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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 맹자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 맹자

건방진방랑자 2022. 3. 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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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맹자(孟子)

측은지심의 발견으로 유학의 수양론을 만들다

 

 

길을 가다가 구걸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중 누군가는 그들의 힘없는 손에 동전 몇 푼을 건네주기도 한다. 또한 누군가는 냉정하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들을 도와주는 것은 결국 그들에게 스스로 살아갈 생활력을 빼앗는 것이라고. 이런 냉정한 분석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우리의 마음 한켠에는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맹자가 말한 동정심으로서의 측은지심이다. 공자를 계승한 맹자는 선천적인 동정심을 강조했던 유학자이다. 그는 인간의 모든 윤리적 행동을 이러한 선천적 동정심을 기초로 해서 사유하려고 했다.

 

그의 성선설(性善說)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동정심, 즉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는 마음에서 유래한다.

 

 

 

 

공자 사상을 지키려는 소명의식

 

 

어느 날 밤, 한 제자가 스승을 찾아와 묻습니다.

외부 사람들은 모두 선생님께서 논쟁하기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왜 논쟁하기를 좋아하십니까?”

그러자 스승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내가 어찌 논쟁하기를 좋아하겠는가! 나는 어찌할 수 없어서 논변을 하고 있을 뿐이다. 공자의 사상을 지키지 않으면 모든 인간들이 금수와 다름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자의 사상을 이론화했던 것이다.” 맹자』 「등문공

 

 

아마도 질문했던 제자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자기 스승에 대한 험담을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의 스승은 어디를 가든 어떤 사람을 만나는 화려한 언변과 논리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려고 했습니다. 스승은 그것이 불가피한 일이었을 뿐이라고 변명합니다. 이어서 그는 공자가 창시한 유학 사상을 따르지 않는다면 인간이 모두 자기 이익만을 탐하는 짐승처럼 되고 말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제자에게까지도 논쟁에서 이기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으로 비춰진 유학 사상가인 이 스승은 과연 누구일까요? 바로 이번 장에서 살펴볼 맹자(孟子, BC 390년경~BC 305년경. 또는 BC 372년경~ BC 289년경)입니다. 맹자 본인이 말했던 것처럼, 그는 공자의 사상을 옹호하려고 시도한 최초의 이론가이자 달변가였습니다. 여러분이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그가 의식적으로 유학 사상의 대변인이자 수호자로 자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그는 공자와 함께 공맹(孔孟)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맹자가 살아생전에는 별다른 영향력을 거의 미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당시는 공자의 사상마저도 마치 죽은 개[喪家之狗]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맹자가 살았던 시대는 전국시대(戰國時代, BC 403[또는 BC 476]~BC 221)라고 기록될 정도로 국가들 사이에 목숨을 건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군주들은 자신의 국가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강의 국가로 만들고 싶어 했지요. 이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자기 나라가 강하지 않으면 바로 다른 나라에게 먹히고 말 상황이었으니까요.

 

맹자가 살던 당시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부국강병은 글자 그대로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군대를 강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과연 윤리적인 주장이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 이익[]’에만 기반을 둔 논리일 뿐입니다. 이렇듯 당시는 자신의 나라를 이롭게하려는 의도만이 부국강병을 도모했던 군주들의 머릿속에 가득 차있었습니다.

 

 

어느 날 맹자가 양()나라의 군주 혜왕(惠王)을 만났습니다. 그때 혜왕은 맹자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봅니다.

늙은 선생께서는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오셨습니다. 앞으로 제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가지고 계십니까?”

그러자 맹자는 다음과 같이 엉뚱한 대답을 들려줍니다.

군주께서는 어떻게 이익만을 이야기하십니까? 인의(仁義)와 같은 윤리가 있을 따름입니다.” 맹자』 「양혜왕

 

 

부국강병의 계책을 찾던 군주에게 맹자는 공자가 강조한 인의의 윤리를 제안했던 것입니다.

