 것은 논의의 수준을 제고하였으나 여전히 주자학의 안티테제로서 소옹을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연구는 조선후기에 탈성리학적 특성을 부여하려던 초기 연구의 연장선상에 있다. 조선의 주자학자들 거의가 북송오자(北宋五子)의 일인(一人)으로서 소옹을 추존하고 있었음을 염두에 두면, 천기론(天機論)의 인식 기반을 소옹의 관물론에서만 구하는 것은 소옹의 학문을 지나치게 특화시킨 면이 없지 않다.】은 대부분 천기(天機)란 용어의 출처를 들어 장자적(莊子的) 특성을 부각시키곤 했다. 그러나 천기(天機)라는 용어는 일찍부터 성리학의 체계로 들어온 용어임을 주목해야 한다.
問: “솔개는 솔개의 성(性)이 있고 물고기는 물고기의 성(性)이 있어 그 날고 뜀에 천기(天機)가 절로 완전하니 곧 천리(天理)의 유행이 발현되는 오묘한 곳입니다. 그래서 자사께서 우선 이 한두 가지로 도(道)가 없는 곳이 없음을 밝히신 것 아닙니까?”
問: ‘鳶有鳶之性, 魚有魚之性, 其飛其躍, 天機自完, 便是天理流行發見之妙處, 故子思姑擧此一二以明道之無所不在否?’
答: “그렇다.”
曰: ‘是.’ -『朱子語類』 권62 「中庸·1」
천기(天機)는 천리(天理)가 자연히 발동하는 오묘한 곳이다.
天機, 天理自然發動之妙處也. -金長生, 『沙溪全書』 권20 「近思錄釋疑」
두 인용문 모두 천기(天機)를 천리(天理)가 드러나는 오묘한 곳이라고 하고 있다. 장자(莊子)의 언어가 성리학적 언어로 전환되면서 천기(天機)는 천리(天理)와의 연관성 속에서 인식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단(異端)으로 여겼던 장자(莊子)의 개념어를 이학자(理學者)가 사용하는 것에 대해 주자(朱子) 당대에도 의심이 있었다. 『주자어류(朱子語類)』에 정자(程子)가 『장자(莊子)』의 “其嗜慾深者, 天機淺也.” 등을 예로 들며 도체(道體)를 잘 형용했다고 평가한 것을 두고, 이단(異端)의 말이니 익힐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문인의 질의에 주자는 말에 취할 것이 있다면 마땅히 취해야 한다며 노장의 학술이 허무하다는 이유로 좋은 말까지 함부로 흠잡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고, 나아가 『노자(老子)』·『장자(莊子)』 독서도 스스로 주관만 확실하다면 무해하다 하였다【‘程先生謂: 「莊生形容道體之語, 儘有好處. 老氏『谷神不死』一章最佳, 莊子云『嗜慾深者, 天機淺』此言最善.」又曰:「謹禮不透者, 深看莊子.」然則莊老之學, 未可以爲異端而不講之耶?’ 曰: ‘「君子不以人廢言」, 言有可取, 安得而不取之? 如所謂「嗜慾深者, 天機淺」, 此語甚的當, 不可盡以爲虛無之論而妄訾之也.’ 謨曰: ‘平時慮爲異敎所汨, 未嘗讀莊老等書, 今欲讀之, 如何?’ 曰: ‘自有所主, 則讀之何害? 要在識其意所以異於聖人者如何爾.’ -『朱子語類』 권97「程子之書·3」】. 이처럼 천기(天機)는 『장자(莊子)』에 근원을 둔 말이지만, 일찍이 성리학자들에게 수용되어 성리학의 용어로 정착되었다. 조선조 문헌기록에서 天機를 언급한 용례를 검토해보면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天理가 오묘하게 발현된 것, 혹은 발현된 곳’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예가 현저히 많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일물(一物)을 가지고 관찰해 보건대,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것[鳶飛魚躍]’은 기(氣)로서, 날고 뛰는 그 속에 리(理)가 실로 유행(流行)하고 있으니, 이렇게 본다면 물론 ‘기(氣)가 발하여 리(理)가 타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날게 하고 뛰게 하는 것으로 말하면 또 이 리(理)의 발현 아닌 것이 없으니, 이렇게 본다면 ‘리(理)가 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여여숙(呂與叔)이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것은 천기(天機)가 절로 동한 것이다.[鳶飛魚躍, 天機自動]”라고 한 것이다.
以一物觀之, 則鳶飛魚躍, 是氣也, 而理實流行於飛躍之中, 是固‘氣發而理乘’也. 然其所以 飛躍, 則又無非此理之發見, 此非‘理發’乎? 故呂與叔謂‘鳶飛魚躍, 天機自動’. -趙翼, 『浦渚集』 권22 「讀栗谷與牛溪論心性情理氣書」
솔개와 물고기의 비유를 굳이 천기(天機)로만 말할 것은 없다. 대개 새들이 봄에 우는 것과 곤충들이 가을에 우는 것이 어느 것인들 천기(天機)의 발현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자사(子思)가 굳이 솔개와 물고기를 취한 것은 바로 위로 아래로 환히 드러나는 리(理)를 형용하기 위한 것이다. 주자가 일찍이 말하기를,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것[鳶飛魚躍]은 이 리(理)의 발현을 말한 것이니,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푸르고 푸른 대나무가 진여(眞如)가 아닌 것이 없고 맑고 맑은 국화꽃이 반야(般若)가 아닌 것이 없다’는 말과 흡사하다. 다만 저들이 말한 발현(發現)은 모두 뒤섞여 어지럽고, 우리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것은 반드시 그 정분(定分)을 분변하였으니, 솔개는 반드시 하늘에서 날고 물고기는 반드시 연못에서 뛴다.”고 하였다. 이것을 가지고 보면, 이 한 구절은 절로 유행(流行)과 정분(定分)이라는 두 가지 뜻을 겸한 것이다.
鳶魚之喩, 不必專以天機言. 蓋鳥之鳴春、蟲之鳴秋, 何往非天機之發見? 而子思之必取鳶魚, 政所以形容上下昭著之理也. 朱子嘗曰‘鳶飛魚躍, 言此理之發見, 恰似禪家「靑靑綠竹, 莫匪眞如; 粲粲黃花, 無非般若」之語. 但彼言發見, 一切混亂, 吾儒所言, 須辨其定分, 鳶必飛於天, 魚必躍於淵’. 執此以觀, 則此一節自兼流行、定分二義. -正祖, 『弘齋全書』 권83 「經史講義·20」 「中庸·4」 제12장
두 인용문 모두 『중용(中庸)』 제12장의 “詩云‘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에 대한 이해를 밝힌 것이다. 첫 번째 글은 천기(天機)를 리(理)와 기(氣)로 관계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 조익(趙翼, 1579~1655)은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것은 기(氣)로서 드러난 것이요, 그 원리로서의 리(理)가 날고 뛰는 그 속에 있다고 한 뒤, 여대림(呂大臨)의 ‘천기(天機)’를 인용하였다. 여기서 천기(天機)는 리(理)의 유행이 기(氣)로 드러난 것이라고 파악할 수 있다. 앞서 본 김장생(金長生)의 이해를 보태보면 ‘천기(天機)란 리(理, 天理]의 유행이 오묘하게 기(氣)로서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글 역시 천기(天機)를 리(理)의 유행과 관련하여 설명하였다. 천기(天機)란 리(理)가 발현된 것이되 물고기와 솔개를 비유적으로 취한 것은 불가(佛家)의 진여(眞如)와는 달리 정분(定分)의 의미까지 담고 있는 것이라는 주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천기(天機)는 천지만물에 내재된 천리(天理)의 발현이라고 하였다. 정조(正祖)가 인용문의 말미에서 유행(流行)과 정분(定分)을 언급한 것은 천기(天機) 속에 천리(天理)가 유행불식(流行不息)함을 밝히고, 천리(天理)는 깃든 대상에 따라 고유한 물성으로 전화하는데 천기(天機)는 정해진 물성을 통해 발현됨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두 견해 모두 천기(天機)를 ‘천리(天理)가 오묘하게 드러난 것[곳]’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조 문인들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던 천기(天機)의 개념이다.
