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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61. 빙탄상애(氷炭相愛)의 감성을 담은 소암의 시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61. 빙탄상애(氷炭相愛)의 감성을 담은 소암의 시

건방진방랑자 2021. 10. 2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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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탄상애(氷炭相愛)의 감성을 담은 소암의 시

 

 

儒言實理釋言空 선비는 실리를 말하고 스님은 공(空)을 말하니,
氷炭難盛一器中 얼음과 숯을 한 그릇에 담기 어려워라.
惟有秋山綠蘿月 오직 가을 산의 푸른 넝쿨 사이로 비추는 달빛이 있어야
上人淸興與吾同 스님의 맑은 흥이 나와 같구려.

 

소화시평권하 61 맨 마지막에 인용된 시는 임숙영의 시. 임숙영은 이미 권필이 쓴 임무숙이 삭과됐다는 걸 듣고[聞任茂叔削科]라는 시의 주인공을 말했던 인물이다. 그는 과거에 급제했고 광해군과의 대책을 나누는 자리에서 광해군의 비인 유씨의 친족(유희사, 유희분)이 국정을 좌우하며 고혈을 빼먹고 있는 걸 보고 광해군에게 버드나무[]에 빗대어 뼈 있는 얘기를 했다가 유희분의 눈 밖에 나서 관직이 삭과되었다가 다시 급제하는 등 부침을 겪었던 인물이다. 과연 그는 스님에게 어떤 시를 지어줬을까?

 

임숙영이 쓴 시는 앞의 세 사람이 전해준 시와는 완전히 느낌이다. 앞의 시들은 스님에 대한 그리움이나, 스님이 지닌 불도의 우뚝함 같은 것을 썼다면 여기선 유학자가 보는 불교에 대한 입장을 확실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1구부터 유교와 불교가 차이를 명확히 드러내고 2구에선 아예 얼음과 숯이 한 그릇에 담길 수 없듯이, 유교와 불교도 그렇다고 일침을 놔버린다. 아마 여기까지만 읽었다면 지금 싸우자는 거냐?’라고 오해할 법도 하다.

 

하지만 3구에서부터 그런 일방적인 전개는 확 달라진다. 바로 그렇게 대척점을 세우는 것만 같았는데 3구에선 가을 산의 푸른 넝쿨 사이로 비치는 달빛을 보며 맑은 흥취를 느끼는 건 유자이건 불자이건 상관없이 같다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 이 말을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보면 종교라는, 학문이란 틀로 갈라치기 하면 한없이 나눌 빌미들이 생기지만 인간의 정감, 그리고 좋은 걸 좋다고 하고 아닌 걸 아니라 할 수 있는 공동지평에 이르면 누구나 같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각자가 중시하는 걸로 서로를 등지려하지 말고 인간적인 정감으로 얘기하고 서로 만난다면 더 이상 대립도 없다는 사해평등주의내지는 동양의 이상적인 사회담인 대동사회가 구현되는 것인 셈이다. 어찌 보면 임숙영이 1~2구에서 그렇게 강도 높게 서로의 입장을 나누어 함께 할 수 없는 것처럼 말한 이면에는 3~4구에서 그 이상의 공동지평이 있다는 말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얘기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2구에서 나오는 얼음과 숯[氷炭]’이란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를 나타내는 말이지만, ‘얼음과 숯이 서로 사랑한다[氷炭相愛]’는 성어가 되면 주제가 확 달라진다. 교수님도 이번에 찾으며 알게 된 거라며 우리에게 알려줬는데 아무 멋진 말이어서 듣는 나도 깜짝 놀랐다. 얼음과 숯이 한 자리에 있으면 물과 불의 관계와는 달리 서로를 없애진 않는다. 물과 불은 물이 강할 땐 불을 사그라뜨려 버리고, 불이 강할 땐 물을 수능기로 만들어 증발시켜 버린다. 즉 서로가 서로를 없애는 철 천지 원수의 관계라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숯과 얼음은 그러지 않는다. 숯이 강하더라도 얼음은 물이 되고, 얼음이 강하더라도 숯은 서서히 적셔질 뿐 없어지진 않는다. 그러니 서로의 존재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이기에 빙탄상애(氷炭相愛)’는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할 줄 아는 관계를 나타내는 멋진 말이 된 것이다. 임숙영의 이 시에서 느껴지는 정서도 빙탄상애(氷炭相愛)’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서로의 다름은 충분히 이해했으니, 공동의 지평에선 좋은 걸 보고 좋다고 할 수 있자고 말하기 때문이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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