 

누구나 앞 다투어 부국강병을 도모하던 시절, 혜왕을 포함한 당시 군주들은 맹자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겉으로는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지만, 맹자가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만을 떠들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상황이 맹자의 운명을 결정지었습니다. 논쟁을 통해 부국강병의 논리를 논파하고 공자의 유학 사상을 정당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어느 군주도 그의 이야기를 정치에 반영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맹자는 이러한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났던 추()나라로 돌아와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들과 함께 자신의 사상을 정교화하고 기록하는 데 몰두하게 됩니다. 그래서 탄생하게 된 책이 바로 맹자(孟子) 입니다. , 그럼 맹자는 어떻게 공자가 창시한 유학 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본성을 확충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맹자의 유학 사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는 개념입니다. 맹자는 공자의 유학 사상을 옹호하는 대변인 역할을 자청했던 사상가이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맹자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맹자는 공자가 사유하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새롭게 사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이 가진 선천적인 동정심, 즉 측은지심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했습니다. 공자의 유학 사상에는 공자가 인간의 선천적인 동정심에 대해 사유했다는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맹자는 이러한 동정심의 감정을 통해 유학 사상을 새롭게 부각시킵니다. 먼저 측은지심과 관련된 맹자의 유명한 논증을 꼼꼼하게 읽어보도록 하지요.

 

 

지금 누구든 어린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는 상황을 갑자기 보게 되면 모두 깜짝 놀라서 측은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그 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으려고 해서도 아니고, 지역사회의 친구들에게서 칭찬을 바라서도 아니며,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기 싫어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이러한 점을 살펴보면, 측은해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 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맹자』 「공손추

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 非惡其聲而然也. 由是觀之, 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금인사견유자장입어정, 개유출척측은지심. 비소이납교어유자지부모야, 비소이요예어향당부우야, 비오기성이연야. 유시관지, 무측은지심, 비인야; 무수오지심, 비인야; 무사양지심, 비인야; 무시비지심, 비인야.

 

 

여러분 앞에서 어떤 어린아이가 지금 우물에 빠진다고 가정해 봅시다. 깜짝 놀란 여러분은 그 아이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느낄 것입니다. 보통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고 즉각적으로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동정심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맹자의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그는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즉 측은지심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지를 논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그 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으려는 생각으로 측은지심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둘째, 지역사회의 친구들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측은지심이 생긴 것도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우물에 빠지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서 측은지심이 생긴 것도 아닙니다.

 

첫째와 둘째 논증은 무엇인가 대가를 바라는 우리의 기대에서 측은지심이 출현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그리고 셋째 논증은 어떤 소리를 본능적으로 듣기 괴로워하는 우리의 감각 때문에 측은지심이 출현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은 맹자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주 단순합니다. 측은지심이라는 동정심은 우리의 기대나 감각적 요소로부터 출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대하는 생각도 아니고 감각도 아니라면, 과연 측은지심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분명 우리 안에서 생긴 것은 맞는데, 그곳이 어디라고 말해야 할까요? 이점에 대해 맹자는 측은지심이란 바로 우리 내면 깊숙하게 잠재되어 있는 본성[]에서 생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맹자에 따르면, 측은지심 이외에도 우리 본성에서 직접 유래하는 마음 또는 감정에는 세 가지 종류가 더 있습니다.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입니다. 수오지심은 어떤 행동을 부끄러워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누군가가 침을 뱉은 음식을 내게 주었을 때 내가 느끼는 수치심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나는 이때 쓰라린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낄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다른 사람이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을 내가 알아차렸다고 해봅시다. 이 경우에도 그 사람의 행실을 미워하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수오지심에는 이렇게 나를 부끄러워하고 남의 행동을 미워하는 두 종류의 마음이 모두 포함됩니다. 한편, 사양지심은 어떤 것을 타인에게 양보하려는 마음을 말합니다. 배가 고프지만 애써 구한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는 마음을 예로 생각해볼 수 있지요. 마지막으로 시비지심은 어떤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보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사람을 죽이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하다고 본능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을 그 예로 생각해볼 수 있지요.

 

사실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각으로부터 유래하지 않고 직접 우리의 본성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분명 측은지심의 경우는 위험에 빠진 약자를 보았을 때 즉각적이고 자발적으로 출현하는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사적인 생각이나 감각적 혐오감이 개입될 여지는 별로 없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의 경우도 과연 그럴까요? 이 세 가지 마음은 우리의 의식적인 생각과 판단이라는 층위에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특히 어떤 행동을 부끄러워하거나 어떤 행동을 옳다고 여기는 마음, 즉 수오지심이나 시비지심은 우리의 생각이 가진 반성적 사유 능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측은지심이 골고루 흘러가게 해주면 된다

 

 

몇 가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튼 맹자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라는 네 가지 마음 또는 감정을 우리의 본성에서 출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만약 네 가지 마음이 없다면 인간이 아니라고까지 강하게 단정하고 있지요. 이어지는 구절을 살펴보면, 맹자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네 가지 마음을 더 크게 확충할 것을 요구합니다.

