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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이연순, 의승기의 주제의식 고찰 - 3. 주제 의식, 2) 인물 형상을 통한 경과 의의 조화 추구 본문

한문놀이터/논문

이연순, 의승기의 주제의식 고찰 - 3. 주제 의식, 2) 인물 형상을 통한 경과 의의 조화 추구

건방진방랑자 2022. 10. 2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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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인물 형상을 통한 경()과 의()의 조화 추구

 

 

()을 대변하는 성성옹

 

의승기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는 맹호연의 묘사가 가장 많고, 성성옹의 묘사는 그에 비하면 소략하다. 먼저 성성옹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겠다. 성성옹은 처음 도적을 없애고 천군을 다시 왕위에 올리는 인물로서 등장한다.

 

 

마침 한 사람이 스스로 성성옹(惺惺翁)이라 하며 나라의 도적을 제거하고 임금을 불러 돌아와 대위(大位)에 다시 나아가게 하니, 마치 항량이 초왕을 얻은 고사와 같이 구하여 얻었다. 왕의 이름이 또 초왕과 같아 마침내 의제(義帝)라 호하고 화덕(火德)으로 임금노릇하며 하나라의 역수(曆數)를 썼다.

適有一人自稱惺惺翁, 稍除國賊, 喚君而歸, 復卽于大位, 以其求而得之, 如項梁得楚王故事, 王之名又與楚王同, 遂號義帝, 火德王, 行夏之時.

 

 

위에서 성성옹은 경()의 다른 이름으로, 거경(居敬)하는데 성성법(惺惺法)을 썼던 데에서 연유한다. 천군전에서는 성성옹에 해당하는 태재(太宰) ()이 나올 때 백규(百揆) ()도 동시에 나와 천군을 보필하는데, 의승기에서는 성성옹만 단독으로 먼저 나온다. 그에 대한 묘사도 없이 이름만 나온 뒤 도적을 제거한 행적만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천군은 그제야 호()의제(義帝)라 짓는데, 의제 이름에 심()이 들어가기 때문에, 천군이 심(), 곧 마음을 가리킴을 환기한 것이다.

 

마지막에 하나라의 역수를 썼다[行夏之時]’는 것은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안연이 공자께 나라를 위하는 것을 묻자(顔淵問爲邦) 공자가 답한 데서 나왔다. 곧 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을 위하는 정사를 펴야하는 뜻을 보인 것이다. 이로써 천군의 호가 지어지고, 충신 성성옹이 보필하며 하나라의 역수를 쓰는 등 나라로서 갖추어야 할 많은 부분이 정비된다.

 

 

()의 대변자 맹호연

 

이어서 천군은 성성옹을 총재에 임명하여 왕사를 행할 것을 명하나 남은 도적이 다 죽지 않아 안 좋을 때를 타서 쳐들어왔기 때문에 남은 도적을 퇴치할 용사를 모집하자遂下敎曰, 朕頃者德不有終, 大盜肆虐, 周流八紘, 莫適所從. 賴天之靈, 返于安宅, 繼自今 七正九官其交正予, 毋令否德再致向來之亂. 且我家家法, 尊賢爲大, 其令惺惺翁位冢宰行王事, 百官總已以聽, 於是益明習國家事, 民莫不悅, 然而餘寇未殄, 間或乘時而至, 常以此爲腹心之憂, 君於是募於國中曰, 有能恭行王罰, 殄滅餘賊, 吾將位以上將, 與之分閫. 드디어 맹호연이 등장한다.

 

 

맹호연(孟浩然)이란 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됨이 지극히 강하고 큰 기운이 있었다. 일찍이 맹자에게 길러졌으므로 성을 맹씨로 하였다. 이에 드디어 응모하며 스스로 말하기를 천만 사람이라도 내가 갈 것이다.”라 하였다. 천군이 이에 그를 원수(元帥)로 삼아 높이고 기르기를 지극히 하며 그와 더불어 국사를 모의하였다. 이로부터 뒤에 도적이 이르면 문득 깨트리고 달려가니 이년이 지나자 장차 크게 병사를 일으켜 남은 적을 토벌하였다. 맹호연이 왕명을 계승하여 군중에게 맹세하기를 , 너 여섯 군대여, 모두 내 말을 들어라. 도적이 하늘의 떳떳한 도를 업신여기고 어지럽히며, ()와 예()를 해치는구나. 예부터 그 나라가 망하는 데는 그 집을 패하고 그 몸을 죽이니 반드시 이에서 말미암지 않음이 없었다. 어찌 마음 아프지 않으리오. 더하여 최근에 내 나라가 새로 만들어진 것을 틈타서 감히 그 독을 방사하여 나라가 기울고 쓰러지며 주상이 도망가는 데에 이르렀으니, 무릇 혈기 있는 자 누가 분개하고 한탄하지 않으리오. (중략).” 맹세가 끝나고 드디어 행군하였다. 맹호연은 의마(意馬)를 타고 충신 갑옷[忠信甲]을 입고 인의의 방패[仁義楯]를 들고 앞에는 물자기(勿字旗)를 세워 큰 길을 따라 가고 출사는 규율로써 하였다. 보는 사람들이 찬탄하며 이 사람은 참으로 장군이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그 험한 곳에 깊이 들어가 도적의 세계에 이르렀다.

