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호연지기(浩然之氣)
“敢問夫子惡乎長?”
惡, 平聲.
○ 公孫丑復問孟子之不動心所以異於告子如此者, 有何所長而能然, 而孟子又詳告之以其故也.
曰: “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
知言者, 盡心知性, 於凡天下之言, 無不有以究極其理, 而識其是非得失之所以然也. 浩然, 盛大流行之貌. 氣, 卽所謂體之充者. 本自浩然, 失養故餒, 惟孟子爲善養之以復其初也. 蓋惟知言, 則有以明夫道義, 而於天下之事無所疑; 養氣, 則有以配夫道義, 而於天下之事無所懼, 此其所以當大任而不動心也. 告子之學, 與此正相反. 其不動心, 殆亦冥然無覺, 悍然不顧而已爾.
“敢問何謂浩然之氣?”
孟子先言知言而丑先問氣者, 承上文方論志氣而言也.
曰: “難言也.
難言者, 蓋其心所獨得, 而無形聲之驗, 有未易以言語形容者.
故程子曰: “觀此一言, 則孟子之實有是氣可知矣.”
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閒.
至大初無限量, 至剛不可屈撓. 蓋天地之正氣, 而人得以生者, 其體段本如是也. 惟其自反而縮, 則得其所養; 而又無所作爲以害之, 則其本體不虧而充塞無間矣.
○ 程子曰: “天人一也, 更不分別. 浩然之氣, 乃吾氣也. 養而無害, 則塞乎天地; 一爲私意所蔽, 則欿然而餒, 卻甚小也.”
謝氏曰: “浩然之氣, 須於心得其正時識取.”
又曰: “浩然是無虧欠時.”
其爲氣也, 配義與道; 無是, 餒也.
餒, 奴罪反.
○ 配者, 合而有助之意. 義者, 人心之裁制. 道者, 天理之自然. 餒, 飢乏而氣不充體也.
言人能養成此氣, 則其氣合乎道義而爲之助, 使其行之勇決, 無所疑憚; 若無此氣, 則其一時所爲雖未必不出於道義, 然其體有所不充, 則亦不免於疑懼, 而不足以有爲矣.
是集義所生者, 非義襲而取之也. 行有不慊於心, 則餒矣. 我故曰, ‘告子未嘗知義, 以其外之也.’
慊, 口簟反, 又口劫反.
○ 集義, 猶言積善, 蓋欲事事皆合於義也. 襲, 掩取也, 如齊侯襲莒之襲.
言氣雖可以配乎道義, 而其養之之始, 乃由事皆合義, 自反常直, 是以無所愧怍, 而此氣自然發生於中. 非由只行一事偶合於義, 便可掩襲於外而得之也. 慊, 快也, 足也.
言所行一有不合於義, 而自反不直, 則不足於心而其體有所不充矣. 然則義豈在外哉? 告子不知此理, 乃曰‘仁內義外’, 而不復以義爲事, 則必不能集義以生浩然之氣矣. 上文不得於言勿求於心, 卽外義之意, 詳見「告子」上篇.
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 無若宋人然:
長, 上聲.
○ 必有事焉而勿正, 趙氏, 程子以七字爲句. 近世或幷下文心字讀之者亦通. 必有事焉, 有所事也, 如有事於顓臾之有事. 正, 預期也.
「春秋傳」曰: “戰不正勝”, 是也. 如作正心義亦同. 此與『大學』之所謂正心者, 語意自不同也. 此言養氣者, 必以集義爲事, 而勿預期其效. 其或未充, 則但當勿忘其所有事, 而不可作爲以助其長, 乃集義養氣之節度也.
宋人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者, 芒芒然歸. 謂其人曰: ‘今日病矣, 予助苗長矣.’ 其子趨而往視之, 苗則槁矣. 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以爲無益而舍之者, 不耘苗者也; 助之長者, 揠苗者也. 非徒無益, 而又害之.”
揠, 烏八反. 舍, 上聲.
○ 閔, 憂也. 揠, 拔也. 芒芒, 無知之貌. 其人, 家人也. 病, 疲倦也. 舍之不耘者, 忘其所有事. 揠而助之長者, 正之不得, 而妄有作爲者也. 然不耘則失養而已, 揠則反以害之. 無是二者, 則氣得其養而無所害矣. 如告子不能集義, 而欲强制其心, 則必不能免於正助之病. 其於所謂浩然者, 蓋不惟不善養, 而又反害之矣.
