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좌절된 꿈을 아로새기다
봄여름 한철을 울고 내처 휴식하는 꾀꼬리 종달새의 교앙(驕昻)함보다, 사철 지저귀는 까마귀 참새의 시끄러움만 가득 찬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시단의 표정이다. 앉을 자리조차 가리지 못하는 범용(凡庸)한 시 따위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지용의 말마따나 꽃이 봉오리를 머금고 꾀꼬리 목청이 제 철에 트이듯, 아기가 열 달을 차서 태반을 돌아 탄생하듯 온전히 제자리가 돌아 빠진 시를 찾아보기 힘든 것은 고금이 한 이치이다.
시의 위의(威儀)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어떻게 쓰는 시가 좋은 시인가? 어찌하면 좋은 시인이 될 수 있는가? 허균(許筠)의 그때나 지금의 여기나 우리를 늘 곤혹스럽게 하는 물음들이다. 이 짧은 글에서는 허균의 시 창작과 관련된 논의만을 추려 간단히 살펴보았다. 오늘날 시인들에게도 음미할만한 것이 될지 모르겠다.
허균의 외가가 있던 강릉 경포대 옆 초당에서 바다를 옆에 끼고 30분 가량 차를 타고 올라가면 사천이란 곳이 있다. 그가 유년을 보냈던 곳이다. 그 뒷산의 이름은 교산(蛟山)인데 실제로는 야트막한 뒷동산에 지나지 않는다. 울창한 숲이 해를 가리고, 산의 등줄기가 구비구비 서려있어 교룡(蛟龍), 즉 이무기가 꿈틀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처음 이곳에서 나는 그의 시비(詩碑)를 찾다가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었다. 이 교산(蛟山)은 허균의 호이기도 하다. 내게는 용으로 승천하지 못하고 꿈을 접어야 했던 허균의 한 상징으로 읽힌다.
인용
1. 조선의 문제아
5. 좌절된 꿈을 아로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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