 

 

측은해하는 마음은 인()의 단서이고,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의 단서이다. () 자기에게 이 네 가지 단서를 가지고 있는 이는 모두 확충(擴充)할 줄을 안다. 불이 처음 타오르고 샘물이 처음 솟아나듯이 진실로 사단을 확충할 수 있으면, 온 세상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실로 확충할 수 없다면 자신의 부모조차 섬길 수 없다. 맹자』 「공손추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 凡有四端於我者, 知皆擴而充之矣, 若火之始然, 泉之始達. 苟能充之, 足以保四海; 苟不充之, 不足以事父母.

측은지심, 인지단야; 수오지심, 의지단야; 사양지심, 예지단야; 시비지심, 지지단야. () 범유사단어아자, 지개확이충지의, 약화지시연, 천지시달. 구능충지, 족이보사해; 구지충지, 부족이사부모.

 

 

맹자는 측은지심을 인에, 수오지심을 의에, 사양지심을 예에, 시비지심을 지에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측은지심이나 수오지심을 느끼게 되는 것은 우리 본성이 이미 인과 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단서라고 번역되는 단()이라는 개념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측은지심은 인의 단서이다라는 구절을 한번 생각해보지요.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측은지심이 인으로 확장된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다른 하나는 인이 실현되어 측은지심으로 나타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것이 옳은 해석일까요? 조금 어렵게 느껴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풀어보도록 하지요. 우선, 측은지심이 일차적이고 인이 이차적이라는 입장이 가능합니다. 다음으로, 인이 일차적이고 측은지심이 이차적이라는 입장도 성립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입장이 옳다고 생각하세요? 만약 측은지심이 일차적이라는 입장을 선택한다면, 여러분은 일본의 유학자 이토 진사이나 조선의 유학자 정약용의 관점을 따르는 것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 인이 일차적이라는 입장을 따른다면, 여러분은 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희를 포함한 대부분의 신유학자들을 따르는 셈이 됩니다. 각자 마음속으로 신중하게 생각해보세요. 이 문제에 대해선 뒤에서 좀 더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아무튼 대다수 유학자들의 견해에 따를 때, 맹자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네 가지의 단서, 즉 사단(四端)이라고 부르면서 사단이 본성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라는 개념과 관련된 것입니다. 공자는 우선 예를 우리가 학습하고 배워야 할 외적인 규범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맹자는 예가 우리의 본성으로부터 기원하는 선천적 감정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해, 공자에게 예는 인간 바깥에 존재하는 제도나 규범과 관련된 것이라면, 맹자는 그것이 인간의 내면에 본성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이해한 것이지요.

 

맹자에 이르러 예를 포함해서 유학이 강조해온 모든 덕목들이 이제 인간 내면의 본성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따라서 인자(仁者)나 성인(聖人)이 되는 공부는 이제 더 이상 바깥으로 향할 필요가 없게 되지요. 내 안에 있는 사단의 마음을 확충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맹자는 이런 현상을 마치 샘물이 처음 터져나오는 것, 그리고 불길이 처음 타오르는 것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이렇듯 터져나올 것 같은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샘물이 있으면 우리는 이 샘물이 잘 흐르도록 도랑을 정비하면 될 뿐입니다. 약한 사람이 위기에 처한 것을 보면 저절로 터져나오는 측은지심이 바로 이 같은 상황에 해당됩니다. 우리는 그저 측은지심이 잘 터져나와 골고루 흘러가도록 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이에게 우리의 측은한 감정이 마치 강물이 흐르듯이 흘러가도록 만들면 되는 것이지요.

 

() 공자(孔子) 학습하고 배워야 할 외적 규범 / 제도, 규범
맹자(孟子) 본성으로부터 기원하는 선천적 감정 / 본성

 

 

 

 

성선설을 지키기 위해 고자(告子)와 논쟁하다

 

 

맹자가 보기에 인간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선한 마음 또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위기에 빠진 사람을 보면 우리의 마음은 자연히 그를 동정하는 감정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맹자에 따르면, 이것은 바로 인간의 본성이 선천적으로 선하기 때문이지요. 그 유명한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이 이렇게 해서 탄생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공자의 유학 사상을 변호하려는 숭고한 소명을 부여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옹호했던 것은 자신이 체계화한 성선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볼 수 있지요. 맹자를 읽어보면 우리는 그의 성선설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어떤 사상가를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은 바로 고자(告子)입니다. 물론 그는 유학자는 아니었습니다. 맹자는 이제 고자라는 인물의 도전에 맞서 자신의 성선설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 이제부터 맹자가 어떻게 고자의 도전을 물리치고 성선설을 정당화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지요.

