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당나라가 중흥됨을 기리며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
원결(元結)
解說. 칭송하기 위해 쓴 마애비를 비판의 대상으로 바꾼 범성대
安祿山反, 明皇幸蜀. 肅宗時爲太子 自卽位於靈武, 命郭子儀ㆍ李光弼, 復兩京, 迎明皇還京師, 唐業中興.
元結, 遂於湖南永州祁陽縣南之浯溪石崖上, 刻此頌, 顔魯公眞卿書之, 後人, 因名磨崖碑, 詩人文士, 論此事者多矣. 黃山谷之「題磨崖碑」, 楊誠齋之「浯溪賦」, 皆是也而范石湖一詩, 尤明言之焉. 謂: “頌者, 美盛德之形容, 次山, 乃以魯史筆法, 婉辭含譏, 後之詞人, 又從而發明之, 則是碑, 乃一罪案耳.”
其詩曰: “三頌遺音和者希, 丰容寧有刺譏辭. 可憐元子春秋筆, 却寓唐家淸廟詩. 歌詠但諧琴搏拊, 策書自管璧瑕疵. 紛紛健筆剛題破, 從此磨崖不是碑.” 讀者所當知也, 故倂錄焉.
해석
安祿山反, 明皇幸蜀.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키니 명황인 현종(玄宗)이 촉(蜀)으로 행차했다.
肅宗時爲太子 自卽位於靈武,
숙종이 당시 태자가 되었는데 스스로 영무(靈武)로 즉위하여
命郭子儀ㆍ李光弼, 復兩京,
곽자의와 이광필에 명하여 두 서울인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을 수복(收復)하고
迎明皇還京師, 唐業中興.
명황을 맞이해 서울로 돌아오게 하니 당나라의 왕업이 중흥되었다.
元結, 遂於湖南永州祁陽縣南之浯溪石崖上,
원결(元結)은 마침내 호남 영주(永州) 기양현(祁陽縣) 남쪽 오계의 벼랑 가에
刻此頌, 顔魯公眞卿書之,
이 송문(頌文)을 새겼고 안노공(顔魯公) 진경(眞卿)이 그걸 쓰니
後人, 因名磨崖碑,
후대 사람들은 이에 따라 ‘마애비(磨崖碑)’라 이름 지었고
詩人文士, 論此事者多矣.
시인과 문장가로 이 일을 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黃山谷之「題磨崖碑」, 楊誠齋之「浯溪賦」,
산곡 황정견(黃庭堅)의 「제마애비(題磨崖碑)」와 성재 양만리(楊萬里)의 「오계부(浯溪賦)」는
皆是也而范石湖一詩, 尤明言之焉.
다 이런 것인데 석호 범성대(范成大)의 한 시가 더욱 분명하게 그것을 말하였다.
謂: “頌者, 美盛德之形容,
범성대가 그 글에서 말했다. “송문(頌文)은 융성한 덕의 형용을 찬미한 것이니
次山, 乃以魯史筆法,
차산 원결은 곧 노나라 사관의 필법으로
婉辭含譏,
완곡한 말로 비판하는 뜻을 담았고
後之詞人, 又從而發明之,
후대의 문장가들이 또한 따라 그걸 발명하였으니
則是碑, 乃一罪案耳.”
이 비는 곧 당태종의 죄를 담은 글일 뿐이다.”
其詩曰: “三頌遺音和者希, 丰容寧有刺譏辭. 可憐元子春秋筆, 却寓唐家淸廟詩. 歌詠但諧琴搏拊, 策書自管璧瑕疵. 紛紛健筆剛題破, 從此磨崖不是碑.”
그 시는 다음과 같다.
三頌遺音和者希 | 주송과 노송과 상송(商頌)의 남은 음에 화운하는 이 드물지만 |
丰容寧有刺譏辭 | 아름다운 형용에 어찌 풍자하고 비난하는 말 있었는가? |
可憐元子春秋筆 | 가련쿠나! 원자의 춘추 필법이 |
却寓唐家淸廟詩 | 도리어 당나라의 청묘시에 부쳤구나. |
歌詠但諧琴搏拊 | 노래하고 읊음은 다만 비파에 박자에 화합하고 |
策書自管璧瑕疵 | 책서는 절로 옥의 티와 관계 된다네. |
紛紛健筆剛題破 | 바삐 굳건한 필치로 강하게 써재끼니 |
從此磨崖不是碑 | 이로부터 마애비는 칭송되던 비문이 아니라네. |
讀者所當知也, 故倂錄焉.
독자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기 때문에 아울러 기록해둔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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