有孟浩然者, 其爲人也有至剛至大之氣. 嘗爲孟子所養, 故冒姓孟氏. 於是遂應募自言千萬 人吾往, 君乃以爲元帥, 尊之至養之至, 與謀國事. 自是後有寇至則輒破走之, 越二年, 將大 擧兵以討餘賊, 浩然承王命誓于衆曰, 嗟汝六師, 咸聽予言, 惟賊侮亂天常, 敗度敗禮. 自古 亡其國敗其家戕其身, 未必不由此焉, 寧不痛心. 加以頃乘我國之新造, 敢肆其毒, 以至邦國 傾覆, 主上播越, 凡有血氣者孰不憤惋. (중략) 誓罷, 遂行軍, 浩然乘意馬, 披忠信甲, 擁仁義 楯, 前豎勿字旗, 遵大路而行, 出師以律, 觀者嘆曰, 此眞將軍. 遂深入其阻, 至賊界.

 

 

맹호연에 관해서는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해 그 인물됨에 관해 직간접 서술을 동원하며 상세히 소개하였다. 먼저 맹호연의 됨됨이를 지극히 강하고 큰 기운이 있었다.’고 직접 서술하고 이어서 맹호연의 이름인 호연의 출처를 맹자라 하여, 성을 맹으로 한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왕명으로 도적을 소탕하러 가기 전에 하는 맹세를 통해서도 맹호연의 사람됨은 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나라를 잃는 일에 마음 아파하며 그동안 천군의 나라를 잃었다 다시 찾기까지의 길고 험했던 과정을 한탄하는 지사(志士)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여러 천군소설에 나타난 의마(意馬)

 

또한 도적을 소탕하러 가기 전 맹호연의 맹세가 끝난 뒤 의마(意馬)’, ‘충신갑(忠信甲)’, ‘인의순(仁義楯)’, ‘물자기(勿字旗)’ 등 주변의 사물들이 소개되는데, 이는 의물화되어 그의 됨됨이에 덧붙여 맹세의 각오를 담아내는 데 한몫한다. 의마는 본래 유마경에 나오는 불교 용어로, ‘심원의마(心猿意馬)’에서 취한 것이다. 여기서는 사람의 마음이 흘러 산란해진 상태를 마치 원숭이와 말이 제어하기 어려운 것에 비유하였다.

 

그러나 의승기에서는 충신인 맹호연이 천군을 대신해 도적의 세계에 타고 들어가는 말[]로 나왔다. 의마는 백호의 수성지와 후대 정기화의 천군본기에도 등장한다. 수성지에서는 천군이 의마를 타고 팔극(八極)을 두루 다니며 주목왕의 고사를 들으려고 하다가 주인옹에 의해 만류 당해, 결국 타지 못하였다. 이때 의마는 천군의 뜻[]을 의물화(擬物化)한 표현이라 풀이되었다김광순, 천군소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96, pp.36~37..

 

그러나 의승기의 의마는 맹호연이 도적을 소탕할 목적으로 타고 가는 사물로 등장하여, 적을 향해 돌진하는 맹호연의 용맹함을 보조하는 한편, 도적의 침입으로 근심하는 천군의 마음을 해소하고 대리 충족해주는 역할까지 한다.

 

 

인의(仁義)는 호연지기의 기본이 된다

 