 

 

고자가 말했다.

본성은 버드나무와 같다. 의로움은 버드나무로 만든 나무술잔과 같다. 인간의 본성을 어질고 의롭다고 하는 것은 마치 버드나무를 나무술잔으로 여기는 것과 같다.”

告子曰: “, 猶杞柳也; , 猶桮棬也. 以人性爲仁義, 猶以杞柳爲桮棬.”

고자왈: “, 유기류야; , 유배권야. 이인성위인의, 유이기류위배권.”

 

맹자가 대답했다.

그대는 버드나무의 본성을 따라서 나무술잔을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버드나무의 본성을 해쳐서 나무술잔을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버드나무의 본성을 해쳐서 나무술잔을 만든다고 본다면, 또한 사람의 본성을 해쳐서 사람을 어질고 의롭게 만든다고 보는 것인가? 천하 사람들을 이끌고서 어짊과 의로움을 해치는 것은 분명 그대의 말일 것이다.” 맹자』 「고자

孟子曰: “子能順杞柳之性而以爲桮棬乎? 將戕賊杞柳而後以爲桮棬也, 如將戕賊杞柳而以爲桮棬, 則亦將戕賊人以爲仁義與? 率天下之人而禍仁義者, 必子之言夫!”

맹자왈: “자능순기류지성이이위배권호? 장장적기류이후이위배권야, 여장장적기류이이위배권, 즉역장장적인이위인의여? 솔천하지인이화인의자, 필자지언부!”

 

 

맹자는 인의예지'라는 유학의 덕목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라고 주장합니다. 바로 이 점에 대해 고자가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지요. 고자는 인의예지가 학습된 것, 따라서 외부로부터 강제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본성을 살아 있는 버드나무에 비유하면서, 유학자들이 내세우는 인의예지는 그 버드나무를 가지고 인위적으로 만든 나무술잔과 같다고 말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누구나 알다시피 나무술잔을 만들려면 살아 있는 버드나무는 반드시 죽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고자가 든 이 비유는 결국 유학의 인의예지가 인간의 고유한 생명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외적 폭력을 통해 구성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맹자는 고자가 들었던 버드나무와 나무술잔의 관계를 이용하여 오히려 자신의 성선설(性善說)을 옹호하려고 합니다. 그는 버드나무가 나무술잔이 되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즉 버드나무에는 이미 나무술잔이 될 수 있는 잠재성이 주어져 있다고 말입니다. 그와 반대로, 만약 버드나무에 나무술잔이 될 수 있는 잠재적 본성이 전혀 없었다면, 결코 버드나무는 나무술잔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고자의 입장에서 볼 때 맹자의 이런 논법에는 중대한 문제점이 하나 있습니다. 고자에게 버드나무와 나무술잔은 각각 자신의 힘으로 살아 있는 존재와, 외부의 강제적 힘에 의해 죽은 존재를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 버드나무는 살아 있는 것이고, 나무술잔은 이미 죽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맹자의 논법대로라면 살아 있는 버드나무가 곧 죽은 나무술잔과 같다는 말이 됩니다.

 

이 점에서 맹자는 고자의 논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맹자에게는 버드나무가 살아 있는 나무인지, 방금 베어져 목재로 변한 나무인지의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맹자와 그의 제자들이 맹자에 고자와의 논쟁을 기록한 이유는, 아마도 맹자가 고자를 논파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나는 맹자가 고자의 핵심 논점을 제대로 공격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각자 한번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성향과 인간의 본성

 

 

맹자와 고자 사이의 논쟁 한 가지를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자가 말했다.

본성은 소용돌이치는 물()과 같아서, 동쪽으로 터주면 동쪽으로 흘러가고, 서쪽으로 터주면 서쪽으로 흘러간다. 사람의 본성에 선()과 불선(不善)의 구분이 없는 것은 물에 동과 서의 구분이 없는 것과 같다.”