천기가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예는 철학적 산문만이 아니다. 허다한 시편에서 시어로 사용된 천기(天機) 또한 대개한 ‘천리(天理)가 오묘하게 드러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半日松間路 淸流在眼前 | 반나절을 솔숲 사이 길을 걷노라니 맑은 강물 눈앞에 펼쳐지누나. |
層巖度馬峴 列岫俯狼川 | 층층 바위 지나서 마현(馬峴)에 오르니 늘어선 봉우리들 낭천(狼川)을 굽어보네. |
鴈去隨陽氣 牛歸趁夕煙 | 석양의 기운 따라 기러기들 떠나가고 저녁밥 연기 따라 몰던 소도 돌아가네. |
天機見羣動 未敢駐征鞭 | 천기(天機)가 뭇 생명들에서 발현되니 채찍을 가만 두지 못하겠구나. |
「마현(馬峴)에서의 감흥[馬峴感興]」, 金時保, 『茅洲集』 권5
마현(馬峴)에 올라 조망의 흥을 노래한 작품이다. 반나절이나 숲 속 길을 걸어 고개에 올라보니 봉우리들이 옹위한 가운데 저 아래 낭천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덧 해가 기웃기웃 지려하니 머리 위 하늘에선 기러기들이 지는 해를 따라 날아가고, 저 아래 마을에서는 밥 짓는 연기를 따라 목동의 저녁귀가가 한창이다. 시인은 이러한 모습을 저물녘 ‘천기(天機)’가 발현된 예로 제시한 뒤, 때를 맞추어 귀가하는 기러기와 소[天機]를 통해 삼라만상의 순시(順時), 순리(順理)함[天理]을 체인하고, 그 조화의 흥을 읊조리고 있다. 우리는 김시보의 시를 통해서도, 천기(天機)는 천지 운행의 원리인 ‘천리(天理)가 구체적 대상물을 통해 오묘하게 드러난 것’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천기(天機)는 여대림(呂大臨)이 위의 인용문에서 ‘천기자동(天機自動)’이라 했듯, ‘본래적[天賦的]’이고 ‘자연적[無作爲]’인 속성을 지닌다【天地交而有男女, 男女交而化化生, 生者不可窮, 所謂交感應而已, 咸少男少女之交, 故咸感也. 天地有生來無有不感不應之物人, 有生來亦無不感不應之時, 故程子曰‘天地間只有一箇感與應而已’. 這箇感應是氣機自然相與全, 不由一毫意思, 感者不知所以感, 應者不知所以應, 咸之義爲皆感者應者兩相湊合, 一動皆動, 一通皆通, 都是黙黙然天機自到故咸感也, 乃無心之感也. 卦體澤在上山在下 山澤之氣无時不通 山何嘗有意感澤? 澤何嘗有意應山? 一氣機之自相往來, 所以成咸也. -吳桂森(明), 『周易像象述』 권5】. 이러한 속성은 천기(天機)의 ‘천(天)’이 부여한다. ‘천성(天性)’을 ‘본성(本性)’으로 여기고, ‘기질지성(氣質之性)’과 대비되는 ‘천지지성(天地之性)’을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 하는 예에서 볼 수 있듯, ‘천(天)’은 본래적[天賦的]이고, 자연적[無作爲]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속성을 감안하여 정의해보면 천기(天機)는 ‘천리(天理)가 본래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오묘하게 드러난 것[곳]’이라 정의할 수 있다. 김창흡의 다음 글은 이러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물리(物理)에는 뒤섞어 한꺼번에 그 묘함을 일컫는 것도 있고, 구별하여 그 옳은 것을 구하는 것도 있다. 가령, 화육(化育)이 유행(流行)하여 상하(上下)에 환히 드러난 것을 두고 말한다면 나는 놈, 물속에 있는 놈, 움직이는 놈, 꽂혀 있는 놈, 가로로 있는 놈, 세로로 있는 놈, 거꾸로 된 놈, 뒤집힌 놈이 그 가운데 있어 비록 암컷과 수컷이 서로 교미를 하고, 강한 놈 약한 놈이 서로 범하고, 호랑이와 표범이 서로 표효하는 것, 뱀과 교룡이 서려 있는 것은 모두 천기(天機)라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만약 반드시 본원을 따져 그 순수 지선함을 취한다면 까마귀의 인(仁), 범의 자애(慈愛), 벌과 개미의 의(義), 저구의 분별 있음이 곧 천리(天理)이다. 하나는 그 형기(形氣)로부터 활의(活意)를 서로 보는 것이고, 하나는 성명(性命)으로부터 정리(正理)를 서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것은 물에 잠길 수 없고, 움직이는 것은 정지할 수가 없으니 형기(形氣) 중에 절로 정리(正理)가 있는 것이다. 까마귀의 인과 범의 자애, 벌과 개미의 의, 저구의 예는 성명(性命)이 또한 완전하지 않으니 합하여야 바야흐로 지선(至善)이 된다.
物理有混倂而稱其妙者, 有揀別而求其是者. 如言化育流行上下昭著, 則飛、潛、動、植、橫、竪、顚、倒, 擧在其中, 雖牝牡之交亂、强弱之相凌、虎豹之咆哮、蛇蛟之結蟠, 捴謂之天機可也. 若必極本窮源, 取其純粹至善, 則烏之仁、虎之慈、蜂蟻之爲義、雎鳩之有別, 方是天理. 一則從形氣相看活意也, 一則從性命相認正理也. 然飛不可爲潛, 動不可爲植, 形氣中自有正理, 烏仁虎慈、蜂義鳩禮, 性命亦不全, 合之方爲至善. -金昌翕, 『三淵集』 권33 「日錄(己亥)」
김창흡은 물리(物理) 인식을 두 가지로 보았다. 하나는 형기(形氣)에 나타나는 활의(活意, 天機)를 보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성명(性命)의 차원에서 정리(正理, 天理)를 인식하는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생명현상을 천기(天機)라 하고 그런 생명들에서 드러나는 성명(性命)의 지선(至善)함을 천리(天理)라 하였다. 그런 뒤에 천리(天理)와 천기(天機)를 불상리(不相離)의 관점에서 종합하고 있다. 김창흡은 이것을 두고 ‘형기(形氣) 중에 절로 정리(正理)가 있다’고 하였는데, 바로 눈앞의 모든 생명현상[天機]으로부터 정리(正理, 天理)를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종래의 연구에서는 이 글을 김창흡이 천리(天理)와는 변별되는 천기(天機)를 개념화한 것으로 보고 천기(天機)는 윤리적·도덕적 가치와 무관한 것임을 강조하였다【이승수,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연구(硏究)」,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397~398면; 강명관, 『농암잡지평석』, 소명출판, 2007, 94~95면.】. 그러나 이 글의 전체적인 대의는 천기(天機) 속에서 천리(天理)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설명을 위해 구분된 천기(天機)는 분명히 도덕적 가치를 내장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것만 주목하여 김창흡이 제시한 천기(天機)를 ‘욕망의 자연스러운 상태’【강명관, 『농암잡지평석』, 소명출판, 2007, 96면.】나 ‘도덕성에서 구분되는 사물 그 자체의 존재성을 긍정하는 동시에 이를 예술 고유의 영역으로 투영시킨 것’【손정희, 앞의 논문, 87면.】으로 본다면, 이는 오해다. 이와 관련하여 김창흡의 다음 시는 그 분명한 의미를 시사한다.
