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대궐 버들 푸르른데②
이와 비슷한 예화가 하나 더 있다. 권필(權韠)이 시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安得世間無限酒 | 어찌하면 세간의 한없는 술 얻어서 |
獨登天下最高樓 | 제일 높은 누각 위에 혼자 올라 볼거나. |
성혼(成渾)이 이를 듣고, “무한주(無限酒)에 취해 최고루(最高樓)에 오른다 하였으니, 심히 사람과 더불어 함께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것은 위언(危言)이다.”라고 말하였다. 뒤에 그는 과연 시안(詩案)에 걸려 죽었다. 『시평보유(詩評補遺)』에 나온다.
권필(權韠)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시안(詩案)의 전말은 이러하다. 1611년(광해 3) 봄 전시(殿試)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포의의 선비 임숙영(任叔英)이 대책(對策)에서 외척의 교만 방자함과 후비(后妃)가 정사에 간여함을 직척(直斥)한 글을 올렸다. 이를 본 광해군이 격노하여 그의 과거 급제를 취소하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권필은 분개하여 「문임무숙삭과(聞任茂叔削科)」란 시를 지어 이 일을 풍자하였다.
宮柳靑靑花亂飛 | 대궐 버들 푸르고 꽃은 어지러이 날리는데 |
滿城冠蓋媚春暉 | 성 가득 벼슬아친 봄볕에 아양떠네. |
朝家共賀昇平樂 | 조정에선 입을 모아 태평세월 즐거움 하례하는데 |
誰遣危言出布衣 | 뉘 시켜 포의의 입에서 바른 말 나오게 하였나. |
당시 왕비는 유자신(柳自新)의 딸 유씨였는데, 그의 아우 유희분(柳希奮)ㆍ유희발(柳希發) 등 외척들이 그 권세를 믿고 전횡을 일삼아 원성을 사고 있던 즈음이었다. 때문에 첫 구의 ‘궁류(宮柳)’는 중전 유씨(柳氏)를, ‘청청(靑靑)’은 그 득세의 형용을 뜻하는 것으로 대뜸 받아들여졌다. 또 2구의 ‘춘휘(春暉)’는 임금을 뜻하고, ‘미(媚)’는 임금을 향한 아첨으로 이해되었다.
이듬해 봄 2월에는 또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 사건이 일어났다. 관련자의 문서를 조사해 보니, 권필(權韠)의 이 시가 한 관련자의 책 겉장에 써있는 것이 나왔다. 광해군이 읽고는 대노하여 전교하기를, “권필은 도대체 어떤 놈인가? 감히 시를 지어 제멋대로 풍자하였으니, 그 무군부도(無君不道)의 죄가 크다. 마땅히 하나하나 추문(推問)하리라”하였다. 이에 권필은 광해 앞에 끌려 와 홍초(供招)를 받게 되는데, 왕은 극도로 격앙되어 궁유(宮柳)가 외척을 모독한 것이 아니냐며 힐문하였다. 이에 권필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임숙영이 전시 대책에서 광망한 말을 많이 하였으나, 신이 이 시를 지은 큰 뜻은 좋은 경치가 이와 같다면 사람마다 뜻을 얻어 행할 일이지, 숙영이 포의로 있으면서 어찌하여 이 같은 바른 말을 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사옵니다.
대저 옛날의 시인은 흥(興)에 기탁하여 풍간한 일이 있었으므로 신이 이를 본받아서, 숙영이 포의임에도 감히 이와 같이 말하였건만 조정에는 바른 말하는 자가 없으므로 이 시를 지어 제공을 규풍하여 힘쓰는 바가 있게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궁류’ 두 글자는 당초 왕원지(王元之)의 「전시서(殿試詩)」 가운데 ‘대궐 버들 삼월 아지랑이 속에 낮게 드리웠네[宮柳低垂三月烟].’란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시를 보는 자가 시 가운데 ‘유(柳)’자가 있는 때문에 바로 외척을 지척한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지, 신의 본뜻은 그렇지 않사옵니다.
任叔英殿策, 多發狂言, 身臣作此詩, 大意‘好景如此, 而人人得意而行, 叔英以布衣, 何爲如此危言乎?’
大抵古之詩人, 有托興規諷之事, 故臣欲倣此爲之, 以爲: ‘叔英以布衣, 敢言如此, 而朝廷無有直言者’, 故作此詩, 規諷諸公, 冀有所勉勵矣. ‘宮柳’二字, 初取王元之「殿試詩」‘宮柳低垂三月煙’之句, 而見詩者以詩中有柳字, 故直謂指斥戚里云, 身 臣本情則不然.
이에 왕은 더욱 격노하였고, 혹독한 형벌로 석주를 신문하였다. 당시 대신으로 있던 이덕형(李德馨)과 이항복(李恒福)ㆍ최유원(崔有遠) 등이 역옥(逆獄)과 연루되지 않은 무관한 일로 신문함은 성덕(聖德)에 누가 될 뿐 아니라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두 번 세 번 사하여 줄 것을 울며 논하였으나 왕은 끝내 혹독한 매질을 하여 가두고 말았다. 그날 밤 초주검이 된 그에게 대신들의 간청에 못 이겨 마지못해 함경도 경원 땅으로 귀양 보낸다는 전교가 내렸다. 『왕조실록』에 실린 내용이다.
▲ 진수인(陳樹人), 「양류무춘풍도(楊柳舞春風圖)」, 명나라, 135.5X61cm, 중국 광주미술관.
실실이 노오란 금실 가지에 꾀꼬리 한 쌍이 신났다. 한 번 날때마다 금실이 하나씩 생겨난다. 봄이 온 것이다.
인용
7. 대궐 버들 푸르른데①
8. 대궐 버들 푸르른데②
9. 대궐 버들 푸르른데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