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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눌 - 곡석주(哭石洲)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이안눌 - 곡석주(哭石洲)

건방진방랑자 2019. 2. 1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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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 권필을 곡하며

곡석주(哭石洲)

 

이안눌(李安訥)

 

 

不恨吾生晩 只恨吾有耳

불한오생만 지한오유이

萬山風雨時 聞着詩翁死

만산풍우시 문착시옹사

 

不恨吾生晩 只恨吾有眼

불한오생만 지한오유안

無復見斯人 危途涕空潸

무부견사인 위도체공산

 

詩亡不復採民風 幾箇騷人坐此窮

시망불부채민풍 기개소인좌차궁

最恨靑靑鄴侯樹 只今還誤聖朝中

최한청청업후수 지금환오성조중

 

耳不曾聞目始看 縱敎相訣語應難

최한청청업후수 지금환오성조중

至今淚盡悲無盡 酸在中腸苦在肝

지금루진비무진 산재중장고재간 東岳先生集卷之十

 

 

 

 

 

 

해석

不恨吾生晩 只恨吾有耳

내가 늦게 태어난 것은 한스럽지 않지만, 다만 나에게 귀가 있다는 게 한스럽네.

萬山風雨時 聞着詩翁死

온 산에 바람 불고 비올 때, 시옹이 죽었단 소식을 들었으니

 

不恨吾生晩 只恨吾有眼

내가 늦게 태어난 것은 한스럽지 않지만, 다만 나에게 눈이 있다는 게 한스럽네.

無復見斯人 危途涕空潸

다시 이 사람을 볼 수 없으니, 위태로운 세상살이에서 눈물만 부질없이 나는구나.

 

詩亡不復採民風

시가 사라지고 다시는 백성의 풍속을 채집하지 못한 것은

幾箇騷人坐此窮

몇 시인들이 이런 곤궁함에 연좌되어서 라네.

最恨靑靑鄴侯樹

가장 한스러운 건 푸르디푸른 업후의 나무업후수(鄴侯樹): 업후는 당나라 이필(李泌)의 봉호인데, 그의 아버지 승휴(承休)2만여 권의 서책을 모아서 자손에게 물려주었다고 한다. 鄴侯家傳』】

只今還誤聖朝中

다만 지금 도리어 성스런 조정인 양 오해케 한다는 것이지.

 

耳不曾聞目始看

귀는 일찍이 열지 않았지만 눈으로 처음으로 보며

縱敎相訣語應難

이별하더라도 말하기 응당 어렵기만 했다네.

至今淚盡悲無盡

지금 눈물은 말랐지만 슬픔은 다하지 않아

酸在中腸苦在肝

신물은 창자에 있고 괴로움은 간에 있구나. 東岳先生集卷之十

 

 

해설

이 시는 석주 권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쓴 시이다.

 

이안눌이 권필보다 2살 아래이니, 늦게 태어난 것이 한스러울 것은 없고 다만 죽음의 소식을 들은 귀가 있다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시옹(詩翁)이라 한 권필(權韠)은 광해군의 뜻에 거스른 벗 임숙영(任叔英)이 과거에 합격했다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궁류시(宮柳詩)를 지어 풍자했다가 광해군의 분노를 사서 곤장을 맞고 귀향길에 오르다가 동대문 밖에서 술을 마시다 객사했다.

 

정조(正祖)홍재전서(弘齋全書)』 「일득록(日得錄)에서 이안눌(李安訥)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의 시는, 근고(近古)에는 이러한 품격이 없을 뿐 아니라 중국의 명가(名家) 속에 섞어 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 석주(石洲) 권필(權韠), 눌재(訥齋) 박상(朴祥),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 등 여러 문집만은 못하다. 동악(東岳)의 시()는 언뜻 보면 맛이 없지만 다시 보면 좋다. 비유하자면 샘물이 졸졸 솟아 천 리에 흐르는 것과 같아서,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스스로 하나의 문장을 이루고 있다. 읍취헌(挹翠軒)은 정신과 의경(意境)이 깊은 경지에 도달하여 음운(音韻)이 청아한 격조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산수 간에 노니는 것 같은 생각을 갖게 한다. 세상에서는 소식(蘇軾)과 황정견(黃庭堅)을 배웠다고 하나 대개 스스로 터득한 것이 많아 당()ㆍ송()의 격조를 논할 것 없이 시가(詩家)의 절품(絶品)이라 할 만하다. 눌재(訥齋)는 고상하고 담백하여 스스로 무한한 취미(趣味)가 있으니, 비록 읍취헌과 겨룰 만하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석주(石洲)는 비록 웅장함은 부족하지만 부드러운 맛이 있는데 가끔은 깨우침을 주는 것이 있다. 성당(盛唐)의 수준이라 할 수는 없지만 당()의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면 너무 폄하한 것이다. 소재(蘇齋)19년간을 귀양살이하면서 노장(老莊)의 서적을 많이 읽어서 상당히 깨우친 것이 많았기 때문에 그의 음운이 뛰어나게 웅장하다. 옛사람이 이른바 황야(荒野)가 천 리에 펼쳐진 형세라고 한 것이 참으로 잘 평가한 말이다. 그러나 그 대체는 염락(濂洛)의 기미(氣味)를 잃지 않았으니, 평생 한 학문의 힘은 역시 속일 수 없는 것이다[三淵之詩 不但近古無此格 雖廁中國名家 想或無媿 而猶遜於東岳挹翠石洲訥齋蘇齋諸集 東岳詩 驟看無味 再看却好 譬如源泉渾渾 一瀉千里 橫看竪看 自能成章 挹翠神與境造 格以韻淸 令人有登臨送歸之意 世以爲學蘇黃而蓋多自得 毋論唐調宋格 可謂詩家絶品 訥齋淸高淡泊 自有無限趣味 雖謂之頡頏挹翠 未爲過也 石洲雖欠雄渾 一味裊娜 往往有警絶處 謂之盛唐則未也 而謂之非唐則太貶也 蘇齋居謫十九年 多讀老莊書 頗有頓悟處 故其韻遠 其格雄 古人所謂荒野千里之勢 眞善評矣 然其大體則自不失濂洛氣味 平生學力 亦不可誣也].”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190~191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기녀가 부르는 스승의 사미인곡을 듣고 감정이 사무친 이안눌

우리 한시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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