人道心爲兩 隨時互發生 | 인심(人心)과 도심(道心) 둘로 나뉘어 때때로 상호간에 발생하나니 |
休將形氣感 誤作天機鳴 | 형기(形氣)가 감응한 것을 가지고 천기(天機)에서 울린 것이라 오해 말거라. |
理慾看賓主 知行等弟兄 | 천리(天理)와 인욕(人慾)은 손과 주인의 관계요 앎과 실천은 형제와 같은 것이니 |
孤燈堪取譬 一剔一回明 | 저 등불을 취하여 비유한다면 한 번 심지 자르면 한 번 밝음 회복하는 것. |
「감회가 있어 경명에게 보이다[感懷示敬明]·7」, 金昌翕, 『三淵集』 권5
이 시는 김창흡이 인심(人心)과 도심(道心), 형기(形氣)와 천기(天機), 인욕(人慾)과 천리(天理)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시로 밝힌 것이다. 그런데 인심(人心), 형기(形氣), 인욕(人慾) : 도심(道心), 천기(天機), 천리(天理)의 분별의식이 대단히 강렬하다. 김창흡의 천기(天機) 인식을 살필 수 있는 함련(頷聯)을 보면, 천기(天機)는 감각을 경유할 수밖에 없지만 감각한 것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김창흡은 형기(形氣)를 통해서 얻어진 것을 천기(天機)로 오인하지 말라고 하였다. 인심과 도심은 둘로 나뉘어 때때로 상호간에 발생하는데 감각을 통해 얻은 생각 혹은 기호[人心]를 대번에 ‘이것은 천기(天機)에서 울린 것이야’하고 합리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기(天機)를 그저 무윤리(無倫理), 무도덕적(無道德的)인 것으로만 볼 수 없음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경련(頸聯)에서도 천리와 인욕의 관계를 주인과 손님으로 대비적으로 제시한 뒤, 김창흡은 이 모든 것을 총괄하여 등불의 비유를 든다. 여기서 등불은 인심과 도심, 형기와 천기가 공존하고 있는 현실적 인간의 마음을 비유하고 있다. 김창흡은 등불 심지에 붙어있는 찌꺼기를 털어내듯 우리 마음의 찌꺼기[人心, 形氣, 人慾]를 제거하면 밝음[道心, 天機, 天理]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시를 앞서 본 일록(日錄)의 기록과 연결시켜 이해해보면, 김창흡이 일록(日錄)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의미가 보다 분명해진다. 김창흡은 천리(天理)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관념이 선험화(先驗化)되어있는 인위적 대상이 아니라 활발한 자연현상 속에서 천기(天機)를 조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목적은 천기(天機)를 조우하여 천리(天理)를 체인(體認)하기 위한 것이다.
이상에서 확인해보았듯 천기(天機)란 인식 대상에 내재된, 혹은 인식 대상을 통해 확인되는 천리(天理)의 소재처(所在處)로 천부(天賦)의 속성을 지닌 것이다. 본고는 천기의 이러한 한 특징을 일러 ‘대상의 천기(天機)’라 칭하기로 한다【백악시단의 ‘진시’를 강혜선과 김남기는 ‘대상의 진’과 ‘주체의 진’ 두 측면으로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본고는 대상과 주체의 ‘진’이 발출되는 소이연으로서 ‘천기(天機)’를 주목하고 창작의 필연적인 두 계기를 아우르기 위해 천기를 ‘대상의 천기’와 ‘주체의 천기’로 나누어 살피고자 한다. 이후 논의를 통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겠지만, 문헌 기록 속에 제시된 천기는 대상성의 측면에서 사용되기도 하고, 주체의 내면이라는 측면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본고가 대상과 주체의 천기로 구분하여 천기론을 고찰하는 것은 이러한 용례에 의거한 것이다. 그러나 대상과 주체의 천기는 본질적으로는 천리(天理)의 발현이라는 측면에서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백악시단의 천기론은 대상과 주체가 천기를 매개하여 천리의 차원에서 하나로 고양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시론이었다.】. 그러나 천기(天機)와 관련된 문헌 기록들 가운데는 인식주체와 관련한 천기(天機)의 용례도 다수 발견된다.
무릇 사람은 천지의 중정함을 얻어 생겨났으니 그 정(情)이 느끼는 바가 있어 언어로 표현한 것을 시라 한다면 시는 귀천 없이 한가지이다. 그런 까닭에 『시경(詩經)』에 많이 나오는 여항의 노래로 된 작품을 우리 부자(夫子)께서 취하신 것이다.…(中略)…비록 여항인들이 배움이 넓지 못해 그 바탕으로 삼은 것은 심원하지 못하지만, 하늘에서 얻은 바인 까닭에 나름대로 잘하는 점이 있어 어느새 풍조(風調)가 당(唐)에 가까워졌다. 저 맑고 부드럽게 경치를 전해주는 것은 봄날의 새가 아니던가! 슬프고 간절하게 감정을 쏟아내는 것은 가을날 벌레가 아니던가! 여항인이 느끼는 바가 있어 울린 것은 모두 천기(天機) 가운데서 자연히 흘러나와 그런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진시(眞詩)이다. 만약 공부자로 하여금 그들의 시를 보게 한다면 사람이 한미하다하여 폐기하시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夫人得天地之中以生, 而其情之感而發於言者爲詩, 則無貴賤一也. 是故三百篇多出於里巷歌謠之作, 而吾夫子取之. …(中略)… 雖其爲學不博, 取資不遠, 而其所得於天者, 故自超絶, 瀏瀏乎風調近唐. 若夫寫景之淸圓者, 其春鳥乎! 而抒情之悲切者, 其秋虫乎! 惟其所以爲感而鳴之者, 無非天機中自然流出, 則此所謂眞詩也. 若使夫子而見者, 其不以人微而廢之也審矣. -洪世泰, 『柳下集』 권9 「海東遺珠序」
대저 시란 천기(天機)이다. 천기(天機)가 사람에 깃들 때는 그 지체를 가리지 않으니 외물의 얽매임에서 담박한 자라야 천기를 얻을 수 있다. 위항의 선비는 궁(窮)하고 천(賤)하여 세상의 이른바 공명(功名)이나 영리(榮利)에 대해서 밖에서 그것을 구하려고 동요되거나 그것에 빠질 일이 없기 때문에 그 하늘이 부여한 것[天機]을 온전히 보존하기가 수월하다. 그 업으로 삼은 것을 즐기고 전문으로 하는 것은 그 형세가 그런 것이다.…(中略)…대개 그[鄭來僑] 시의 연원은 도장(道長, 洪世泰)으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그의 시는 천기(天機)에서 얻은 것이 많았다. 그 마음속에 진실로 외물에 이끌린 바가 있어서 좋아하지도 않고 전문으로 하지도 않았다면 그의 시적 성취가 이 정도일 수 있겠는가!