다음에 나오는 충신갑(忠信甲)’, ‘인의순(仁義楯)’, ‘물자기(勿字旗)’ 등의 사물들은 맹호연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형성하여 도적을 소탕할 수 있게 하는 도구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인의순(仁義楯)’물자기(勿字旗)’에서는 창계가 의()뿐만 아니라 인()을 함께 존중한 뜻이 드러난다. ‘인의순(仁義楯)’은 인의로 무장한 방패요, ‘물자기(勿字旗)’사물(四勿)의 글자를 새긴 깃발’,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의 네 가지 금할 내용을 쓴 깃발이다. 사물(四勿)은 안연이 공자께 인()을 묻자 공자가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인()이 된다.”고 하고, 그 실천 조목으로 답해준 행동들이다. 따라서 이 사물들은 맹호연의 맹세가 단지 말로만 끝나지 않고 맹호연이 철저한 준비를 갖추어 도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창계 또한 훗날 맹자에 관한 독서차록에서 사람이 만약 인의(仁義)를 행하는 것을 배워 의()가 정밀해지고 인()이 익숙해지는 데에 이른다면, ()는 자연히 생길 것이다.”라고 하여 인의(仁義)가 함께 의 바탕이 됨을 강조하였다. 이어서 맹자가 이 기()를 호연(浩然)이라 하고, 주자는 호연을 풀어 성대하게 유행하는 모양人若學爲仁義, 到義精仁熟則氣自然生矣. (중략) 孟子命此氣曰浩然, 朱子釋浩然曰盛大流行之貌.” 창계집22, 讀書箚錄, 孟子.이라 한 언급도 덧붙여,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형성하는 데 인의가 중요함을 제시하였다.

 

 

맹호연의 강조는 무()에 대한 강조

 

이처럼 맹호연은 천군의 나라에 침입한 도적을 퇴치하는데 결정적이고 실제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로 묘사되며 그 주변 사물들까지 의물화되어, 그보다 묘사가 소략한 성성옹에 비해 더욱 부각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맹호연의 용맹함을 강조하여 묘사한 것은 당시 청나라의 무력적 침입으로 무너진 조선 사회에서 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간 것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부분에서 당시 유자로서 병자호란으로 인해 피폐해진 정신의 회복의지가 보이는 것이다.

 

한편 앞서 살펴본 성성옹의 묘사는 소략한 대신, 그 행적에는 의미가 부여되는데, 이는 마지막에 성성옹이 잔존하는 도적을 천군이 문교로 교화할 것을 간하는 언행에서 볼 수 있다.

 

 

성성옹이 간하여 말하기를 선왕은 덕을 빛내어 병사를 돌보지 않으셨습니다. 황제께서는 잘 생각하소서. 문덕을 편지 칠십 일이 안 되어, 순임금의 조정에 완고한 묘족을 이르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니, 천군이 의인이다.” 하셨다. 드디어 병사를 파하고 가르침을 폈다. 두 계단에서 방패와 깃춤을 추며 순임금의 옛 일을 본받으니 남은 적이 모두 와서 복종하였다.

惺惺翁諫曰, 先王耀德不觀兵, 惟帝念哉, 誕敷文德, 不七旬, 可格虞廷之頑苗矣. 君曰義人也. 遂罷兵而敷敎, 舞干戚于兩階, 效虞帝故事, 餘賊皆來服.

 

 

맹호연이 도적을 완전히 평정하고 나서도 한 구석에서 도적이 또다시 침범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맹호연은 계속해서 로써 다스릴 것을 주장한다浩然命將士超其海透其關, 摧其山塡其壑, 人莫有禦之者, 於是其賊悉平. 其後醜虜變詐百 出. 又屈彊於一隅, 議更擧兵以勦之..

 

 

()보단 선정(善政)으로

 

그러나 위에서처럼 성성옹은 순임금이 행한 방법대로 덕으로 교화를 펼 것을 권해, 같은 충신이지만 다른 방법을 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도적을 없애는 과정에서 무사로서 맹호연의 공격적인 자세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지만, 끝까지 남은 도적을 모두 이러한 방법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었다. 이에, 천군이 성성옹이 권한 교화의 방법을 따르면서, ()의 실천을 보인 성성옹의 행적이 부각되는 것이다.

 

순임금은 완고한 묘족을 복종시킬 때 무력이 아닌 문덕을 펴 교화했다고 한다. 묘족은 남방의 오랑캐인데,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이들 묘족을 정벌하라고 명하자 우임금이 군대를 가지고 30일을 기다렸지만 완악하여 복종하지 않았다. 이에 익이 우임금에게 덕으로 감화시킬 것을 권하자 우임금이 그 말을 듣고 회군하여 군대를 거두자 순임금이 문덕을 펴 방패와 깃으로 춤을 추었는데 이때 회군한 지 70일 만에 묘족이 와서 복종하였다帝曰: “咨禹, 惟時有苗弗率, 汝徂征.” 禹乃會羣后, 誓于師曰: “濟濟有衆, 咸聽朕命. 蠢玆有苗, 昏迷不恭, 侮慢自賢, 反道敗德. 君子在野, 小人在位, 民棄不保, 天降之咎, 肆予以爾衆士, 奉辭罰罪. 爾尙一乃心力, 其克有勳.” 三旬, 苗民逆命. 益贊于禹曰: “惟德動天, 無遠弗届, 滿招損, 謙受益, 時乃天道. 帝初于歷山, 往于田. 日號泣于昊天, 于父母. 負罪引慝, 祗載見瞽瞍, 虁虁齋慄, 瞽亦允若. 至誠感神, 矧玆有苗.” 禹拜昌言曰: “,” 班師振旅. 帝乃誕敷文德, 舞干羽于兩階, 七旬有苗格.” 書經, 虞書 大禹謨..