告子曰: “性猶湍水也, 决諸東方則東流, 决諸西方則西流. 人性之無分於善不善也, 猶水之無分於東西也.”

고자왈: “성유단수야, 결저동방즉동류, 결저서방즉서로. 인성지무분어선불선야, 유수지무분어동서야.”

 

맹자가 대답했다.

물에 진정 동서의 구분은 없지만 위아래의 구분도 없겠는가? 사람의 본성이 선한 것은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사람은 선하지 않음이 없고 물은 아래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없다. 지금 물을 쳐서 튀게 하면 이마를 지나가게 할 수 있고 세차게 밀어보내면 산 위에도 있게 할 수 있다. 이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겠는가? 외적인 힘이 그렇게 만든 것뿐이다. 사람을 선하지 않게 할수도 있지만, 본성은 또한 이와 같을 뿐이다.” 맹자』 「고자

孟子曰: “水信無分於東西. 無分於上下乎? 人性之善也, 猶水之就下也. 人無有不善, 水無有不下. 今夫水, 搏而躍之, 可使過顙; 激而行之, 可使在山. 是豈水之性哉? 其勢則然也. 人之可使爲不善, 其性亦猶是也.”

맹자왈: “수신무분어동서. 무분어상하호? 인성지선야, 유수지취하야. 인무유불선, 수무유불하. 금부수, 박이약지, 가사과상; 격이행지, 가사재산. 시개수지성재? 기세즉연야. 인지가사위불선, 기성역유시야.”

 

 

이번에 고자는 소용돌이치는 물, 즉 단수(湍水)의 비유로 본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고자가 말한 소용돌이치는 물은 생명의 역동성과 고유성을 상징하지요. 마치 냇가에 하늘하늘 가지를 휘날리며 살아 있는 푸른 버드나무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소용돌이치는 물은 동쪽으로 길을 터주면 동쪽으로 흘러가고, 서쪽으로 길을 터주면 서쪽으로 흘러갑니다. 가령 동쪽으로 흘러가는 경우, 소용돌이치는 물의 본성이 동쪽으로 가려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요.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우연히 동쪽으로 흐르게 되었을 뿐이니까요.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 그 자체에는 선과 불선의 계기가 미리 주어져 있지 않다고 고자는 생각했습니다. 선이니 불선이니 하는 것은 모두 외적인 강제에 따라 나중에 결정된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도 만약 처음부터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외적인 효과를 무시하는 황당한 논의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편 논쟁을 즐기기로 정평이 나 있는 맹자답게, 그는 이번에도 고자가 끌고 들어온 물의 비유를 이용해 자신의 성선설(性善說)을 옹호하려고 합니다. 먼저, 그는 물의 본성을 동쪽으로 흘러가느냐 또는 서쪽으로 흘러가느냐의 여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맹자는 물이 아래로 흐르는 자발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시선을 돌립니다. 물론 외부의 힘으로 물을 쳐서 위로 향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땅바닥에 있던 물이 튀어올라 사람의 이마를 적실 수도 있고, 심지어는 산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지요.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맹자는 다음과 같이 반문합니다. “만약 외적인 강제력을 제거한다면, 물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아래로 다시 흐르겠지요. 맹자는 외적인 강제력이 없을 때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성향이 곧 물의 본성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선을 행하는 본성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맹자의 주장이 타당할까요? 물론 여러분은 맹자의 주장이 그르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성향은 물의 본성 때문이 아니라 중력 때문이니까요. 따라서 맹자의 의도와는 달리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성향도 사실 외적인 강제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둥근 돌도 경사진 곳에서는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어쨌든 중요한 점은 맹자가 자신의 성선설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였다는 사실입니다.

 

 

 

 

수양이 이루어진 사람만이 통치자가 될 수 있다

 

 

맹자의 유학 사상에서 가장 큰 특징은 그가 성선설(性善說)을 구성했다는 데 있습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사례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사단의 마음은 우리가 결코 자의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그것은 나에게서 기원하는 것입니다. 결국 내 안에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내가 있는 셈입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사단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우리의 본성입니다. 맹자에 따르면, 우리가 선한 것은 바로 이 본성이 우리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모두 이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이렇게 이해한다면, 공자가 이야기했던 군자와 소인의 구별은 어디서부터 유래한 것일까요?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꾸어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선한 본성을 동일하게 갖고 있는 인간들이 윤리적인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으로 구별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공도자가 물었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대인이 되고 어떤 사람은 소인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公都子問曰: “鈞是人也, 或爲大人, 或爲小人, 何也?”