해석
“敢問夫子惡乎長?”
공손추가 “감히 묻겠습니다. 부자께서는 고자 선생과 비교했을 때 장점이 어떤 것입니까?”라고 여쭈었다.
惡, 平聲.
○ 公孫丑復問孟子之不動心所以異於告子如此者,
공손추는 ‘맹자의 부동심이 고자와 다른 것이 이와 같다는 것을 알고
有何所長而能然,
어떤 장점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가?’라고 물은 것이다.
而孟子又詳告之以其故也.
그러자 맹자가 또한 자세히 그 까닭을 알려줬다.
曰: “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
맹자께서 “나는 말을 잘 이해하며,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라고 말씀하셨다.
知言者, 盡心知性,
지언(知言)이란 것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알아
於凡天下之言, 無不有以究極其理,
모든 천하의 말에 그 이치를 끝까지 확장하여
而識其是非得失之所以然也.
시비득실의 까닭을 알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浩然, 盛大流行之貌.
호연(浩然)은 성대하게 흘러가는 모양이다.
氣, 卽所謂體之充者.
기(氣)는 곧 몸에 확충되었다 일컬어지는 것으로
本自浩然, 失養故餒,
본래는 스스로 성대하였지만 기를 줄을 몰라 삐쩍 마르게 됐다.
惟孟子爲善養之以復其初也.
오직 맹자만이 잘 그것을 길러 그 처음을 회복한 것이다.
蓋惟知言, 則有以明夫道義, 而於天下之事無所疑;
대개 말을 알면 도의에 밝아져서 천하의 일에 의심스러운 것이 없고
養氣, 則有以配夫道義, 而於天下之事無所懼,
기를 기르면 도와 의가 짝을 이뤄 천하의 일에 두려울 게 없으니,
此其所以當大任而不動心也.
큰 임무를 감당하더라도 부동심하게 되는 것이다.
告子之學, 與此正相反. 其不動心,
고자의 학문은 이와 정반대였기에, 그의 부동심은
殆亦冥然無覺, 悍然不顧而已爾.
거의 또한 어둡고 깨닫질 못하여 사나워서 돌아보지 않았을 뿐이다.
“敢問何謂浩然之氣?”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더 감히 묻겠습니다. 호연지기(浩然之氣)란 무엇입니까?”라고 여쭈었다.
孟子先言知言而丑先問氣者,
맹자가 먼저 지언(知言)을 말했는데, 공손추는 기를 먼저 물은 것은
承上文方論志氣而言也.
윗 문장에서 곧 의지와 기를 논했기에 그것을 이어 말했기 때문이다.
曰: “難言也.
맹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말하기가 어렵구나.
難言者, 蓋其心所獨得,
말하기 어렵다는 말은 대개 마음으로 홀로 얻은 것이기에
而無形聲之驗, 有未易以言語形容者.
형태와 소리로 증험할 만한 게 없어 언어와 형용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故程子曰: “觀此一言,
정이천(程伊川)이 말했다. “이 한 마디 말로 보면
則孟子之實有是氣可知矣.”
맹자가 실제로 이 기를 소유했다는 걸 믿을 수 있다.”
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閒.
그 기운 됨이 지극히 크고 굳세어 올바름으로 길러 해를 당하지 않으면 천지의 사이의 꽉 찬다.
至大初無限量,
호연지기는 지극히 크니 애초에 무한하며
至剛不可屈撓.
지극히 굳세니 꺾이거나 휘지 않는다.
蓋天地之正氣, 而人得以生者,
대개 천지의 바른 기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얻어 태어나기에
其體段本如是也.
그 몸의 단계가 본래 이와 같다.
惟其自反而縮, 則得其所養;
오직 스스로 돌아봐 정직하다면 그 기르는 것을 얻을 것이고,
而又無所作爲以害之,
또한 작위하여 해를 입히지 않으면
則其本體不虧而充塞無間矣.
그 본체는 일그러지지 않아 가득 차서 틈조차 없어진다.
○ 程子曰: “天人一也, 更不分別.
정이천(程伊川)이 말했다. “하늘과 사람은 하나다. 다시 분별할 수 없다.
浩然之氣, 乃吾氣也.
호연지기는 곧 나의 기운이다.
養而無害, 則塞乎天地;
길러 해를 입히지 않으면 천지에 가득 찬다.
