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총평
1
이 글은 ‘문장을 짓는 건 진실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하여, 창작의 비의秘義와 비평의 독자적 의의에 대해 언급한 다음, 최종적으로 이 모두를 종합해 독자에게 당부하는 말로 끝맺고 있는바, 앞뒤로 아귀가 딱 맞다.
2
이명과 코골이! 창작과 비평에 대해 말하기 위해 구사하고 있는 이 비유는 대단히 기발하고 참신하다. 한국문학사에서 길이 기억될 만한 창조적 비유가 아닌가 한다.
3
이 글은 창작과 수용의 갭에 대한 예민한 성찰을 보여준다. 이는 창작에 종사한 사람으로서 연암의 깊은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작가만이 볼 수 있는 내밀한 지점이 존재한다는 점, 작가만이 듣는 은밀한 소리가 존재한다는 점에 대한 설파는 창작의 독자적 의의 및 창작 주체의 내면에 대한 깊은 고려 없이는 불가능하다. 연암은 이 점에 대한 성찰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글은 비평의 의의, 비평의 독자적 존립 이유를 적극적으로 승인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이 점은 비평가로서의 연암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창작은 작가의 문제지만 이미 산출된 작품은 객관적 현현물로서의 창작과 성찰적 수용 행위로서의 비평은 각각 독자성을 가지면서도 서로 밀접하고도 긴장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글은 비록 양자의 긴장 관계에 대한 해명은 부족하나 적어도 비평의 독자성에 대한 성찰에서는 의미 있는 진전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4
독일 학자 중에 이리히 아우얼바하Erich Auerbach라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은 자신의 저서 『미메시스』에서, 중세에 이루어진 고상한 언어 일변도의 글쓰기를 반대하여 일상어라든가 비천한 말로 글쓰기가 이루어짐에 따라 리얼리즘이 대두하게 된다고 보았다. 서유럽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긴 하나, ‘말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하면서 기와 조각이나 돌멩이로 상징되는 저 비천하고 하찮은 것들을 진실이라는 이름하에 문학 속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넣고자 한 연암의 기도企圖가 갖는 의의를 이해하는 데 일정하게 도움이 되는 말이다.
5
이덕무는 이 글에 대해 이런 평을 남겼다.
이 글의 대지大旨는 ‘뜻을 잘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진실한 것이다’라는 것이니, 이는 글을 짓는 법문法門이다. 또 자신이 아는 것과 자신이 모르는 것, 남이 아는 것과 남이 모르는 것을 총괄하여 한 편의 글을 이루었다.
이 문집에서 이명은 못 듣더라도 코골이를 듣거든 알려주시오
孔雀舘文稿自序
글이란 뜻만 전달하면 그뿐
文以寫意則止而已矣. 彼臨題操毫, 忽思古語, 强覓經旨, 假意謹嚴. 逐字矜莊者, 譬如招工寫眞, 更容貌而前也. 目視不轉, 衣紋如拭, 失其常度, 雖良畵史, 難得其眞. 爲文者亦何異於是哉?
글의 소재가 진실하기만 하다면 버릴 게 없다
語不必大, 道分毫釐, 所可道也, 瓦礫何棄? 故檮杌惡獸, 『楚史』取名, 椎埋劇盜, 遷ㆍ固是叙, 爲文者惟其眞而已矣.
‘나만 알고 너는 모르는’ 耳鳴
以是觀之, 得失在我, 毁譽在人, 譬如耳鳴而鼻鼾. 小兒嬉庭. 其耳忽鳴. 啞然而喜, 潛謂鄰兒曰: “爾聽此聲, 我耳其嚶, 奏鞸吹笙, 其團如星.” 鄰兒傾耳相接, 竟無所聽, 閔然叫號, 恨人之不知也.
‘너만 알고 나는 모르는’ 코골이
甞與鄕人宿, 鼾息磊磊, 如哇如嘯, 如嘆如噓, 如吹火, 如鼎之沸, 如空車之頓轍. 引者鋸吼, 噴者豕豞, 被人提醒, 勃然而怒曰: “我無是矣.”
기와와 자갈 같은 이 문집을 버리지 않고 봐주셔서 감사
嗟乎己所獨知者, 常患人之不知, 己所未悟者, 惡人先覺, 豈獨鼻耳有是病哉? 文章亦有甚焉耳, 耳鳴病也, 閔人之不知, 况其不病者乎? 鼻鼾非病也, 怒人之提醒, 况其病者乎? 故覽斯卷者, 不棄瓦礫, 則畵史之渲墨, 可得劇盜之突髩. 毋聽耳鳴醒我鼻鼾 則庶乎作者之意也. -『燕巖集』
▲ 전문
인용
지도 / 목차 / 작가 / 비슷한 것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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