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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표작 증의 하나인 「충주석(忠州石)」을 보기로 한다.
忠州美石如琉璃 | 충주의 좋은 돌 유리와 같아서 |
千人劚出萬牛移 | 천 사람이 캐내어 만 마리 소로 옮기네. |
爲問移石向何處 | 묻노니 어디로 이 돌을 옮기는가? |
去作勢家神道碑 | 가져다가 세도가의 신도비를 만든다네. |
神道之碑誰所銘 | 신도비 쓰는 이 그 누구인가? |
筆力倔強文法奇 | 필력도 굳세고 문체도 기이하네. |
皆言此公在世日 | 모두들 말하네, “이 분은 살아계실 적에 |
天姿學業超等夷 | 높은 자질과 학문은 무리보다 뛰어났고, |
事君忠且直 居家孝且慈 | 임금을 섬김에 충직하고 집에서는 효도하고 자애로왔네. |
門前絶賄賂 庫裏無財資 | 문전에는 뇌물이 끊기고 창고에는 재물도 없었다네. |
言能爲世法 行足爲人師 | 말은 능히 세상의 법도 되고 행실은 남들의 사표가 되었네. |
平生進退間 無一不合宜 | 살아 생전 나아가고 물러남에 한 가지도 합당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네. |
所以垂顯刻 永永無磷緇 | 비석에 이름을 크게 새긴 까닭은 영원토록 아니 닳게 함이라네.” |
此語信不信 他人知不知 | 이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남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
遂令忠州山上石 | 부질없이 충주의 산돌을 |
日銷月鑠今無遺 | 날로 깎고 달로 녹여 이제는 없다네. |
天生頑物幸無口 | 천생으로 저 돌은 입이 없어 다행이지, |
使石有口應有辭 | 만약 입이 있었다면 응당 말이 있었으리. |
「충주석(忠州石)」은 장편고시의 형식으로 당나라 때의 시인인 백거이(白居易)의 「청석(淸石)」을 본받아 지은 것으로 당시 부패한 사대부들의 위선과 가식적인 생활의 이면을 폭로한 대표적인 시작이다. 이 외에 「고의(古意)」, 「행로난(行路難)」 등도 당대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풍자한 작품이다. 권필(權韠)이 장편에 특장이 있다고 한 제가들의 평가도 권필(權韠)의 높은 풍자성과 예술성에 공감한 데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당대 현실에 대하여 풍자적인 작품을 많이 썼다는 것은 송시열(宋時烈)이 그의 별집(別集)을 편찬하면서 풍자가 너무 심한 것과 승려들과 화답한 시 500여수를 산삭(刪削)하고 문집에 싣지 않은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권필(權韠)이 이처럼 장편고시의 형식을 이용하여 현실 풍자를 일삼은 것은 그의 타고난 성격과 스승 정철(鄭澈)의 유배, 광해군의 폭정과 인목대비의 유폐 등 당대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성품이 본래 올곧고 세사에 얽매이기를 싫어하여 외척 유씨(柳氏)들의 전횡을 비판하다. 유배의 고초를 겪는 등 순탄치 않은 생애를 보냈다. 그의 유명한 「궁류(宮柳)」【原題는 「聞任叔英削科」】 시도 이러한 기질과 유관한 것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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