공도자문왈: “균시인야, 혹위대인, 혹위소인, 하야?”

 

맹자가 대답했다.

대체(大體)를 따르면 대인이 되고, 소체(小體)를 따르면 소인이 된다.”

孟子曰: “從其大體爲大人, 從其小體爲小人.”

맹자왈: “종기대체위대인, 종기소체위소인.”

 

공도자가 다시 물었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대체를 따르고 어떤 사람은 소체를 따르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 “鈞是人也, 或從其大體, 或從其小體, 何也?”

: “균시인야, 혹종기대체, 혹종기소체, 하야?”

 

맹자가 대답했다.

귀나 눈 같은 기관은 사고를 못하여 사물에 가려진다. 사물과 사물이 만나면 끌어당길 뿐이다. 마음이라는 기관은 생각을 하니, 생각하면 깨닫게 되고, 생각하지 못하면 깨닫지 못한다. 이것은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것이다. 큰 것을 먼저 확립하면 작은 것이 빼앗을 수 없다. 이것이 대인일 따름이다.” 맹자』 「고자

: “耳目之官不思, 而蔽於物, 物交物, 則引之而已矣. 心之官則思, 思則得之, 不思則不得也. 此天之所與我者, 先立乎其大者, 則其小者弗能奪也. 此爲大人而已矣.”

: “이목지관불사, 이폐어물, 물교물, 즉인지이이의. 심지관즉사, 사즉득지, 불사즉부득야. 차천지소여아자, 선립호기대자, 즉기소자불능탈야. 차위대인이이의.”

 

 

제자 공도자(公都子), 똑같은 사람인데 왜 대인과 소인의 구별이 생겼는지 스승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맹자는 인간을 두 가지 계기로 설명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대체(大體)와 소체()가 있습니다. 여기서 대체가 글자 그대로 큰 몸을 의미한다면, 소체는 작은 몸을 의미하지요.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 인간에게서 가장 큰 몸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앞에서 살펴본 선천적인 본성을 의미합니다. 또는 이 본성으로부터 나온 윤리적 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반면 작은 몸은 외부 대상에 현혹되기 쉬운 우리의 육체적인 욕망이나 감각을 의미하지요. 맹자는 인간은 바로 두 가지 몸 가운데 어느 하나를 따라야만 하는 숙명에 처해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이라면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지요. 만약 큰 몸, 대체를 따르면 그 사람은 대인이 됩니다. 반면 작은 몸, 소체를 따르면 그 사람은 결국 소인이 됩니다. 맹자의 대인과 소인은 사실 공자가 말한 군자와 소인의 구별을 계승한 것이기도 합니다만, 맹자가 인간을 대인과 소인으로 구별하는 근거는 전혀 새로운 것입니다. 논의를 조금 더 살펴보지요.

 

공도자는 다시 질문을 합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어떤 사람은 대체를 따르게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소체를 따르게 되는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맹자는 감각기관과 마음이라는 이분법을 끌어들입니다. 그는 우리가 감각기관의 욕구를 따르면, 다시 말해 육체적인 욕망을 따르면 제대로 사유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기관을 따라 사유할 수 있으면, 본성으로부터 나온 윤리적 마음을 따르게 된다고 보았지요. 만약 여러분이 깊이 반성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감정이나 마음 중 어떤 것이 나의 본성으로부터 나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맹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생각을 잘 하여 대체로서의 본성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사단의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깨닫게 된 본성을 따르기만 하면, 우리는 곧 대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맹자는 누구나 대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내면에 있는 본성을 긍정하고 그것을 따르면 누구나 대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 맹자의 이와 같은 생각을 정치철학적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볼까요? 여러분은 아마도 맹자의 이 이야기가 얼마나 혁명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맹자시대에도 봉건적인 신분 질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왕의 아들은 왕이 되고, 농민의 아들은 농민이 되고, 노예의 아들은 노예가 되는 식이었지요. 그러나 맹자의 생각에 따르면 왕의 아들이는 노예의 아들이는 누구나 대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사람의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자기 수양을 잘 했는지의 여부가 관건이 된 것이지요.

