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장 3. 동굴벽화를 그린 이유
이렇게 발생한 인류의 ‘수렵문화’는 약 1만 2천년, 대개 문명이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끝나게 됩니다. 그런데 왜 하필 1만 2천년전에 인간에게 있어서 ‘수렵문화’도 끝나고 실질적인 문명이라는 것도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1만 2천 년 전에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기 때문입니다. 빙하기가 끝나자 인류에게 농경(agriculture)이라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와 더불어 ‘수렵문화’는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동굴벽화에 남은 그들의 역사
그러나 빙하기가 풀리기 이전에는 전부 헌팅을 해서 살아야했던 것이죠. 그런데 문명 이전의, 선사시대 인류의 이 ‘수렵문화’는 ‘선사(先史)’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문자의 기록으로는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수렵문화는 이백만 년의 엄청난 역사를 가진 것이고, 인류의 역사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문자의 기록으로는 남지 않았지만, 이 시기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을 알아 볼 수 있는 자료가 지금까지도 몇 가지 남아 있어요. 그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앞에서 언급하였던 동굴벽화들인 것입니다. 빙하기의 사람들은 그 당시 생존했던 순록이나 들소를 헌팅해서 살았던 것이고, 그것들을 동굴 벽에다 그림으로 남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벽화들이 그려진 시기는 대개 2만 년 전인데, 이것은 거의 문명 발생 직전에 해당합니다. 빙하기의 인류들은 헌팅 마지막 단계의 문화를 동굴 속에 그림으로 남겼던 것이죠.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을 정리한다면, 농경문화 이전에 엄청난 수렵문화가 있었으며 이들에게도 처절한 인간의 생존의 역사(survival record)가 있었던 것이고, 그것이 찬란하게 개화된 마지막 증표가 바로 앞에서 말했던 동굴 벽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 그 문명의 문화 수준을 대강 알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울주 암각화가 있는데, 이런 것도 전부 수렵문화의 소산입니다.
생존을 위한 사냥
그런데 이 정도의 설명으로 만족하신다면 그것은 참 실망입니다. 이상의 설명들은 빙하기의 인류가 동굴벽화를 그린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문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들은 그 컴컴하고 으스스한 동굴 속에, 왜 그런 총천연색 그림(full color painting)을 남겼을까? 그들 중에 화가 지망생이라도 있었던가? 사냥하니깐 단백질을 하도 많이 쳐먹어서 배도 부르고, 그냥 시간도 남으니, 할 일도 없는 마당에 우리가 늘상 먹는 들소나 장난삼아 한번 그리자 하는 의도에서였을까?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단순히 넘기지 말고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빙하기 인간들의 유일한 주거 형태는 혈거(穴居, 동굴)주거였습니다. 인간이 나무에서 내려왔을 때, 들판에서 그냥 사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고, 따로 집을 지을 필요가 없는 동굴이 제일 편한 곳이었던 것입니다. 에스키모의 ‘이글루’니 하는 것은 훨씬 나중에 발생한 주거 형태예요. 그런데 동굴 속은 정말 깜깜합니다. 인간이 불을 발명한 것이 정말 획기적인 일인데, 동굴 벽화를 그릴 때도 이미 불은 있었습니다.
동굴 벽화가 있는 그 동굴, 그 깜깜한 데 들어가, 딱 서서, 횃불을 촤악 키는 그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그러면 신비롭게 밝아지는 그 동굴과 더불어 어마어마하게 질주하는 들소들의 그 약동하는 모습들이 총천연색으로 눈앞에 쫘악 펼쳐질 것 아니겠습니까? 그 나를 압도하는 듯이 강력한 느낌으로 다가서는 들소들의 그 강력한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바로 여기서 우리는 고대인들의 위대한 상상력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파워풀하고 신비적인 모습을 상상하면서 우리의 궁금증을 해결하도록 합시다.
이 빙하기 고대인들의 생존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바로 동물을 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개 좀 먹을 만한 놈들은 자기보다 훨씬 크고 힘도 셉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 헌팅을 한다는 것, 이 동물을 잡는다는 것은 매우 무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처음에는 좀 만만한 작은 것을 잡았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효율성이 떨어지니깐, 점점 더 큰 놈을 노리게 되었겠죠. 큰 놈을 잡으면 빙하기라 썩지 않아서 오래 먹을 수 있으므로 여러 번 사냥하는 수고를 줄여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보다 정교한 공동 작업이 필요하게 됩니다. 오래 먹을 수 있게 이왕이면 큰 놈을 잡자! 이런 목적에서 그들은 그룹을 형성하고 살다가 가장 편한 동굴에 모여서 같이 생활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의 헌팅을 지금의 헌팅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빙하기에는 생물이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지구는 정말 생물로 만원인 거예요. 빙하기 당시 지구의 생태계에는, 200만 인구를 먹일 정도의 식량(food)밖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헌팅은 정말 절망적인(desperate) 것이었고 또 엄청난 재수(chance)였던 거예요. 그러므로 이 빙하기의 사람들은 사냥감을 찾아서 엄청난 이동(migration)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헌팅이라는 것은 아무 때나 안 되는 것이고, 이 챈스를 찾아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이동을 그들은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어디나, 중국 북경 어디든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면서 그 챈스를 찾고 또 찾아 헤매면서 헌팅을 했던 거예요. 그들에게 있어서 헌팅은 무서운 일이기도 했고, 엄청난 재수였던 것이고, 생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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