 

위에서 성성옹이 문덕을 편지 칠십 일이 안 되어, 순임금의 조정에 완고한 묘족을 이르게 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한 것은 이러한 고사를 바탕으로 한 말이다. 천군도 최종적으로 순임금이 쓴 덕화를 따르자, 감화를 받은 도적이 복종하였다. 이처럼 의승기에서는 성성옹이 천군에게 순임금의 행적을 모범삼아 교화를 통해 도적을 복종시킬 것을 간하여 천군이 그에 따름으로써 완전한 갈등의 해소를 이룬다. 이는 천상에서 하강한 천군이 적을 소탕한 뒤 국가가 무사해지자 천상으로 다시 상승하는各恭其職, 國家無事, 上在位一百年, 乘六龍朝帝庭不還.” 김우옹, 동강집16, 天君傳 南冥先生作神明舍圖, 命先生作傳, 蓋先生年少時也. 이전의 천군전과는 다른 방식을 취한 것이다.

 

 

주제는 경()과 의()의 조화다

 

이상 의승기의 인물 형상에서 경()을 대변하는 성성옹의 묘사가 적은 대신 행적을 통해 실천적인 면을 강조하고, ()를 대변하는 맹호연에 대해서는 그 자체의 형상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사물들에도 의미를 부여하여 의()와 인()을 함께 존중하고 부각한 면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경과 의 중 어느 한 쪽에만 치중하지 않고 둘을 조화롭게 추구한 작품의 주제 의식이 드러난다.

 

의승기는 제목에서도 경과 의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의승이라는 말은 원래 태공단서(太公丹書)’, 곧 강태공이 지은 단서에 나오는데, 현재 대대례기(大戴禮記)6 무왕천조제59(武王踐阼第五十九)에 전해진다. 이의 전체 문장은 공경이 태만을 이기면 길하고, 태만이 공경을 이기면 멸망하게 되며, 의가 욕심을 이기면 뜻대로 되고, 욕심이 의를 이기면 흉하게 된다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 凶..”이다순자(荀子)』 「의병(議兵)에서도 이와 비슷한 구절이 발견된다. , ‘에 대한 구절은 똑같지만, ‘에 대한 부분은 로 바뀌어 있다. ,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計勝欲者從, 欲勝計 者凶.(계책이 욕심보다 뛰어나면 잘 될 수 있지만, 욕심이 계책보다 뛰어나면 안 좋은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로 되어 있다. 김학주 역주, 荀子, 을유문화사, 2001, 참고.. 여기서 창계가 의승(義勝)’을 따서 제목으로 삼고 ()’를 강조하는 내용으로 지은 것이라 보인다.

 

이전에 지어진 동강의 천군전에도 이 대목은 인용되어 나온다. 천군전앞부분에서 건원제가 맏아들을 하토에 내려 보내 관리들을 거느리게 하면서 태사에게 내린 칙령 마지막에 , 공경함이 승하면 길하고, 게으름이 승하면 망한다[嗚呼, 敬勝則吉, 怠勝則滅].’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경()에 대한 부분만 인용하였고, 뒤에 따르는 의()에 대한 부분은 인용하지 않았다. 천군전에 나타난 심성론의 특징을 고구한 이기대(2009)는 이 부분에 대해 경 자체만을 강조한 것이기보다는, 경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계를 중시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곧 경을 강조한 것은 인간의 심성 수양에 경이 다른 것보다 중요하다는 의미이고, 경의 약화가 인간 심성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경계 차원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이기대, 心性論의 역사적 전개와 金宇顒天君傳」」, 한국학연구, 30, 고려대 한 국학연구소, 2009, pp.113~114.는 것이다.

 

그러나 원래 출처가 되는 문장에서는 ()’()’가 대()가 되어서 나오는데, 동강은 만을 언급하였기에, 이에 대해 창계가 제목에서뿐만 아니라 본문 속에서도 을 대변하는 성성옹과 함께 를 대변하는 맹호연의 활약을 부각함으로써, ‘에 비해 소홀했던 를 강조하며 조화를 꾀하고자 한 것이라 여겨진다.

 

 

 

 

인용

목차 / 지도

1. 서론

2. 창작의 배경

1) 17세기 중반의 사회ㆍ문화적 배경

2) 창계의 생애와 문학성향

3. 주제 의식

1) 지상에 국한한 공간설정과 의 경계

2) 인물 형상을 통한 의 조화 추구

4. 의의와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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