一爲私意所蔽, 則欿然而餒,
하나라도 사적인 뜻에 의해 가려져 버리면 부족하여져 삐쩍 말라
卻甚小也.”
도리어 매우 작아진다.”
謝氏曰: “浩然之氣,
사량좌(謝良佐)가 말했다. “호연지기는
須於心得其正時識取.”
마음에서 그 바름을 얻었을 때에 알게 되는 것이다.”
又曰: “浩然是無虧欠時.”
또한 말했다. “성대하게 유행하니 일그러지거나 부족할 때 자체가 없다.”
其爲氣也, 配義與道; 無是, 餒也.
그 기운 됨이 의와 도를 짝하지만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삐쩍 마르게 된다.
餒, 奴罪反.
○ 配者, 合而有助之意.
배(配)라는 것은 합하여 도와준다는 뜻이다.
義者, 人心之裁制.
의(義)라는 것은 인심의 제재하는 것을 말한다.
道者, 天理之自然.
도(道)라는 것은 천리의 자연한 것이다.
餒, 飢乏而氣不充體也.
뇌(餒)라는 것은 주리고 결핍되어 기가 몸에 충만하지 않다는 뜻이다.
言人能養成此氣, 則其氣合乎道義而爲之助,
사람이 이 호연지기를 양성한다면 그 호연지기는 도와 의에 합하여 도움이 되어
使其行之勇決, 無所疑憚;
도와 의를 실행하는 용기와 결단력이 있게 하니 의심하거나 꺼리는 게 없어진다.
若無此氣, 則其一時所爲雖未必不出於道義,
만약 이 호연지기가 없으면 한 때의 하는 것이 비록 도와 의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然其體有所不充, 則亦不免於疑懼,
그러나 그 몸에 가득 차지 않아 또한 의심하거나 두려움을 면치 못하여
而不足以有爲矣.
족히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다는 걸 말한 것이다.
是集義所生者, 非義襲而取之也. 行有不慊於心, 則餒矣.
이에 의를 모아 생성되는 것이니, 의란 갑작스레 취해지는 게 아니다. 행하여 마음에 만족함이 없으면 삐쩍 마르게 된다.
慊, 口簟反, 又口劫反.
○ 集義, 猶言積善,
집의(集義)란 선을 쌓는다는 말과 같으니
蓋欲事事皆合於義也.
대개 일마다 다 의에 합해지길 바라는 것이다.
襲, 掩取也,
습(襲)은 갑작스레 취하는 것이니,
如齊侯襲莒之襲.
제나라 제후가 거나라를 습격한다고 할 때의 습(襲)과 같다.
言氣雖可以配乎道義, 而其養之之始,
기가 비록 도와 의에 짝하여 그것을 기르는 시작에는
乃由事皆合義, 自反常直,
일이 모두 의에 합하여 스스로 돌이켜보아 항상 정직하기 때문에
是以無所愧怍, 而此氣自然發生於中.
부끄러울 것이 없고 이러한 기는 자연히 속에서 발생하게 된다.
非由只行一事偶合於義,
다만 하나의 일을 행함에 우연히 의에 합함으로
便可掩襲於外而得之也.
문득 바깥에서 엄습하여 그것을 얻는 것은 아니다.
慊, 快也, 足也.
겸(慊)은 쾌히 여긴다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뜻이다.
言所行一有不合於義, 而自反不直,
행하는 것이 한 번이라도 의에 합치되지 않아 스스로 돌아보아 정직하지 못하면
則不足於心而其體有所不充矣.
마음에 부족하여 몸에 채워지지 못하게 된다.
我故曰, ‘告子未嘗知義, 以其外之也.’
나는 그렇기 때문에, ‘고자는 일찍이 의를 알지 못했다. 그는 의를 외재적인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然則義豈在外哉?
그렇다 하더라도 의가 어찌 밖에 있겠는가?
告子不知此理, 乃曰‘仁內義外’,
고자는 이러한 이치를 몰랐기에, ‘인은 내재하지만, 의는 외재한다’고 했던 것이고
而不復以義爲事,
다시는 의로 일삼으려 하지 않아
則必不能集義以生浩然之氣矣.
반드시 의를 모아 호연지기를 하려하진 못했던 것이다.
上文不得於言勿求於心,
윗 문장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마음에서 이해할 것을 구하려 하지 말라’는 것은
卽外義之意, 詳見「告子」上篇.
곧 의가 외재한다는 뜻으로, 「고자」 상편에 자세히 보인다.