夫詩者, 天機也. 天機之寓於人, 未嘗擇其地, 而澹於物累者, 能得之. 委巷之士, 惟其窮而賤焉, 故世所謂功名榮利, 無所撓其外而汨其中, 易乎全其天, 而於所業, 嗜而且專, 其勢然也. …(中略)… 盖其淵源所自出於道長, 而其得之天機者多. 其胸中苟有所誘於外物而不嗜不專, 則其成就能如是乎! -李天輔, 『晉菴集』 권6 「浣巖稿序」
앞의 글은 홍세태가 여항인들의 시를 모은 『해동유주(海東遺珠)』에 붙인 서문의 일부이고, 뒤의 글은 이천보(李天輔, 1698~1761)가 여항시인 정내교(鄭來僑)의 문집에 붙인 서문의 일부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 천기(天機)는 대상이 되는 외물(外物)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천기(天機) 개념은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사람 또한 ‘성(性)’이라 불리는 리(理)를 구유(具有)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우주적 시각에서는 하나의 물(物)에 불과하지만, 그 물(物)들의 관계를 인식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물(物)이다. 인간이 인식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김창협과 김창흡의 견해를 따르면 마음[心]의 작용인 지각(知覺)에 의한 것이다. 인간은 이 지각(知覺) 능력을 가지고 대상을 만난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인식 주체의 천기(天機)는 ‘대상의 천기(天機)’와 비교할 때, 마음의 지각(知覺) 능력과 관련하여 좀 더 다른 의미로 확장된다. 앞서 본 “天機, 天理自然發動之妙處也.”라는 구절을 다시 상기해보자. 인식주체의 천기(天機)라 하더라도 천기(天機)가 천리(天理)에 근원한다는 본래적 속성에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오묘하게 발현되었다[妙發]는 점에 있어, 외물이 감각될 수 있는 형상으로 드러나는 것과는 달리 인간의 경우는 마음이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천기(天機)는 천리(天理)를 지각(知覺)할 수 있는 심(心)의 상태를 지칭하게 된다. 즉, 천리(天理)를 체인할 수 있는 마음의 이 특별한 상태가 바로 ‘주체의 천기(天機)’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 마음의 상태가 지각(知覺)을 위해 특별하게 조작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심(心)에서 조작적이고 가변적인 요소들이 제거될 때, 주체는 천부(天賦)의 심(心)의 상태에 가까워지고, 그럴수록 주체는 대상의 진면목[대상의 天機]과 만날 수 있으며, 주체의 본래적인 면모[주체의 天機]를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장자(莊子)』의 “其嗜慾深者, 天機淺也”은 바로 이러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울에 비유하자면, 마음이라는 거울을 뒤덮고 있는 ‘기욕(嗜慾)’이라는 먼지가 없을 때 그 거울은 ‘비춤’이라는 본래적 직능(職能)을 더욱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울이 깨끗할수록 대상 또한 진면목이 왜곡 없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거울과 같은 마음의 상태, 이것이 바로 ‘주체의 천기(天機)’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인용문에 나타난 여항인들의 천기론(天機論)과 연결시켜 본다면, 여항인들은 기욕(嗜慾, 외물의 얽맴)할 것이 적으므로 주체의 천기(天機)가 천부(天賦)의 맑은 상태[眞]로 더욱 잘 보존될 수 있고, 그런 까닭에 주체가 지각(知覺)하는 ‘대상의 천기(天機)’도 그 진면목이 왜곡됨 없이 포착될 수 있으니 그들의 천기(天機)에서 우러난 시야말로 주체와 대상의 진(眞)이 갖추어진 ‘진시(眞詩)’가 된다는 논리이다. 이렇게 볼 때, ‘주체의 천기(天機)’는 ‘천리(天理)가 손상됨 없이 보존된 마음의 상태’라 할 수 있다. 이것을 ‘대상의 천기(天機)’와 연결시켜 정리해 보면 천기(天機)란 ‘대상과 주체 모두에서 천리(天理)가 자연스럽게 드러난 특별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이 특별한 상태를 지칭하는 천기(天機)는 어떻게 포착(捕捉)되고 지각(知覺)될 수 있을까?
낮과 밤이 갈마듦에 해와 달이 교대로 빛나고 사계절이 운행함에 풍운(風雲)이 변화하고 초목(草木)이 번성하는 것, 이것은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현자와 일사들이 간혹 이것을 독점하여 자기들만의 즐거움으로 삼고 남들은 함께 할 수 없을 것으로 여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권세와 이익이 외면에서 유혹하면 뜻이 분산되고 기호와 욕망이 마음에서 불타오르면 보고 듣는 것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이 같은 자는 눈이 어지럽고 행동이 어수선하여 제 몸이 어디에 놓여있는지도 모르는데 또 어느 겨를에 외물을 완미하여 그 즐거움을 맛보겠는가! 오직 몸은 영욕(榮辱)의 경계를 넘고 마음은 작위(作爲)의 밖에 노닐어 허명정일(虛明靜一)해지고 이목에 가려진 바가 없어야만 외물에 대해 그 깊은 이치를 관조할 수 있어 내 마음이 진실로 혼연하게 천기(天機)와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즐거움을 어찌 보통 사람들이 함께 얻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은 도연명(陶淵明) 정도가 되어야 북창(北窻)의 바람을 시원하게 느낄 수 있고 격양가를 읊조린 소옹 정도가 되어야 낙양의 꽃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晝夜之相代, 而日月互爲光明; 四時之運行, 而風雲變化、草木彙榮, 此有目者之所共覩也. 而世之高賢、逸士乃或專之, 以爲己樂, 若人不得與焉者何哉! 勢利誘乎外, 則志意分; 嗜欲炎於中, 則視聽昏. 若是者眩瞀勃亂, 尙不知其身之所在, 又何暇於玩物而得其樂哉! 夫惟身超乎榮辱之境, 心游乎事爲之表, 虛明靜一, 耳目無所蔽, 則其於物也, 有以觀其深, 而吾之心固泯然與天機會矣. 此其樂, 豈夫人之所得與哉! 是以必其爲歸去來賦者, 然後可以涼北窻之風矣; 必其爲擊壤吟者, 然後可以看洛陽之花矣. -金昌協, 『農巖集』 권24 「霽月堂記」
김창협이 제월당(霽月堂)에 붙인 기문의 일부이다. 사시(四時)의 운행에 따라 자연이 변화하는 모습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직 현자(賢者)와 일사(逸士)만이 이 가운데서 즐거움을 발견할 줄 안다. 왜냐하면 이들은 권세와 이익, 기호나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장자』의 말을 원용하자면 기욕이 얕아서 천기(天機)가 깊은 사람들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경지는 어떠한가? 세상사의 영욕(榮辱)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은 기필(期必)하는 작위(作爲)가 없어 ‘허명정일(虛明精一)’한 상태에서 대상에 내재된 이치를 만날 수 있는 수양된 인격체들이다. 요컨대, 김창협은 마음의 수양, 즉 인식주체의 ‘허명정일’한 마음 상태를 천기 조우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음의 상태로 제시한 ‘허명정일(虛明靜一)’인데, ‘허명정일(虛明靜一)’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창협의 심설(心說)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김창협을 위시한 백악시단의 사상가들은 리(理)의 절대성과 실재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실재하는 리(理)를 어떻게 체인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중요한 철학적 테마로 삼았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마음[心]이었다. 