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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 - 解說. 칭송하기 위해 쓴 마애비를 비판의 대상으로 바꾼 범성대 본문

산문놀이터/중국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 - 解說. 칭송하기 위해 쓴 마애비를 비판의 대상으로 바꾼 범성대

건방진방랑자 2020. 8. 26.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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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당나라가 중흥됨을 기리며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

 

원결(元結)

 

 

解說. 칭송하기 위해 쓴 마애비를 비판의 대상으로 바꾼 범성대

 

安祿山反, 明皇. 肅宗時爲太子 自卽位於靈武, 郭子儀李光弼, 復兩京, 明皇還京師, 業中興.

元結, 遂於湖南永州祁陽縣南之浯溪石崖上, 刻此頌, 顔魯公眞卿書之, 後人, 因名磨崖碑, 詩人文士, 論此事者多矣. 黃山谷題磨崖碑, 楊誠齋浯溪賦, 皆是也而范石湖一詩, 尤明言之焉. : “頌者, 美盛德之形容, 次山, 乃以魯史筆法, 婉辭含譏, 後之詞人, 又從而發明之, 則是碑, 乃一罪案耳.”

其詩曰: “三頌遺音和者希, 丰容寧有刺譏辭. 可憐元子春秋筆, 却寓唐家淸廟詩. 歌詠但諧琴搏拊, 策書自管璧瑕疵. 紛紛健筆剛題破, 從此磨崖不是碑.” 讀者所當知也, 故倂錄焉.

 

 

 

 

 

 

해석

安祿山反, 明皇.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키니 명황인 현종(玄宗)이 촉()으로 행차했다.

 

肅宗時爲太子 自卽位於靈武,

숙종이 당시 태자가 되었는데 스스로 영무(靈武)로 즉위하여

 

郭子儀李光弼, 復兩京,

곽자의와 이광필에 명하여 두 서울인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을 수복(收復)하고

 

明皇還京師, 業中興.

명황을 맞이해 서울로 돌아오게 하니 당나라의 왕업이 중흥되었다.

 

元結, 遂於湖南永州祁陽縣南之浯溪石崖上,

원결(元結)은 마침내 호남 영주(永州) 기양현(祁陽縣) 남쪽 오계의 벼랑 가에

 

刻此頌, 顔魯公眞卿書之,

이 송문(頌文)을 새겼고 안노공(顔魯公) 진경(眞卿)이 그걸 쓰니

 

後人, 因名磨崖碑,

후대 사람들은 이에 따라 마애비(磨崖碑)’라 이름 지었고

 

詩人文士, 論此事者多矣.

시인과 문장가로 이 일을 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黃山谷題磨崖碑, 楊誠齋浯溪賦,

산곡 황정견(黃庭堅)제마애비(題磨崖碑)와 성재 양만리(楊萬里)오계부(浯溪賦)

 

皆是也而范石湖一詩, 尤明言之焉.

다 이런 것인데 석호 범성대(范成大)의 한 시가 더욱 분명하게 그것을 말하였다.

 

: “頌者, 美盛德之形容,

범성대가 그 글에서 말했다. “송문(頌文)은 융성한 덕의 형용을 찬미한 것이니

 

次山, 乃以魯史筆法,

차산 원결은 곧 노나라 사관의 필법으로

 

婉辭含譏,

완곡한 말로 비판하는 뜻을 담았고

 

後之詞人, 又從而發明之,

후대의 문장가들이 또한 따라 그걸 발명하였으니

 

則是碑, 乃一罪案耳.”

이 비는 곧 당태종의 죄를 담은 글일 뿐이다.”

 

其詩曰: “三頌遺音和者希, 丰容寧有刺譏辭. 可憐元子春秋筆, 却寓唐家淸廟詩. 歌詠但諧琴搏拊, 策書自管璧瑕疵. 紛紛健筆剛題破, 從此磨崖不是碑.”

그 시는 다음과 같다.

 

三頌遺音和者希

주송과 노송과 상송(商頌)의 남은 음에 화운하는 이 드물지만

丰容寧有刺譏辭

아름다운 형용에 어찌 풍자하고 비난하는 말 있었는가?

可憐元子春秋筆

가련쿠나! 원자의 춘추 필법이

却寓唐家淸廟詩

도리어 당나라의 청묘시에 부쳤구나.

歌詠但諧琴搏拊

노래하고 읊음은 다만 비파에 박자에 화합하고

策書自管璧瑕疵

책서는 절로 옥의 티와 관계 된다네.

紛紛健筆剛題破

바삐 굳건한 필치로 강하게 써재끼니

從此磨崖不是碑

이로부터 마애비는 칭송되던 비문이 아니라네.

 

讀者所當知也, 故倂錄焉.

독자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기 때문에 아울러 기록해둔다.

 

 

인용

목차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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