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블로그는 2009년부터 시작했다. 그린비 출판사에서 독서를 즐겨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모아 『호모 부커스2.0』이라는 책을 출간한다는 이벤트가 시작됐고 심혈을 기울여 쓴 원고가 두 번의 심사를 모두 거치며 결국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때부터 그린비출판사에선 ‘블로그 피드를 보내달라’거나 ‘배너를 추가해 달라’거나 하는 전혀 생소한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엔 블로그는 전혀 하고 있지 않았고 그저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 책 리뷰를 간단하게 올리는 정도였으니 그게 무슨 말인지 감조차 잡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 호모부커스 2.0에 뽑힌 건 글쓰기와 독서의 흥미를 더욱 갖도록 도와줬다.
공개적인 글쓰기의 시작과 블로그에 담기는 강연 기록
그런 인연으로 다음에 블로그를 만들었고 시작하게 됐다. 당연히 내용이 하나도 없으니, 알라딘에 써놨던 서평들을 하나씩 옮겨오기 시작했다. 당시에 임용을 공부하던 때라 블로그를 제대로 운영할 수는 없었다. 블로그를 운영하려면 주기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 당시에 국토종단을 갔다 온 것을 남기기도 했고, 어떤 강연회에 나가면 그걸 글로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심심하니 하는 정도였지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맘을 먹은 건 아니었다.
그런 블로그가 한 번의 체질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건 단재학교에 취직하게 된 것과 맞물려 있다. 단재학교는 특히 박준규 선생님은 기록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고 그건 늘 일기를 써오던 나의 습관과 맞닿으며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단재학교에선 어떤 활동을 하던 글을 쓰는 걸 대단히 중요한 활동이라 생각했고 학부모님들도 그런 글들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줬다. 아마도 일기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음성적인 글쓰기가 블로그라는 양성적인 글쓰기로 변모하게 된 데엔 단재학교의 그런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단재학교에서 처음 쓰고서 인정을 받았던 글은 ‘이왕주 교수님 만난 후기’였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보니 글쓰기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공개적인 방향으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뭐니 뭐니 해도 ‘자본을 휩쓴 공간을 찾아서’라고 할 수 있다. 학교 게시판에 쓴 글을 제비꽃님은 민들레 카페에 퍼갔으니 말이다. 그건 정말 글을 읽고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나도 심혈을 기울여 썼지만 제비꽃님도 그 글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에 감동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때부턴 강연을 다녀오거나 모임을 다녀오면 이런 식으로 공개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솔직히 그 당시엔 부담도 되었던 게 사실이다. 글 한 편을 쓰는데 몇 날 며칠을 끙끙 앓으며 쓰는 까닭에, 새로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겁부터 더럭 났다. 그러니 자꾸 무거워지고 잘 써야 한다는 중압감에 손조차 대지 못하게 되더라. 더욱이 그 당시엔 지금처럼 한 편의 글을 여러 편으로 잘게 나누어 쓰지 않고 한 편을 쭉 쓰는 편이다 보니 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글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를 수도 없이 반복해야 했고 그 흐름을 완성이 될 때까지 계속 이어가야 했으니 지금보다 훨씬 힘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처음으로 가장 길게 쓴 역작. 정말 몇 날 며칠을 끙끙 앓았는지 모른다. 이 글을 시작으로 긴 글들도 쓸 수 있게 됐다.
다음 블로그에 찾아온 두 가지 변화
많은 글을 썼던 건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한 편 한 편 완성하다 보니, 조금씩 방향이 잡히더라. 나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나에게도 경험치라는 것들이 쌓여갔나 보다.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어떤 글을 올려야 하나?’라는 생각도 많이 바뀌었고 글 자체에 대한 중압감 또한 많이 낮아졌다. 2009년에 블로그를 시작했고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다가 4년이 지난 2015년에서야 블로그에도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첫째는 과거의 기록들을 찾아서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블로그엔 나의 순수창작인 작품들만 올려야한다는 강박이 있고 남에게 내보여도 그럴 듯해 보이는 글들만 올려야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사진을 올리거나 그저 넋두리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다. 그건 ‘글이란 신성하며 대단한 것이야’라는 생각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글을 써보고 여러 글을 공개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갈수록 나를 짓눌렀고 그런 만큼 글을 쓰려하다가도 멈칫거리고 결국엔 아예 쓰지 못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잘 써야 한다’는 생각만 있으니, 한 문단도 쓰지 못한 채 접게 된 글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이쯤 되니 ‘내가 왜 글이란 걸 그토록 신성하고 무겁게 생각하지?’라는 회의감이 들더라. 그럴수록 예전에 별 걱정 없이 일기를 쓰던 때보다도 더 글을 쓰지 못하게 됐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때부턴 그런 생각은 고이 접어두고 블로그를 여러 방면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심혈을 기울인 글도 당연히 올리지만 그렇지 않은 신변잡기에 관한 글도 비공개로 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블로그=나만의 글 창고’라는 인식으로 변해갔고 그때부턴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과거 단재학교의 사진이나 기록들을 모두 끌어오기 시작했고 블로그 안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둘째는 예전 같으면 1편으로 썼던 글들을 최대한 많이 나누어 여러 편으로 쓰게 됐다는 점이다. 그건 어찌 보면 한 편을 여러 편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즉 양을 늘리려는 의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니다. 쓰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니 그걸 잘게 나누어 성취해가기 편하도록 하자는 의도가 깔려 있었고, 그 이전에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한 편에 길게 읽기보단 짧게 짧게 나누어진 게 읽기에 훨씬 편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 예전엔 한 편의 글이 A4 용지로 3~4장을 넘어갔던 것에 비해 지금은 적게는 2장에서 많게는 3장을 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렇게 두 가지의 새로운 개편 방향이 단행되면서 글에 대한 부담은 많이 줄어들었고 블로그엔 다양한 이야기가 채워지게 됐다.
브런치와의 만남
여기에 또 하나의 변화가 찾아온다. 바로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블로그는 이런 과정들을 통해 단순히 글을 쓰는 곳이라기보다 건빵의 글쓰기 재료들이 모이는 창고에 가깝게 변해가고 있었는데, 이때 순수하게 글을 쓸 수 있는 글쓰기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거기엔 내가 창작한 작품들만 모아 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미 브런치와 블로그의 장단점은 글을 써놨으니 거기에 대해선 길게 말하지 않겠다. 근데 재밌는 점은 블로그와 브런치에 동시에 글을 공개함에도 불구하고 브런치는 더욱 사람들의 눈에 잘 띈다는 점이다. 올해 블로그는 10년 차가 되었는데 이제 삼십만명의 누적 방문객을 기록하게 된 데 반해, 브런치는 4년 만에 팔십 만명의 누적 방문객을 기록하고 있다. 예전엔 당연히 이 수치만 보고 다다익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젠 그러지 않는다. 방문객이 늘던, 줄던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헛된 환상은 품지 않고 글쓰기를 통해 뭔가 엄청난 변화가 생길 거라고도 기대하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게 됐다.
▲ 브런치는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건빵 >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10.16 - 애드센스와 PIN번호 (0) | 2019.10.16 |
---|---|
19.06.23 - 티스토리 블로그의 정상화가 완료되다 (0) | 2019.06.23 |
글쓰기의 새 방향 - 목차(19.01.16) (0) | 2019.06.19 |
글쓰기의 새 방향 - 3. 티스토리와 구글 애드센스 (0) | 2019.06.19 |
글쓰기의 새 방향 - 2. 다음블로그와 티스토리 (2) | 2019.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