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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춤추는 죽음 1, 세종서적, 진중권, 200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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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죽음 1, 세종서적, 진중권, 2005

건방진방랑자 2019. 6. 1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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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된 것은,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인되고 또 십자가형이 폐지된 이후라 한다. 다른 처형 도구가 사용되면서 비로소 십자가는 범죄자를 연상시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기독교의 상징으로 버젓이 자리잡게 된다. -pp 40

 

죽음은 필연적인 게 아니라 뭔가 우연적인 것으로 설명된다는 점이다. 원래 인간은 죽지 않는다. 아담이 우연히 실수를 저지름으로써 죽게 된거다. 죽음은 삶의 본질적인 특징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도덕적 실수 때문에 삶에 덧붙여진 이물질일 뿐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삶에서 떼어내기도 한결 쉬워진다. 죽음을 끌어들인 그 죄를 뉘우치기만 하면 되니까. 이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신은 인간에게 그의 독생자를 보내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3:16)” 이것이 기독교적 전략이 본질이다. -pp 42

 

아리에스에 따르면, 중세 초기만 하더라도 죄인들은 따로 벌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남들이 부활을 하는 날 함께 깨어나지 못할 뿐이었다. 存在의 상실. 그들에게는 바로 이게 가장 큰 형벌이었다. 따로 지옥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그림에 지옥의 장면이 등장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었다. 죄인들은 동료 인간들과 신의 기억 속에서 그냥 사라질 뿐이다. -pp 54

 

영육 이원론이 등장하면, 죽음은 이제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되는 현상으로, 그리고 죽은 자는 영혼이 떠난 몸뚱이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과거에 호모 토투스(Homo Todus : 죽은 자가 잠을 자는 것)는 그저 땅 속에서 잠을 자면 되었다. 하지만 육신을 떠난 영혼은 어디에 머물러야 한단 말인가? 이제 신은 육체를 떠난 영혼들에게 대부활의 그날까지 숙박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어디에?물론 저 하늘 위와 땅 속 깊숙한 곳. 그리하여 한 때 잠에서 깬 호모 토투스를 위한 곳이었던 천국과 지옥이, 이제는 육체를 떠난 영혼의 거처가 된다. 육체의 옷을 벗은 영혼은 과거처럼 부활을 기다리며 잠을 자지 않고 곧바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

하지만 누구를 천국으로 보내고, 누구를 지옥으로 보내야 하는가? 여기서 대심판과 별도로 개인적 심판이라는 생각이 나온다. -pp 77

 

원래 마리아와 성인을 신성시하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에 어긋난다. 왜냐하면 이들은 엄연히 인간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이들은 신성시한 데에는 사실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 다신교를 믿는 미개한 유럽인들의 머리로는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측으로서는 이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이들이 믿던 母神마리아, 그리고 나머지 잡신들을 성인으로 둔갑시키는 쪽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에 들어온 이 미개 종교의 흔적이 어느새 정통 기독교의 입장으로 굳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와 성인들이 문제가 된 것은 이런 신학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니었다. 문제는 마리아와 성인들이 저 개인적 심판에서 변호인의 역할을 한다는 믿음이었다. 말하자면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구제하려면 마리아와 성인들에게 로비를 해야 한다는 교리 덕분에, 카톨릭 교회는 진혼 미사 등을 통해 별 어려움 없이 재정을 꾸려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pp 88

 

인간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자는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있다.”는 교리에서, 죽음의 승리는 앞 문장을, 죽음의 추방은 뒷 문장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죽음의 승리가 강조되기 시작한 것일까?

이 강조점의 차이에서 중세 초기와 후기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중세 초기에 죽음이 아직 패자였을 때, 그러니까 죽음이 단지 영생에 들어가는 문으로 여겨졌을 때,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아무런 공포나 불안감을 갖지 않았고, 현세에도 별로 미련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중세 후기로 갈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현세에 애착을 갖게 되고, 사람들이 이렇게 피안의 영생보다 점점 더 차안의 삶을 집착하게 되자, 교회로서는 죽음의 보편적 승리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세의 모든 것은 어차피 모두 죽어 썩어질 것이다. 그러니 거기에 집착을 갖지 말라. -pp 114

 

미리 알리고 찾아오든 아니면 기습을 하든, 원래 중세의 마카브로(macarbre)에서 죽음을 맞는 사람들의 태도는 비교적 순응적이었다. 사람들은 한탄을 하면서 체념을 하거나, 아니면 반응을 보일 새 없이 그냥 죽었다. 하지만 브뤼겔은 이미 다른 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의 작품에서 산 자들은 더 이상 죽음에 초연하지도 않고, 조용히 체념을 하지도 않는다. 모두들 새파랗게 질려 죽음과 마지막 결투를 벌이고, 이 소규모의 싸움들이 화면 전체로 확대되면서 산 자 전체와 죽은 자 전체의 전쟁으로 번진다. 물론 산 자들의 마지막 몸부림은 승산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부터 죽음은 산 자를 데려갈 때마다 커다란 저항에 부딪쳐야 한다. -pp 160

 

중세 때만 하더라도 천국은 사람들의 집단적 환상 속에서 현실로서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한 때 천국이라는 픽션을 현실로 만들어주었던 그 행복한 집단적 환상을 잃어버렸다. 천국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니라, 단지 바람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영생의 환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물론 삶의 무상함 앞에서의 우울함뿐이다. 이게 바니타스타. 바니타스의 해골은 그저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리는신의 섭리의 상징일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마저 대자연으로 대체되어, 바니타스는 대자연은 섭리를 상징하게 된다. 이로써 바니타스의 종교적 성격은 완전히 사라지고, 이 때 멜랑콜리(melancholie)가 발생한다. -pp 208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동일시는 사실 중세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다. 하지만 16세기부터는 이 전통적인 등식에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그건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다. 중세인들에게 에로스는 타나토스였다. 말하자면 정욕은 사망에 이르는 길이었다.

하지만 16세기에 들어서면 서서히 강조점이 바뀌면서,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앞의 공식이 완전히 뒤집어진다. 이제 타나토스는 에로스가 된다. 그리하여 정욕은 죽음이라는 따분한 도덕 정신이 이제 죽음은 사랑이라는 도착증적 경향을 띠게 된다. 죽음은 사랑이 되고, 시체는 정욕의 대상이 된다. 낭만주의 시대에 등장한 네크로필리아가 이미 이 시기부터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pp 221

 

아리에스에 따르면, 이 생명 없는 물건에 대한 애착이 정물(nature morte)이라는 장르를 낳았다고 한다.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생명 없는 사물들을 예술적으로 미화해서 한 번 더 가지려 했다는 거다. -pp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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