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 가볼 만한 곳은 모두 달렸지만, ‘남이장군묘’엔 가보지 못했다. 이곳은 애써 찾아야만 겨우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린 외곽으로만 달렸으며 안을 세밀하게 보면서 달리진 않았기 때문에 놓친 것이다.
▲ 남이섬에 왔으면 빠름이나 효율은 버리고 그저 즐겨볼 일이다.
남이섬에선 빠름보단 느림으로, 효율보단 비효율로
진짜 남이장군의 묘는 경기도 화성시에 있고, 이곳은 역모를 꾀한다고 유자광이 모함하여 능지처참을 당하게 된 후에, 그 시체가 묻혀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돌무더기를 묘로 만든 곳이라고 한다. 가묘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남이섬이란 이름의 유래에 해당되는 장소이니만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느라 결국은 가보지 못하고 남이섬 자전거 여행은 끝이 났다.
▲ 남이섬 장군묘를 이번엔 볼 수 없었지만, 다음엔 꼭 볼 수 있기를.
자전거를 타고 몇 바퀴 돌아보니, 맘만 먹으면 남이섬 전체를 돌아보는데 30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겠더라. 하지만 그렇게 하면 어디까지나 ‘모두 돌아다녀 봤다’는 생각만 충족시켜줄 뿐이지, 실제로 기억에 남는 것들은 없게 된다. 2009년에 국토종단을 했을 때 종단 자체가 목표였기에 그 날 그 날 최대한 많이 걸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한 달 만에 목포에서 고성까지 걸으며 종단이란 꿈은 이뤘지만, 각 지역에 대해 기억에 남는 건 그다지 없었다. 모든 곳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곳일 뿐, 사람과 마주치거나 상황과 부딪혀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걸어 다녀 봤다’는 뿌듯함만 있었을 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2011년에 사람여행을 할 땐 사람과 상황과 만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여행을 떠난 것이다.
이처럼 남이섬도 그저 빨리 둘러보는 것을 목표로 삼기보다, 천천히 음미하며 구석구석 느끼겠다는 목표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곳곳에 여러 조형물들이 있고, 다양하게 꾸며져 있다 보니 느긋이 즐기며 다니면 된다.
그러니 늘 빠름만을 추구했던 사람, 효율만을 중시했던 사람, 많이 봐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던 사람, 한 시도 쉴 수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라면, 남이섬으로 배를 타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런 마음들을 북한강에 던져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남이섬의 묘미를 맘껏 느낄 수 있고, 비로소 남이섬에 투영된 나의 망상들을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남이섬이야말로 효율을 거부해야만, 허영을 차단해야만 자세히 볼 수 있고 오래 볼 수 있는 깊은 맛이 있는 섬이라 할 수 있다.
▲ 천천히 걸으며 이 순간에 푹 잠겨 보는 것이다.
최고의 고기파티를 기록하다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고 천천히 걸어서 콘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바로 저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은 고기파티다. 단재학교에서 단체여행을 갈 때면 숯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서 함께 먹는다. 아무래도 소 한 마리도 거뜬히 먹을 수 있는 왕성한 식욕의 청소년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다 보니 이런 식의 푸짐한 고기파티는 결코 빠질 수가 없고, 아이들도 여행하면서 가장 기대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간다.
그런데 여느 고기파티와는 달리 이번 고기파티엔 두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우선 첫째는 시기가 다르다는 점이다. 늘 여행의 마지막 날에 고기파티를 했던 데 반해, 이날은 여행 첫날에 고기파티를 했던 것이다. 그건 아이들이 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요리를 하기에 이곳 주방은 작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번 여행에선 두 번의 저녁을 준비해야 했는데, 한 번은 고기파티를, 다른 한 번은 세 팀으로 나누어져 각자 정한 요리를 하기로 했다. 그러니 당연히 세 팀이 요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엌이 커야 했고 요리도구들도 넉넉해야 하는데, 이곳은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내일 가게 될 펜션은 주방도 두 군데에 있고, 도구들도 넉넉하기에, 지금까지와는 달리 첫 날에 고기파티를 하게 된 것이다.
둘째는 고기를 굽는 사람이 다르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고기는 교사들이 굽고 학생들은 먹고 정리하는 것을 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굽는 동안에 노릇노릇 익은 가장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는 있지만, 상추에 싸서 느긋하게 먹을 수는 없었다. 물론 간혹 아이들이 쌈을 싸서 주기도 하고 밖에 나와 도와주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잠시 뿐이어서, 교사가 편하게 고기를 먹을 순 없었다. 하지만 이때는 180도 달랐다. 불을 붙일 땐, 지민이와 규빈이, 태기가 승태쌤을 도와주었다. 그러니 서로 신나게 놀이를 하듯 불을 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승태쌤은 꼭 이소룡이 기합을 넣듯 “합~ 합!”이란 말로 기합을 넣으며 부채질을 했고, 아이들은 그 모습과 소리가 재밌는지 연신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 모습이야말로 단재학교의 저력 같은 거라고나 할까. 교사도 모두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이 신이 나고, 아이들도 그런 모습을 보며 신나게 함께 해나가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날은 그뿐만 아니라, 고기를 구울 때도 아이들은 떠나지 않았다. 민석이와 태기, 규빈이가 열심히 고기를 구워서 우리에게 보충해줬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모처럼만에 고기가 타나 안 타나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 편하게 앉아 채소에 고기를 쌓아 푸지게 먹을 수 있었다. 전체여행 중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었으니, 이 날의 감흥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 아이들이 직접 나서서 고기까지 굽는다. 참으로 보기 좋다.
그리고 재밌는 점은 이날만큼은 아이들도 자신이 나서서 일을 하는 것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고기를 먹다가 고기가 다 떨어지면, 지훈이에게 “고기 좀 더 가져와라”라고 명령조의 말투로 장난스레 말을 한다. 그러면 지훈이는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화도 내지 않고 당연히 자신의 일인 양 가서 고기를 받아다줬다. 그 덕에 나는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맘껏 채소와 고기를 먹을 수 있었으니, 이것이야말로 ‘건빵 배불리 먹느라, 학생들 신경조차 쓰지 않아’라는 헤드라인 뉴스의 카피로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고, 단재학교에서의 5년 동안의 전체여행 중 단연 최고의 순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재밌는 사실은 배불리 먹은 사람은 많지만, 역시나 고기를 굽는 사람은 그렇게 넉넉하게 먹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민석이는 여행기에 ‘나중에 먹기 시작했을 때는, 고기가 거의 없는 상태였고, 결국 얼마 먹지 못하고 고기 파티는 끝났다’라고 거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아쉬움을 한 가득 담아냈다. 이 문구야말로 고기 굽는 자의 비애를 충분히 담아낸 명문이라고나 할까.
드디어 우리의 고기파티는 끝났다. 이제부턴 이번 전체여행의 컨셉인 ‘공포여행’을 즐길 차례이다. 과연 이곳에서 우린 어떤 납량특집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 먹을 때만큼은 세상의 그 어느 순간보다도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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