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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권필 - 문임무숙삭과(聞任茂叔削科) / 궁류시(宮柳詩)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권필 - 문임무숙삭과(聞任茂叔削科) / 궁류시(宮柳詩)

건방진방랑자 2019. 2. 7.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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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숙이 삭과됐다는 걸 듣고

문임무숙삭과(聞任茂叔削科)

 

권필(權韠)

 

 

宮柳靑靑花亂飛 滿城冠蓋媚春暉

朝家共賀升平樂 誰遣危言出布衣 石洲集卷之七

 

 

 

 

 

 

해석

宮柳靑靑花亂飛

궁류청청화난비

궁궐의 버드나무 하늘하늘 어지러이 날리니

滿城冠蓋媚春暉

만성관개미춘휘

온 도성 내의 고관대작관개(冠蓋): 높은 벼슬아치가 타는 수레.들이 임금님의 은혜춘휘(春暉): 봄철의 따뜻한 볕을 들어 부모의 은혜에 비유한 것. 맹교(孟郊)유자음(遊子吟), “어느 뉘라 촌초(寸草)만한 정성으로 봄볕 같은 은혜를 갚는다 하리[誰言寸草心 報得三春暉].” 하였다.라 아첨하는 구나.

朝家共賀升平樂

조가공하승평악

조정에선 태평성세의 즐거움이라 함께 치하하나,

誰遣危言出布衣

수견위언출포의

누가 지조 있는 말을 포의에게서 나오게 했나광해군의 비() 유씨(柳氏)의 아우 유희분(柳希奮) 등 외척의 방종을 비난한 것이라 한다. 광해군이 이 시를 보고 대로하여 그 출처를 찾았다.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에 연루된 조수윤(趙守倫)의 집을 수색하다가 이 시의 원고가 발각되었고, 이윽고 권필은 친국(親鞫)을 받은 뒤 귀양길에 올랐는데, 도성 밖에서 사람들이 주는 전별의 술을 폭음하고 이튿날 운명했다. 시에서 말한 궁궐의 버들은 유씨를 비유한 것이다.? 石洲集卷之七

 

 

해설

이 시는 궁류시(宮柳詩)라고도 하는데 임숙영(任叔英)이 지은 대책문(對策文) 때문에 과거에서 떨어진 소식을 듣고 지은 시이다.

 

광해군(光海君)의 비()인 유씨(柳氏)의 척리(戚里)들이 방자하게 권세를 부리자, 권필이 궁류시(宮柳詩)를 지어 풍자하였는데, 마침내 이 시로 무옥(誣獄)에 걸려들어 광해군의 친국(親鞫)하에 혹독한 형신(刑訊)을 받고 감사(減死)되어 경원부(慶源府)로 귀양 가는 도중, 동대문 밖에서 동정으로 주는 술을 받아 마시고 죽었다. 시에서 말한 궁궐의 버들은 유씨를 비유한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이 광해군일기(光海朝日記)신해(辛亥, 1611) ()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봉산군수(鳳山郡守) 신율(申慄, 1572~1613)이 도적을 잡아서 매우 혹독하게 국문하니, 도적이 죽음을 늦추려고 문관(文官) 김직재(金直哉)가 모반하였다고 하였다. 신율(申慄)이 병사 유공량(柳公亮), 감사 윤훤(尹暄) 등을 통하여 조정에 알리고, 김직재를 묶어 올려 보냈다. 그를 국문하니, 김직재가 황혁(黃赫)과 같이 모의하여 진릉군(晉陵君)을 추대하려 했다고 거짓으로 말하였다. 진릉군은 곧 화순군(順和君)의 양자이며, 순화군의 부인은 황혁의 딸이다. 모두 잡아다가 국문했는데, 황혁은 곤장을 맞고 죽었다. 옥사가 끝나자, 유공량(柳公亮)ㆍ신율(申慄) 및 추관(推官)은 모두 녹훈(錄勳)되었다. 옥사가 신해년(1611)에 일어나 임자년(1612)에 끝났다. (하담록(荷潭錄), 명륜록(明倫錄)). 황혁 집의 문서를 수색할 때에 문서 가운 데서 권필의 시를 얻었는데, 그 시는 이러하다. …… 국청에서 시어(詩語)에 원망하고 비방하는 뜻이 있다 하여 권필을 잡아다가 국문하기를 청하여, 형벌을 받고 멀리 귀양가다가 도중에 죽었고, 권필의 형 권도(權蹈)도 귀양을 갔다. 권필은 유학(幼學)으로, 시국에 마음이 상하여 과기를 그만두고 외척(外戚)들이 용사(用事)하는 것을 분히 여겨 이 시를 지었던 것이다. 여기서 궁궐 버들이란 왕비 유씨(柳氏)를 가리킨다[鳳山郡守申慄 捕盜鞫之甚酷 盜欲緩死 告文官金直哉謀反 申慄通于兵使柳公亮 監司尹暄等聞于朝 繫送直哉鞫之 直哉誣稱與黃赫連謀 欲推戴晉陵君 晉陵卽順和繼後子 而順和夫人赫之女也 並拿鞫 赫殞於杖下 獄成 柳公亮申慄及推官皆錄勳 獄起於辛亥成於壬子荷潭錄明倫錄黃赫家文書搜探時 得權蹕詩於文書中 詩曰 宮柳靑靑鶯亂飛 滿城冠蓋媚春輝 朝家共賀昇平樂 誰使危言出布衣 鞫廳以詩語有怨誹意 請拿鞫 受刑遠竄 道死 鞸兄韜亦被謫 鞸以幼學 傷時廢科 憤戚里用事 有此句 宮柳蓋指王妃柳氏也].”

 

이러한 것은 권필이 지닌 하층민에 대한 연민과 지배층에 대한 적개심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음 권필이 쓴 답송보서(答宋甫書)에서 이러한 성향을 읽을 수 있다.

저는 타고난 성품이 오활하고 방자해서 시속과 어울림이 적습니다. 좋은 집을 만날 때마다 반드시 침을 뱉고 지나가고, 누추한 거리의 초라한 집을 보면 반드시 서성이며 돌아보면서 팔을 베고 누워 물만 마시고 있더라도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는 사람을 본 듯이 생각했습니다. 늘 높은 벼슬아치로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어질다고 하는 자를 만나면 종놈같이 천하게 여겼으나, 기개 있는 개백정으로 향리에서 천대받는 자를 보면 흔쾌히 따라 놀기를 바라며, ‘슬픈 노래를 부르며 강개한 사람을 보기를 바랐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시속에서 괴상하게 보이는 까닭이지만, 저도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세상과 함께 하고 싶지 않아 장차 산야에 물러나 마음을 거두고 성정을 길러 옛사람이 말한 도라는 것을 구하고자 했습니다[僕受性疏誕 與俗寡諧 每遇朱門甲第 則必唾而過之 而見陋巷蓬室 則必徘徊眷顧 以想見曲肱飮水而不改其樂者 每遇紆靑拖紫 擧世以爲賢者 則鄙之如奴虜 而見任俠屠狗 爲鄕里所賤者 則必欣然願從之遊曰 庶幾得見悲歌慷慨者乎 此僕之所以見怪於流俗 而僕亦不能自知其何心也 以此不欲與世俯仰 思將退伏山野 收心養性 以求古人所謂道者].”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179~181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청창연담

한시사

한시미학산책

우리 한시를 읽다

궁유시宮柳詩와 시화詩禍

송강의 무덤을 지나며

998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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