심(心)은 기(氣)인 까닭에 기질에 의해 선악의 유동성이 여전히 존재하는 불완전한 것이면서도, 허령(虛靈)한 기(氣)인 까닭에 대상을 지각(知覺)할 수 있으며 지각을 가능하게 하는 리(理)가 내재된, 즉 구조적으로 리(理)와 기(氣)가 결합된 특별한 것이었다【】김경호, 「심통성정(心統性情)」, 『조선 유학의 개념들』, 예문서원, 2006 참조.. 김창협과 김창흡은 심(心)의 이 특별한 면을 주목하고 심(心)에 관한 철학적 사유들을 개진하였는데, 그 가운데 지각론(知覺論)은 심(心)이라는 존재의 독자적 의의를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었고, 미발론(未發論)은 천리(天理)를 드러내는 처소로서의 심(心)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것이었다【문석윤, 『호락논쟁(湖洛論爭) 형성과 전개』, 동과서, 2006, 317면 참조.】. 심(心)과 심(心)의 용(用)인 지각(知覺)의 특별한 역할은 김창협의 미발론(未發論)에서 더욱 부각되었다. 김창협은 주자의 “심(心)의 지각(知覺)은 이 이치를 갖추고 이 정을 행한다.[心之知覺具此理而行此情]” 말을 근거로 이 리(理)를 구비할 수 있는 것을 지각(知覺)의 체(體)로, 이 정(情)을 행할 수 있는 것을 지각(知覺)의 용(用)으로 구분하면서 미발시(未發時)의 지각(知覺)을 체(體)로, 이발시(已發時)의 지각을 용(用)으로 인식하였다【知覺之兼體用通寂感, 不必求之古書, 只就吾心, 深體默玩, 則可見矣. 且以古書言之, 不獨‘知覺不昧’一語, 如與呂子約論未發書, 以心之有知與心之有思, 分別言之, 不翅明白, 可見此心未發固自有知覺矣. 卽如潘書所云‘心之知覺, 具此理而行此情’, 亦自兼體用說. 蓋能具此理者, 知覺之體也; 能行此情者, 知覺之用也, 其義尤分明矣. -金昌協, 『農巖集』 권13 「與李同甫」】. 김창협의 이러한 인식은 미발(未發), 이발(已發)을 관통하여 작용하는 지각(知覺), 즉 기(氣)이지만 특별한 심(心)의 작용(作用)을 중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미발론 본연의 목표인 수양론에서도 유지되었다. 김창협은 보통 사람은 사욕(私慾)이 주(主)가 되기 때문에 사물과 접하지 않을 때라도 마음이 항상 어둡고 어지러워 허정(虛靜)할 때[未發]가 거의 없지만, 성인은 사물과 접하지 않았을 때부터 마음이 본디 고요[寂然]하여 함부로 동(動)하지 않으며 사물과 접해서는 이치에 따라 순응하여 조금도 얽매임이 없어 본체(本體)의 허정(虛靜)함이 그대로 유지된다며 범인과 성인을 구분하였다【竊嘗思之, 常人之心, 私欲爲主, 故雖其未與物接, 而方寸常自昏擾, 絶少虛靜時節. 惟聖人不然, 方其事物未至, 此心固寂然, 未嘗妄動, 雖鬼神亦有不得窺其際者矣. 及事至物來, 以理順應, 無少流失, 無少滯累, 則其本體之虛靜者, 又未嘗不自若也. 聖人之所以異於衆人、衆人之所以不及聖人, 其分正在於此. -金昌協, 『農巖集』 권19 「答道以」】. 그러나 김창협은 보통 사람이 마음의 허정(虛靜)을 경험하기 어렵다고해서 그 가능성마저 닫아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김창협은 보통 사람도 그 기질과 수양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미발(未發)의 때가 있다고 보았다. 보통 사람에게 미발(未發)의 중(中)이 없다고 단정한다면 그것은 천명지성(天命之性)이 누구에게는 온전히 드러나고 누구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이 되니 천명지성(天命之性)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하였다. 다만 보통 사람은 계구(戒懼) 공부로 체인하고 보존함이 없어서 미발(未發)의 중(中)이 곧바로 없어져 버린다고 보았다【至於‘衆人無靜時’, 未知道以果曾有此說否, 而愚謂未可如此說殺. 昔南軒嘗謂‘衆人無未發時’, 胡廣仲以爲疑, 而朱子論之曰‘此亦隨人稟賦不同’, 此言最當. 蓋雖非聖賢, 性靜而寡欲者, 亦自有此時節, 其餘則雖有而絶少, 最下者則全無焉. 雖須臾之間, 而此心未發, 則所謂中者, 固卽此而在, 但無戒懼工夫, 體而存之, 是以旋又汩沒失之耳. 衆人之所以異於聖賢, 只在於此. 今謂‘衆人元無靜時’, 則固太過. 而若謂‘衆人之未發, 不足以爲中 ’, 則是天命之性, 其在衆人, 却不能無偏倚矣, 其爲不識大本, 顧不甚哉! -같은 글】. 김창협은 이처럼 미발시(未發時)의 순선(純善)함을 체인하고 성인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마음의 수양을 대단히 중시했는데 수양을 통해 얻은 마음의 상태가 ‘허정(虛靜)’, 곧 ‘허명정일(虛明靜一)’이었다.
다시 「제월당기(霽月堂記)」로 돌아가 보자. 김창협이 천기를 만날 수 있는 조건으로 제시한 ‘허명정일(虛明靜一)’한 마음은 곧 김창협이 미발론을 통해 제시한 미발시의 마음, ‘미발지중(未發之中)’을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인 것이다. 김창협의 미발론(未發論)은 미발시(未發時)에 천리(天理)를 체인(體認)하고 이발시(已發時)에 그 체인(體認)한 바를 발하여 중절(中節)을 이루는, 화(和, 發而皆中節謂之和)한 삶을 위한 철학적 모색이다. 그런 까닭에 김창협은 미발(未發)에 관한 논의를 전개하면서 지각(知覺)의 측면에서도, 수양(修養)의 측면에서도 천리(天理)를 체인할 수 있는 심(心)의 기능을 중시했는데, 인용된 「제월당기」에서도 그 논리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김창협은 미발시(未發時)의 ‘허명정일(虛明靜一)’한 마음 상태를 보존하고 있어야 이발시(已發時)에 외물을 접해도 외물에 감각적으로 구속되지 않아 대상의 깊은 이치를 관조할 수 있으며 이러한 관조를 통해서야 천기(天機)와 만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또한 김창협은 천기와 조우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즉 주체의 천기를 본연[天賦]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부단한 공부와 수양을 요구하였다.
나는 오직 고명(高明)께서 아침저녁으로 부모님께 문안을 드리는 일 외에는 깊이 들어앉고 출입을 자제하여 문을 닫고 글을 읽되, 날마다 정해진 과정을 따르고, 술과 음식으로 잔치하며 즐기는 일과 번화하고 화려한 구경거리를 일체 멀리 피하여 혹시라도 빠져들지 말기를 바라네. 그리하면 비단 마음이 맑아질 뿐만 아니라 학업도 정밀하고 전일해질 것이네. 숙보가 살아 있다 하더라도 내가 그에게 권면하고 주의를 주는 것이 어찌 이 밖의 것이겠는가. 유람의 유익함에 대해서는 소자유(蘇子由, 蘇轍[宋])와 마자재(馬子才, 馬存[唐])의 글 두 편에 자세히 나와 있네.
그러나 그것도 평소에 글을 읽고 학문을 하여 마음속에 쌓인 것이 풍부해진 뒤에 외물을 보고 듣는 것이 내면을 감동시켜 발현시킬 수 있다는 말일 뿐이니, 어찌 마음속은 공허하여 아무것도 없으면서 오로지 외물의 도움에만 의존한다는 뜻이겠는가? 인자(仁者)와 지자(智者)가 산수를 좋아하는 것도 이와 같네. 만약 평소에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보존하는 공부를 하지 않다가 갑자기 우뚝한 산의 정적인 모습과 흐르는 물의 동적인 모습을 보고 인(仁)과 지(智)의 이취(理趣)을 끌어내려 한다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區區只願晨夕定省外, 深居簡出, 閉門讀書, 日有程課, 而酒食讌樂之事、紛華靡麗之觀, 一切避遠, 無或留連, 則不但心志淸明而學業亦精專矣. 雖使叔輔而在, 愚之所勉戒者, 亦豈外此哉! 至於游覽之助, 蘇子由、馬子才二書, 固已具道矣.
