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히 스님에 대한 마음을 드러낸 동고의 시
白雲涵影古溪寒 | 흰 구름의 그림자를 담아 놓으니 오래된 시내는 차고 |
和月時時上石壇 | 달과 때때로 석단에 오르네. |
詩在山中自奇絶 | 시는 산 속에 있어야 절로 기이해지는데, |
枉尋岐路太漫漫 | 잘못 갈림길을 찾아 너무나 오랫동안 헤매었네. |
『소화시평』 권하 61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시는 동고의 시다. 호음의 시는 스님 자체를 중심에 놓고 그를 인정해주는 말들로 가득 찬 반면에 동고의 시엔 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나오지 않는다. 즉 두 사람의 시는 접근부터 완벽히 달랐던 셈이고, 그 말은 곧 이 시를 쓰려했던 이유가 완전히 달랐던 셈이다.
1구와 2구엔 스님에게 준 시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산 속 제단의 모습만 드러나고 있다. 1구 자체는 시내를 매우 환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내가 차가운 이유는 흰 구름을 한 가득 머금었기 때문이라 시적인 미감을 최대한 살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기조는 2구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시적 화자는 때때로 제단에 올라가기도 했었나본데 그는 그때마다 달과 함께 제단에 올랐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배경이야 달이 두둥실 뜬 밤에 사부작사부작 걸어 제단에 오른 게 될 테지만, 표현으로 보자면 마치 달과 손을 맞잡고서 제단에 오른 듯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왜 이렇게 1~2구를 환상적으로 그려내려 했던 것일까? 그건 결국 3구를 말하기 위해서였다. 3구를 위해 1~2구는 최대한 환상적으로 그러면서도 낭만적으로 묘사하며 3구의 의미를 최대한 증폭시킨 셈이다. 바로 1~2구와 같은 시구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도회지를 벗어난 산속이었기 때문이었다. 산에 가야지만 일상의 분주함, 인간사의 고뇌에서 벗어나 정감에서 우러나오는 시가 저절로 써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3구까지야 잘 끌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4구에선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우선 내가 생각한 방식과 교수님이 얘기해준 방식을 비교하며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자.
枉尋岐路太漫漫 | |
나 | 교수님 |
잘못 갈림길을 찾아 너무 멀고도 멀리 왔네 | 잘못 갈림길을 찾아 너무나 오랫동안 헤매었네. |
얼핏 나의 해석이나 교수님의 해석을 읽어보면 ‘뭐가 어떻게 다른 거지?’라는 생각을 할 법도 하다. 문자 그대로만 해석했기에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저렇게 해석한 이유를 들어보면 그 차이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나는 ‘시는 산 속에 있어야 제 맛이지’라고 말했기 때문에 4구도 그런 연장선 상에서 봤다. 즉, 시적 화자는 지금 산속에 있는 것이고 ‘시가 절로 기이하게 잘 지어지다 보니 시를 짓느라 신경이 팔린 나머지 산길조차 잘못 들어 한참이나 멀리 왔다는 사실조차도 모를 정도였다’는 내용으로 파악한 것이다. 하지만 교수님은 완전히 다르게 본 것이다. 시적 화자는 산속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즉 갈림길에서 속세로 들어섰고 그 길에서 산엔 오지도 못한 채 오랫동안 헤매었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를 왜 지어준 것일까? 그건 바로 우회적으로 ‘오랫동안 스님을 찾아보질 못했는데, 나 스님 보러 가도 되나요?’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오~ 맙소사.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이렇게 은근하게 할 줄이야. 이런 식의 비슷한 정조는 권상 109번에 이달의 시에서도 볼 수 있는 정조다. 이달은 한 번도 절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이 시 면면에 흐르는 정서가 ‘스님 보고 싶네요’라는 정서이고 한 번 가도 되나요라고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노골적인 것보단 이런 은은함에 깊이가 있고 진심으로 느껴진다.
▲ 이게 바로 구름이 담겨 차가워진 시냇물이겠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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