 

 

 

 

폭군은 당연히 죽여야 한다

 

 

극단적인 사례를 하나 생각해볼까요? 왕의 신분이지만 소체를 따라서 소인이 된 사람이 있고, 농민의 신분이지만 대체를 따라서 대인이 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지요. 이 경우 누가 통치를 담당해야 할까요? 그것은 당연히 후자일 것입니다. 정치를 담당하려면 소인이 아니라 반드시 대인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맹자의 유명한 혁명론이 출현하게 된 배경입니다. 그의 혁명적인 생각을 확인해보도록 하지요.

 

 

()나라 선왕(宣王)이 물었다.

()임금이 걸()임금을 쫓아내고 무왕(武王)이 주()임금을 정벌한 일이 있었습니까?”

齊宣王問曰: “湯放桀, 武王伐紂, 有諸?”

제선왕문왈: “탕방걸, 무왕벌주, 유저?”

 

맹자가 대답했다.

옛날 책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孟子對曰: “於傳有之.”

맹자대왈: “어전유지.”

 

선왕이 다시 물었다.

신하가 임금을 죽일 수 있습니까?”

: “臣弑其君可乎?”

: “신시기군가호?”

 

맹자가 대답했다.

인을 파괴하는 사람은 도적이고, 의를 파괴하는 사람은 강도입니다. 도적이나 강도는 한 사람의 장부라고 말합니다. 한 사람의 장부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맹자』 「양혜왕

: “賊仁者謂之賊, 賊義者謂之殘, 殘賊之人謂之一夫. 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

: “적인자위지적, 적의자위지천, 천적지인위지일부. 문주일부주의, 미문시군야.”

 

 

제나라의 군주 선왕이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아무리 폭군이라 할지라도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분명 선왕은 유학자인 맹자를 의식해서 이런 질문을 던졌던 것이지요. 아마 공자라면 어떤 경우라도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는 것은 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공자는 신하가 자신의 의무를 다해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군주를 바로잡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본 입장이었으니까요. 논어』 「미자(微子)편을 보면 폭군 주()에게 간언을 하다가 죽은 비간(比干)이란 신하의 고사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공자는 폭군에게 간언하다가 죽은 신하인 비간을 인자(仁者)라고 평가합니다. 아무리 나쁜 군주 앞에서라도 신하는 반드시 신하의 예를 지켜야 한다고 본 것이지요.

 

그러나 맹자의 입장은 공자와는 다릅니다. 걸왕이나 주왕은 모두 소인이었기 때문에, 걸왕과 주왕을 시해한 것은 결국 군주를 죽인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맹자는 폭군을 한 명의 평범한 사람, 즉 장부(丈夫)에 지나지 않은 소인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도둑과 강도를 잡아서 죽이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듯이, 폭군도 당연히 죽여야 한다는 입장으로 귀결됩니다. 무섭고 당돌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맹자의 이 이야기는 당시 군주로 재위하고 있던 선왕 앞에서 하기에는 몹시 힘든 이야기였습니다. 선왕을 협박하는 이야기나 다름없었으니까요. 비록 당신이 현재는 군주이지만, 대체를 따르지 않아서 소인이 되면 언젠가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는 엄포를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이 바로 맹자가 그 당시 군주들에게 채용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서도 맹자가 살아 있던 것 자체가 무척 신기한 일입니다.

 

 

 

 

맹자, 후세에 영광을 얻다

 

 

유학 사상에서 맹자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가 최초로 유학 사상을 철학적인 체계로 무장시켰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최초의 유학 사상 이론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만든 체계는 성선설(性善說)이라는 잘 알려진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도덕적으로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뜻이지요. 만약 그의 주장이 옳다면, 성인이 되려는 사람들은 모두 이 선한 본성을 확충하여 현실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유학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수양론적 전통이 확립됩니다. 사실 맹자 이전에 공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언급하기를 극도로 자제했습니다. 논어』 「공야장편을 보면, 제자 자공이 다음과 같이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예의제도에 관한 선생님의 문장은 들을 수 있었으나, 선생님께서 본성과 천도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가 없었다. 논어』 「공야장

子貢曰: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자공왈: “부자지문장, 가득이문야; 부자지언성여천도, 불가득이문야.”

 

 

자공의 말을 살펴보면, 공자는 형이상학적 논증보다는 인자(仁者)로서의 실천적 삶을 지향했던 사상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맹자는 공자와는 달리 인간의 본성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에 몰두했지요.

