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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국한시사, 목릉성세(穆陵盛世)의 풍요(豊饒)와 화미(華美) - 난중(亂中)의 명가(名家): 권필(權韠)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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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사, 목릉성세(穆陵盛世)의 풍요(豊饒)와 화미(華美) - 난중(亂中)의 명가(名家): 권필(權韠)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21.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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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표작 증의 하나인 충주석(忠州石)을 보기로 한다.

 

忠州美石如琉璃 충주의 좋은 돌 유리와 같아서
千人劚出萬牛移 천 사람이 캐내어 만 마리 소로 옮기네.
爲問移石向何處 묻노니 어디로 이 돌을 옮기는가?
去作勢家神道碑 가져다가 세도가의 신도비를 만든다네.
神道之碑誰所銘 신도비 쓰는 이 그 누구인가?
筆力倔強文法奇 필력도 굳세고 문체도 기이하네.
皆言此公在世日 모두들 말하네, “이 분은 살아계실 적에
天姿學業超等夷 높은 자질과 학문은 무리보다 뛰어났고,
事君忠且直 居家孝且慈 임금을 섬김에 충직하고 집에서는 효도하고 자애로왔네.
門前絶賄賂 庫裏無財資 문전에는 뇌물이 끊기고 창고에는 재물도 없었다네.
言能爲世法 行足爲人師 말은 능히 세상의 법도 되고 행실은 남들의 사표가 되었네.
平生進退間 無一不合宜 살아 생전 나아가고 물러남에 한 가지도 합당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네.
所以垂顯刻 永永無磷緇 비석에 이름을 크게 새긴 까닭은 영원토록 아니 닳게 함이라네.”
此語信不信 他人知不知 이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남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遂令忠州山上石 부질없이 충주의 산돌을
日銷月鑠今無遺 날로 깎고 달로 녹여 이제는 없다네.
天生頑物幸無口 천생으로 저 돌은 입이 없어 다행이지,
使石有口應有辭 만약 입이 있었다면 응당 말이 있었으리.

 

충주석(忠州石)은 장편고시의 형식으로 당나라 때의 시인인 백거이(白居易)청석(淸石)을 본받아 지은 것으로 당시 부패한 사대부들의 위선과 가식적인 생활의 이면을 폭로한 대표적인 시작이다. 이 외에 고의(古意), 행로난(行路難)등도 당대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풍자한 작품이다. 권필(權韠)이 장편에 특장이 있다고 한 제가들의 평가도 권필(權韠)의 높은 풍자성과 예술성에 공감한 데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당대 현실에 대하여 풍자적인 작품을 많이 썼다는 것은 송시열(宋時烈)이 그의 별집(別集)을 편찬하면서 풍자가 너무 심한 것과 승려들과 화답한 시 500여수를 산삭(刪削)하고 문집에 싣지 않은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권필(權韠)이 이처럼 장편고시의 형식을 이용하여 현실 풍자를 일삼은 것은 그의 타고난 성격과 스승 정철(鄭澈)의 유배, 광해군의 폭정과 인목대비의 유폐 등 당대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성품이 본래 올곧고 세사에 얽매이기를 싫어하여 외척 유씨(柳氏)들의 전횡을 비판하다. 유배의 고초를 겪는 등 순탄치 않은 생애를 보냈다. 그의 유명한 궁류(宮柳)」【原題聞任叔英削科시도 이러한 기질과 유관한 것임은 물론이다.

 

 

 

 

 

 

인용

목차

서사한시

한시미학

16~17세기 한시사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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