此亦平日讀書爲學, 積於中者已富, 而耳目之接於外者, 有以感觸助發耳, 豈其中空虛無有, 而專有資於外耶? 仁智之樂, 亦是如此. 若無平日窮理存心之功而驟觀於山水流峙動靜之狀, 求以發仁智之趣, 豈不遠哉? -金昌協, 『農巖集』 권18 「答黃奎河(癸未)」
문인 황규하(黃奎河)에게 보낸 답장이다. 김창협은 제대로 된 산수 유람을 하려면 축적된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규칙적인 공부를 통해 마음을 맑게 하고 독서와 학문을 통해 마음속에 축적한 것이 많아야 강산지조(江山之助)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평상시의 궁리(窮理)와 존심(存心) 공부를 강조하였는데 ‘궁리(窮理)’란 거경궁리(居敬窮理)이고 ‘존심(存心)’은 존심양성(存心養性)을 뜻하는 심성 수양 공부이다. 독서하고 심성을 수양하는 노력이 평상시에 충분히 이루어져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런 뒤라야 ‘우뚝한 산의 정적인 모습과 흐르는 물의 동적인 모습’[天機]에서 인(仁)과 지(智) 같은 오성(五性, 天理)을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김창흡 또한 연비어약(鳶飛魚躍)을 노래한 시인과 그것을 완미한 자사(子思)를 창작과 비평의 높은 경지로 제시한 뒤, “버들개지 위아래로 드날리니 조화(造化)의 옹용(雍容)한 묘(妙)를 볼 수 있다”고 한 설공(薛公)의 말을 인용하며, 높은 수준의 내면 수양이 이루어진 사람이라야 하늘의 조화를 함께 즐기며 도(道)의 오묘함을 깨닫고 작품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하였다【天之春秋冬夏、雨露風霆, 無非敎也. 鳶之飛、魚之躍, 亦敎中一事也. 然而詩人之所擇而詠、子思之所玩而取義者, 抑豈不以怡然張翅暢然空遊, 獨可見從容自在之妙有合於中和之正則而然乎? 是以於鳶之鬪嚇、魚之屈强, 雖亦生之謂性, 而君子有不道者焉. 何則? 以其血氣麤露, 天機太淺故也. 薛公語錄有云‘柳花悠揚高下, 可見造化雍容之妙’, 此言吾所深愛. 而推而論及乎體道之人, 必也沉涵以養其德性, 恬愉以持其氣象, 淳乎其若愚, 冲乎其不盈, 淡而不厭, 簡而有文, 其默而藏密也則和順積中, 其語而應扣也則英華發外, 動靜、云爲靡不與天和翔徉, 以之賞物而寢卧, 玄對之趣存焉; 以之接人而目擊, 道存之妙著焉. 如此故, 樂方可謂從容和適矣, 方可追三賢之天遊矣. -金昌翕, 『三淵集』 권18 「答拙修齋趙公」】. 이처럼 김창협과 김창흡은 시인이 갖추어야 할 경지를 대단히 높게 설정하였는데, 이는 수사 차원의 복고를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정신적 가치를 중시한 그들 시론(詩論)에 따른 것이었다.
이상에서 천기의 개념과 속성, 천기와의 조우, 천기와 조우할 수 있는 주체의 조건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살펴볼 것은 백악시단의 문인들이 이 성리학적 개념어인 천기를 어떻게 시론으로 수용하고 있는가이다. 먼저, 김창협의 경우를 살펴보자.
시가(詩歌)의 도(道)가 문장(文章)의 도(道)와 다른 점은 바로 허경(虛景)을 많이 말하고 한사(閒事)를 많이 말하는 것이니 고인(古人)의 묘(妙)도 도리어 여기에 많았습니다. 대저 허경(虛景)과 한사(閒事)라고 불릴지라도 천기(天機) 활발한 묘(妙)와 우리 성정(性情)의 참됨이 실로 그 사이에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읽게 하면 족히 노래 부르고 읊조릴 만하고, 감(感)과 흥(興)을 펼치고 일으켜 언의(言意)의 밖에서 그것을 얻게 하니 이것이 바로 시가(詩歌)의 묘(妙)입니다. 어찌 사리(事理)를 펼치고 고실(故實)을 배열하는 것을 시 짓는 사람의 잘 도달한 것이라 여기겠습니까?
詩歌之道與文章異者, 正以其多道虛景, 多道閒事, 而古人之妙, 却多在此. 蓋雖曰虛景、閒事, 而天機活潑之妙、吾人性情之眞, 實寓於其間, 使人讀之, 足以謳歌吟諷, 感發興起, 而得之於言意之表, 此其妙. 豈敷陳事理, 排比故實, 以爲詩者之所能及耶? -金昌協, 『農巖集』 권12 「與趙成卿」
이 인용문은 조성기(趙聖期)가 김창흡과의 시도 논쟁에서 김창흡의 시를 두고 “허경(虛景)과 한사(閒事)를 많이 말하고 도리(道理)를 말한 것이 적은 것이 병통이다[特病, 其多道虛景、閒事而說, 道理少.]”라고 지적한 것에 대한 김창협의 반론이다. 이 글에서 주목할 것은 시에 대한 김창협의 인식이다. 김창협은 시도(詩道)와 문도(文道)의 특징을 ‘허경한사(虛景閒事)’와 ‘사리고실(事理故實)’로 구분하여 인식한다. 시에 나타나는 허경(虛景)과 한사(閒事)는 문장의 사리(事理)와 고실(故實)이 언표(言表)할 수 없는 묘(妙)가 드러나는 곳으로, ‘천기활발(天機活潑)의 묘(妙)와 인간 성정(性情)의 참됨’이 그 속에서 있다고 하였다. 시의 장르적 특질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종래의 성정론(性情論)에 더해 천기(天機)를 시론(詩論)으로서 원용(援用)하고 있다. 이 편지가 1685년, 김창협의 나이 35세 때 지어진 점을 고려하면 김창협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시의 장르적 특질과 그 가치-물론 도학에 비하면 부차적이긴 하지만-에 주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아래처럼 정식화된다.
시는 성정(性情)의 발현이요 천기(天機)가 동한 것이다. 당(唐)나라 사람들은 이 점을 터득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초당(初唐), 성당(盛唐), 중당(中唐), 만당(晩唐)을 막론하고 대체로 다 자연(自然)스러웠다.
詩者, 性情之發而天機之動也. 唐人詩有得於此, 故無論初、盛、中、晩, 大抵皆近自然. -金昌協, 『農巖集』 권34 「雜識·外篇」
송나라 사람들은 비록 고실(故實)과 의론(議論)을 위주로 하기는 하였으나, 축적된 학문(學問)과 가슴에 맺힌 지의(志意)가 대상에 감촉(感觸)하여 격발(激發)되고 솟구치는 대로 글로 옮겨져서 격조(格調)에 구애되지 않고 법식[塗轍]에 매몰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기상이 호탕하고 힘찼으며 때로는 천기(天機)가 발하는 데에 가깝기도 하였으니, 그 시를 읽노라면 그래도 성정(性情)의 참됨[性情之眞]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명나라 사람들은 지나치게 격식에 얽매이고 걸핏하면 모방을 일삼아 찡그리는 것을 본받고 걸음걸이를 배우려하여 더 이상 천진(天眞)함이 없어지고 말았다. 이것이 그들이 도리어 송나라 사람들보다 못하게 된 까닭이다.
宋人雖主故實議論, 然其問學之所蓄積、志意之所蘊結感激觸發, 噴薄輸寫, 不爲格調所拘, 不爲塗轍所窘, 故其氣象豪蕩淋漓, 時有近於天機之發, 而讀之猶可見其性情之眞也. 明人太拘繩墨, 動涉摸擬, 效顰學步, 無復天眞. 此其所以反出宋人下也歟. -金昌協, 『農巖集』 권34 「雜識·外篇」
내 생각에 시란 성정(性情)의 산물이니 오직 천기(天機)에 깊은 사람만이 잘할 수 있다. 만약 악착같고 사리에 어두운 사람이 한갓 성병(聲病)과 격률(格律)에 얽매인 채 억지로 생각을 짜내고 수사를 가하여 솜씨를 내보이면서 스스로 시인입네 한다면 그 어찌 다시 ‘진시(眞詩)’가 있겠는가?