 

공자와 맹자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또 다른 지점은 예()라는 개념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공자는 예를 주례라는 주나라의 객관적인 정치 질서로부터 사유했습니다. 공자는 예를 어떤 사회이든 그 사회가 안정되려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외적인 규범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맹자는 예라는 것이 외재화된 규범이라기보다 사양지심과 같은 내재화된 인간의 선천적 마음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맹자는 예를 인간의 내면으로 완전히 환원시킨 것이지요. 또한 맹자의 경우, 측은지심(惻隱之心)에 비해 예가 실현된 사양지심은 그 중요성과 위상이 떨어지는 마음입니다. 비록 두 가지 모두 우리의 본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이것은 맹자가 예보다는 인이라는 개념을 중시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맹자가 추구한 이상적인 정치를 인정(仁政)이라고 불렀던 것도 그가 인을 가장 중시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유학자 순자가 맹자를 비판하게 된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순자는 유학자들의 스승, 즉 공자의 사상에서 예가 차지하는 위상을 다시 복원시키려고 했던 인물입니다. 맹자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는 인자가 되기 위해서 객관적인 사회적 규범을 굳이 따를 이유가 없게 됩니다. 자기 내면의 본성만 생각할 줄 알아도 대인 또는 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순자는 바로 이점을 문제 삼습니다. 그는 공자의 유학 사상이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생각으로 응축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게다가 예를 회복해야만 한다는 생각, 다시 말해 예를 실천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우리의 본성이 선하지 않다는 관점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만약 본성에 의해 저절로 선해질 수 있다면, 객관적 규범으로서 예를 따로 학습할 이유가 전혀 없을 테니까요.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이 출현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맹자와 순자 중 과연 누가 승리하게 될까요? 누가 공자의 수제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결과적으로 본다면 그들이 살았던 전국시대에는 순자가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순자의 유학 사상이 당시의 주류 유학으로 공인되었기 때문이지요. 뿐만 아니라 진나라의 주류 사상인 법가 사상도 순자의 제자들에 의해 체계화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가 출현한 이후에는 상황이 역전됩니다. 순자는 이단이고, 오히려 맹자야말로 정통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가게 되었으니까요. 진나라를 무너뜨린 한나라 지식인과 관료들은 진나라의 이념인 법가 사상이 순자에게서 기원했다고 보고 그를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맹자는 공자와 함께 공맹으로 불리면서 진정한 유학자로 존중받기 시작합니다. 순자가 인정받지 못한 이유에는 외적인 강제력과 교육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탓도 있습니다. 외적인 강제력에 대한 인정은 결국 지식인들의 자율성을 훼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지요. 자율적인 자기 수양으로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맹자의 생각이, 자신들의 자율성을 추구하던 한나라 당시 지방 호족들과 지식인들의 구미에 맞아 다시 세상에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더 읽을 것을

 

 

1. 맹자(홍인표, 서울대학교출판부, 1992)

논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맹자도 많은 번역본들이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 그중 이 책이 가장 눈에 띕니다. 되도록 맹자의 사상을 충실히 전달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기 때문이지요. 원문과 번역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으며, 필요에 따라 상세한 주석과 해설이 실려 있어 많은 편의를 제공합니다. 이 번역서의 가장 큰 매력은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매우 높다는 데 있습니다.

 

 

 

2. 맹자 평전(양구오롱, 이영섭 옮김, 미다스북, 2002)

공자와 함께 유학 사상을 대표하는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체계화한 중요한 이론가이지요. 이 책은 춘추전국시대라는 혼란 속에서도 공자의 유학 사상을 지키려고 했던 유학자 맹자의 사상과 삶을 입체적으로 잘 묘사한 평전입니다. 이 책을 통해 여러분은, 자신의 신념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여러 군주를 만나 유세했지만 끝내 좌절했던 맹자의 삶, 그리고 치밀한 논리로 다른 학파의 사상가들과 논쟁을 전개했던 논쟁가로서의 맹자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프랑수아 줄리앙, 허경 옮김, 한울아카데미, 2004)

이 책은 프랑스의 진보 철학자로 알려진 프랑수아 줄리앙의 도전적인 연구서입니다. 저자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맹자의 유학 사상이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맹자를 통해서 윤리를 새롭게 정초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나아가 이 책은 서양 근대철학을 대표하는 루소, 칸트, 니체와 맹자를 비교하면서 설명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맹자의 사유가 루소와 칸트의 윤리학을 넘어서는 듯한 측면을 살펴보면서 나름대로 지적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인용

지도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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