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 無若宋人然:
반드시 호연지기의 기름에 종사하되 효과를 기약해선 안 되고, 마음으로 잊지 않되 자라도록 도와줘선 안 되니, 송나라 사람이 그렇게 한 것처럼 해선 안 된다.
長, 上聲.
○ 必有事焉而勿正,
필유사언이물정(必有事焉而勿正)의 구절에서
趙氏, 程子以七字爲句.
조기(趙岐)와 정명도(程明道)는 이 일곱 글자로 한 구를 삼았다.
近世或幷下文心字讀之者亦通.
근세에 혹 다음 문장인 ‘심(心)’을 아울러 ‘필유사언이물정심(必有事焉而勿正心)’이라 붙여 읽는 사람도 있는데 또한 통한다.
必有事焉, 有所事也,
필유사언(必有事焉)이라는 것은 종사하는 것이 있다는 것으로,
如有事於顓臾之有事.
‘전유에 종사함이 있었다(有事於顓臾)의 유사(有事)와 같다.
正, 預期也.
정(正)은 미리 예측한다는 것이다.
「春秋傳」曰: “戰不正勝”, 是也.
「춘추전」에 “싸울 때 미리 승리를 예측할 수 없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如作正心義亦同.
정심(正心)이라 썼더라도 뜻은 또한 같다.
이것은 『대학』에서 말한 ‘정심(正心)’과는 뜻이 같지 않다.
此言養氣者, 必以集義爲事,
호연지기를 기르려는 자는 반드시 의를 모으는 것을 일삼아 하되
而勿預期其效.
그 효과를 미리 예측해선 안 된다.
其或未充, 則但當勿忘其所有事,
그 혹 채워지지 않더라도 다만 마땅히 그 종사할 것을 잃지 말아야 하며,
而不可作爲以助其長,
작위적으로 그 자라는 것을 도와선 안 되니,
乃集義養氣之節度也.
이것이 의를 모으고 호연지기를 기르는 절도라 할 수 있다.
宋人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者, 芒芒然歸. 謂其人曰: ‘今日病矣, 予助苗長矣.’ 其子趨而往視之, 苗則槁矣. 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以爲無益而舍之者, 不耘苗者也; 助之長者, 揠苗者也. 非徒無益, 而又害之.”
송나라 사람이 그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근심하여 밭으로 가서 싹을 뽑아준 이가 있었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듯 집으로 돌아와 집 안 식구들에게 ‘오늘 몹시 피곤하다. 나는 싹이 자라도록 도와주고 왔다.’고 말했다. 그 자식이 달려가 그것을 보니, 싹은 이미 말라 있었다. 천하에 싹이 자라도록 돕지 않는 이가 적다.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여 아예 버리는 자는 싹을 김매지 않는 자이고, 자라길 돕는 자는 싹을 뽑는 자니, 김매지 않는 자에 비해 뽑아버리는 자는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또한 해가 된다.”
揠, 烏八反. 舍, 上聲.
○ 閔, 憂也. 揠, 拔也.
민(閔)은 근심한다는 뜻이다. 알(揠)은 뽑는다는 뜻이다.
芒芒, 無知之貌. 其人, 家人也.
망망(芒芒)은 무지한 모양이다. 기인(其人)은 가족을 말한다.
病, 疲倦也.
병(病)은 피곤하단 뜻이다.
舍之不耘者, 忘其所有事.
버려두고 김매지 않는 이는 그 종사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揠而助之長者, 正之不得, 而妄有作爲者也.
뽑아 자라는 것을 돕는 이는 바로 얻지 못하여 망령되이 작위를 한 것이다.
然不耘則失養而已, 揠則反以害之.
그러나 김매지 않으면 자라지 않을 뿐이지만, 싹을 뽑으면 도리어 해가 된다.
無是二者, 則氣得其養而無所害矣.
이 두 가지 경우가 아니면, 곧 호연지기가 자라게 되고, 해를 입지 않게 된다.
如告子不能集義, 而欲强制其心,
고자와 같은 이는 의를 모을 줄 몰라 그 마음을 강제로 하고자 하니,
則必不能免於正助之病.
반드시 미리 예측하려하고 도우려 하는 병폐를 면치 못했다.
其於所謂浩然者, 蓋不惟不善養,
그가 말한 호연이라는 것은 대개 잘 길러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而又反害之矣.
또한 도리어 해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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