余謂詩者, 性情之物也, 惟深於天機者能之. 苟以齷齪顚冥之夫而徒區區於聲病、格律, 搯擢胃賢, 雕鎪見工, 而自命以詩人, 此豈復有眞詩也哉?” -金昌協, 『農巖集』 권25 「松潭集跋」
첫 번째 인용문에서 김창협은 시란 인간의 성정(性情)이 발현된 것이자 천기(天機)가 동한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성정(性情)과 천기(天機)가 체득된 시의 특징으로 ‘자연(自然)’을 들었다. 주자학에서 성정(性情)과 천기(天機)는 모두 천리(天理)와 관계된 것으로 별개의 것이 아니다. 다만 주안점에 따라 심성론과 우주론으로 구분하여 이해하는 것일 뿐이다. 주자학의 심성론이 우주론에 기초하여 도출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김창협이 시를 정의하면서 성정(性情)과 천기(天機)를 동시에 언급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두 번째 인용문 또한 천기(天機)와 성정(性情)을 함께 언급하였는데 천기와 성정의 관계가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되고 있다. 김창협은 송시(宋詩)가 의론적(議論的)인 폐단이 있긴 하지만 학문과 수양을 바탕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이따금 천기(天機)에 가까운 시적 성취를 이룬 작품들이 존재하고, 그런 작품 속에서 성정(性情)의 참됨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천기(天機)를 인식하기 위해 마음 수양과 학문을 중시하던 김창협의 철학이 시비평(詩批評)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앞서 보았듯, 학문과 수양을 통해 천기(天機)를 인식할 수 있는 마음 상태에 이르는 것은, 곧 주체의 마음을 천부(天賦)의 본원적인 상태로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까닭에 천기(天機)가 드러난 작품에서 성정(性情)의 참됨[眞]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두 인용문을 종합해보면 천기론(天機論)은 성정론(性情論)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김창협은 오히려 창작주체가 천기(天機)로운 상태에 있을 때 창작주체의 성정(性情)이 더욱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인용문은 김창협의 천기론(天機論)이 진시(眞詩)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시를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천기(天機)에 깊은’ 사람이라고 하였다. ‘천기(天機)에 깊은 사람[深於天機者]’은 곧 대상의 천기(天機)와 조우하는 주체의 상태도 천기(天機)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다. 앞서 본 「제월당기(霽月堂記)」와 연결시켜 보면, 곧 미발시(未發時)의 허명정일(虛明靜一)한 마음을 보존한 사람이다. 주체의 상태가 천기(天機)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곧 천부(天賦)의 본성(本性)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에 ‘천기(天機)에 깊은 사람[深於天機者]’은 천부(天賦)의 본성이 느낀 대로【김창협이 말하는 ‘천기(天機)’는 일부 연구자들이 보듯 학문이나 수양을 매개하지 않은 무작위(無作爲)의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는 무작위(無作爲)하고, 그래서 진실하고, 활달한 것이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부단한 학문과 수양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실의 인간은 이미 제도, 관습, 이념에 주체의 기질적(氣質的) 차이까지 더해져 그 본래적 상태를 상실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창협의 천기론(天機論)에서 학문과 수양을 제거한다면 그 천기(天機)는 김창협의 것이 아니라 공안파의 것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김창협의 부친, 김수항은 천기(天機)의 천부적(天賦的) 속성과 학문의 관계에 대해 주목할 만한 견해를 남겼다. “夫以氣稟論之, 人之知覺最多於物. 而知覺多者, 物欲之蔽亦多, 鮮能盡其性. 能盡其性者, 反見於偏塞之物何者? 天機自動, 不假修飾故也. 若蛙之鳴, 亦豈有敎之學之而然乎? 出於性之自然而然耳. 今人其有不 待敎不待學而能率性者乎? 敎之而不能, 學之而不能, 況不敎不學而能乎? -金壽恒, 『文谷集』 권26 「聽蛙說」”】 시를 짓지 수사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래서 ‘천기(天機)에 깊은 사람[深於天機者]’이 지은 시는 그 사람의 천부적(天賦的) 본연(本然)함이 잘 드러나게 되고 그 때문에 ‘진시(眞詩)’가 된다. 이 글은 김창협의 천기론(天機論)이 ‘진시(眞詩)’ 창작을 위한 시론이 됨을 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상에서 보았듯, 김창협은 성리학의 천기(天機) 개념을 시론(詩論)으로 확장하고 ‘진시’ 창작을 위한 이론적 토대로 삼았다. 이러한 천기론(天機論)은 김창흡에게로 이어졌다. 김창흡의 아래 글은 천기(天機)가 발현된 ‘진시’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도연명이 시에서 “동쪽 울 아래서 국화를 따다보니, 문득 남산이 눈앞에 있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 하였는데, 이 한 구절에 나아가면 그 의취(意趣)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가 지금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고 있다가 무심(無心)의 순간을 맞이했는데, 그 때 남산이 문득 눈앞에 있었다는 것은, 대저 그 마음속에 사의(私意)가 사라져 조금도 가리고 막힌 것이 없었기 때문에 눈앞의 외물도 또한 모두 안배(按排)를 허용치 않고 입술이 본래 짝이듯 서로를 얻었으니 물과 나 사이에 천기(天機)가 유동(流動)한 것이다. 이 기상은 곧 증점(曾點)께서 기수에서 목욕하려던 뜻이다. 그런데 후인이 ‘견(見)’자를 헐후(歇後)하다 여겨 ‘남산을 바라보네[望南山]’로 고친다면 이는 뜻을 붙이고 안배한 것이 되어버려 즐기는 마음[樂意]이 문득 사라져버린다. 그 마지막 구는 의미가 더욱 고원하니 ‘이 사이에 진의(眞意)가 있다’고 한 것은 곧 무언가 말할 것이 있는 듯한 것인데 끝내 ‘말을 잊네[忘言]’라고 귀결시켰으니 이른바 ‘진의(眞意)’는 곧 여기에 이르러 있게 된다. ‘북창에 누워 있으니’ ‘스스로 희황상인(羲皇上人)이라 할 만하다’고 한 한 단락도 이 시의 뜻과 같다. 이 노인의 마음속에 어찌 털끝만치라도 사욕이 남아있었겠는가? 지금 사람은 온통 사욕으로 가려져 있지만, 때로 좋은 경계(境界)를 만나면 어찌 이 같은 뜻이 조금이라도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러나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허다한 사욕에 가려져 곧바로 막혀버리고 만다. 사람은 모름지기 먼저 사의(私意)를 없앤 뒤라야 이 뜻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如陶淵明詩曰‘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卽此一句, 亦可以想見其意趣. 我方採菊於東籬之下, 而邂逅無心之際, 南山便來在眼前. 盖其胸中私意消落, 無少蔽障, 故外物之在前者, 亦皆不容安排, 而脗然相得, 物我之間, 天機流動, 只此氣象, 便是曾點浴沂意思也. 後人乃以‘見’字爲歇後, 改以‘望南山’, 則着意安排, 樂意便索然矣. 其末句意味尤高遠. ‘間有眞意’云, 則若將以有言也, 卒乃歸之於‘忘言’, 則所謂‘眞意’者, 便卽此而在矣. ‘卧北窓’‘自謂羲皇上人’一段, 亦與此意一般. 此老胸中, 豈有一毫私慾留滯得在? 如今人都是私慾蔽障, 故時値好箇境界, 則亦豈無此箇意思些少形見者? 而却被許多私慾東生西起, 旋卽閉塞. 人須先私意消落, 然後可以存得此意. -金昌翕, 『三淵集拾遺』 권31 「語錄」
