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왕각에서 느낀 인생의 무상을 쓰다
등왕각서(滕王閣序)
왕발(王勃)
解說. 왕발이 등왕각에서 서문을 지은 슬픈 사연
唐高祖子元嬰, 爲洪州刺史, 置此閣, 時封騰王, 故曰: ‘騰王閣.’
咸亨二年, 閻伯嶼爲洪州牧, 大宴于此, 宿命其壻, 爲序以誇客. 因出紙筆遍請客, 莫敢當. 勃在席最少, 受之不辭, 都督怒, 遣吏伺其文, 輒報. 一再報, 語益奇, 乃瞿然曰: “天才也.” 請遂成文, 極歡而罷.
勃字子安, 少有逸才, 高宗召爲博士, 因作鬪鷄檄文, 高宗怒, 謂有交構之漸乃黜.
後到父任所, 省侍, 道過鍾離, 九月九日, 會此而作此序
해석
唐高祖子元嬰, 爲洪州刺史, 置此閣,
당고조의 아들 자영이 홍주자사가 되어 이 누각을 설치했는데
時封騰王, 故曰: ‘騰王閣.’
이때에 자영이 ‘등왕(騰王)’에 봉해졌기 때문에 ‘등왕각’이라 불렸다.
咸亨二年, 閻伯嶼爲洪州牧,
함형 2년에 염백서가 홍주의 목사가 되어
大宴于此, 宿命其壻,
이곳에서 큰 잔치를 베풀어 거듭 사위에게 명하여
爲序以誇客.
서문을 짓게 하고 손님들에게 과시하려 했다.
因出紙筆遍請客, 莫敢當.
때문에 종이와 붓을 내어 두루 손님들에게 청했지만 감당하질 못했다.
勃在席最少, 受之不辭,
왕발은 자리에서 가장 어렸는데 청을 받고 사양치 못하니
都督怒, 遣吏伺其文, 輒報.
도독이 화내며 아전을 보내 문장을 살펴보고 문득 보고하게 했다.
一再報, 語益奇, 乃瞿然曰: “天才也.”
한두 번 보고하자 말이 더욱 기이하니 곧 놀라며 “천재다.”라고 말했다.
請遂成文, 極歡而罷.
청하여 마침내 글을 완성했고 기쁨이 극도에 이르자 술 자리는 끝났다.
勃字子安, 少有逸才,
왕발의 자는 자안으로 어려서 뛰어난 재주가 있어
高宗召爲博士, 因作鬪鷄檄文,
고종이 불러 박사로 삼았고 이때문에 투계격문(싸움닭 격문)을 짓게 했는데
高宗怒, 謂有交構之漸乃黜.
고종이 보고 화내며 교구【교구(交構) 꾸며 얽어서 틈이 나게 한다는 뜻이다】하는 조짐이 있을 거라 생각해 곧 축출했다.
後到父任所, 省侍,
훗날 아버지의 임지에 도착해 혼정신성(昏定晨省)하고 모시려 했는데
道過鍾離, 九月九日,
길 도중에 종리를 지나자 9월 9일에
會此而作此序
여기에 모여 이 서문을 지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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