이 글은 김창흡이 65세 되던 1717년, 보개산(寶蓋山)에서 강학할 때의 기록이다【丁酉○時從三淵先生於寶盖時 -兪肅基, 『兼山集』 권8 「寶盖語錄」】. 도연명의 「음주(飮酒)」 시를 분석하면서 천기(天機)를 언급하였는데, 천기(天機)가 발동된 시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이 글에 있다. 김창흡은 도연명의 시를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 식견이 가장 높다는 증점(曾點)의 경지에 비하면서, 그 원인을 천기(天機)에서 찾았다. 김창흡은 도연명의 마음에 일체의 사의(私意)가 없었기 때문에, 남산을 시작(詩作)을 위한 안배(按排)의 대상으로 만나지 않고 남산 그 자체, 즉 진정한 남산과 만날 수 있었으며, 그래서 도연명과 남산 사이에 천기(天機)가 유동(流動)했다고 보았다. 즉, 주체와 대상 사이의 진정한 소통·합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김창흡은 “물아지간(物我之間), 천기유동(天機流動)”이라 하였다. 이는 곧 주체의 사욕 없는 마음[주체의 天機]과 대상의 진면목[대상의 天機]이 조우(遭遇)한 장면을 서술한 것이자, 논리적으로는 주체와 대상으로 나뉘어 있던 천기(天機)가 하나의 천기(天機)로 상승·고양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득(相得)”이라 하였다.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의 ‘견(見)’ 자(字)는 바로 천기(天機) 조우의 순간에 절로 흘러나온 도연명의 천기(天機)인 것이다. 만약, 이 ‘견(見)’자를 ‘망(望)’로 쓴다면 시인과 대상은 하나가 아닌 둘로 나뉘어 남산은 시적 안배를 위한 외물이 되고 도연명은 물아무간(物我無間)의 정신적 경지를 즐기지[樂意] 못하는 평범한 시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노년의 김창흡이 전개한 천기론은 이렇듯 주체의 천기와 대상의 천기를 각각 고려하면서 그 둘이 하나로 고양될 것을 제시하는 보다 원숙한 시론(詩論)으로 발전하였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자』에 기원을 둔 천기(天機)는 송대에 이미 성리학의 체계로 흡인되었다. 둘째, 성리학자들은 천기(天機)를 천리(天理)가 오묘하게 드러난 곳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셋째, 백악시단의 김창협과 김창흡은 주자학의 심성론(心性論), 지각론(知覺論), 수양론(修養論)을 바탕으로 성리학의 개념어였던 ‘천기(天機)’를 시론으로 발전시키고 ‘진시’ 창작의 이론적 토대로 삼았다.
그렇다면 시론(詩論)으로서의 천기론(天機論)은 실제 작시(作詩)에 있어 어떤 뒷받침을 하였는가?
첫째, 대상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고, 대상의 진면목을 형상화하도록 하였다. 이 점은 종래의 성정론이 명시적으로 포괄할 수 없었던 부분이요, 김창협이 종래의 성정론(性情論)에 천기론(天機論)을 덧붙인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성정론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주체의 측면에 강조점을 둔 시론이라면, 천기론은 성정론에 기반하였으되 시적 대상 자체를 상대적으로 부각시키는 시론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조선중기 시인들의 작품을 보면 대상의 참모습보다는 자기 흥감이 주가 되어 시적 대상이 자기 흥감을 위한 종속물로 전락하고 마는 작품들이 종종 있다. 특히 17세기 시인들은 삼당시인의 만당적(晩唐的) 폐를 극복하려고 웅건하고 호방한 기세가 두드러진 창작을 선호하였고 이를 통해 일가(一家)를 이루었으나 다음 세대의 시인들에게는 정경이 참되지 않아 허황되다는 비판[情景不眞, 其弊也虛.]【李夏坤, 『頭陀草』책16 「洪滄浪詩集序」】을 받았다. 그러나 천기론(天機論)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중시한다. 대상 속에 오묘하게 드러난 천기(天機)와 조우한다는 의식 속에 이미 대상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게 설정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백악시단의 작품들 가운데는 대상을 차분히 관조하고 관조를 통해 얻은 대상의 특징적 모습을 포착하며, 그러한 대상의 진면목 속에 작가의 깊은 사유를 온축한 작품들이 많다.
둘째, 진솔한 창작을 중시하게 하였다. 천기론은 천지만물을 관통하며 고금의 차이도 없는【蓋天下萬事本此一理, 是以雖人有古今之 異, 事有古今之 異, 而理無古今之異. 凡吾之精神知慮之所以不及古人者, 只局於一箇氣稟, 而非理爲之限隔也. 以今日心中所具之理, 驗古人日用已發之事理, 則其理固躍如, 而其事必了然, 蓋古人之所以應萬事之變而無所欠闕者, 不越乎是理. -趙聖期, 『拙修齋集』 권5 「答林德涵」】 천리(天理)를 체인하고 거기에서 발현된 정감을 진실하게 시로 지을 것을 요구한다. 천기론 속에는 진실한 감정이 확보할 수 있는 논리가 내장되어 있다. 앞서 보았듯 천기(天機)는 인식주체에 한정하여 말하면, 천부(天賦)의 본연한 마음상태를 지칭하게 된다. 천부의 본연한 마음이란 일체의 가식이나 허위가 배제된 상태이다. 그런 까닭에 백악시단 시인들의 시 가운데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의미 있게 바라보고 자신의 진솔한 감정을 담은 작품들이 많다.
셋째, 작품의 개성을 중시하게 하였다. 앞 절에서 보았듯 복고를 주장하는 시인들의 시는 전범을 따르려다 보니 하나같이 비슷비슷해지는 몰개성의 폐가 있었다. 이 점을 중요한 비판점으로 삼았던 백악시단의 문인들은 시 속에 그 사람의 본색, 즉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야 좋은 시라고 여겼다. 그런데 천기는 천리의 발현이면서도 그것이 인간의 마음을 포함하여 물성(物性)을 매개하는 기(氣)의 속성을 지닌 까닭에 현현된 모습이 모두 다르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천기론은 창작주체들이 저마다의 천기를 진실하게 드러낸다면, 그렇게 창작된 시편들은 모두 개성적인 작품이 될 수 있는 논리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백악시단 이론가들에 의해 시론(詩論)으로 본격화된 천기론(天機論)은 복고(復古)의 논리를 내세우다 의고(擬古)의 폐단에 빠진 전대 시단을 지양할 수 있는 다양한 내적 논리를 지닌 시론이다. 그런 까닭에 천기론(天機論)을 자유로운 감성을 중시하는 시론으로만 여겨 성정론과 대척시키는 시각은 조선후기 시에 나타난 실상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시각을 견지한 채라면, 명말 공안파의 시론과 백악시단의 진시론(眞詩論), 천기론(天機論)이 비슷한 논리를 전개해 가면서도 결국 창작의 실제에 있어서는 판이하게 달라진 원인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천기론(天機論)을 그것이 딛고 있는 사상과 연계하여 논의할 때라야 천기론(天機論)의 실상뿐만 아니라 조선후기시의 실상도 보다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다. 천기론(天機論)은 조선후기 집권계층이 변화된 세계상과 조응하며 제시한 ‘진시’ 창작의 핵심 이론으로 집권계층의 사상이었던 성리학을 문학적으로 변주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인용
Ⅰ. 서론
Ⅱ. 백악시단의 형성과 문학 활동
1. 백악시단의 주요 구성원
2. 동인들의 문학 활동
Ⅲ. 진시의 기저와 논리
Ⅳ. 진시의 정신적 깊이와 미학
3. 물아교감의 이지적 흥취
Ⅴ. 진시의 시사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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