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고②
좋은 시구를 얻어 기쁜 나머지
당나라 때 주박(周樸)이란 이는 경물과 만나면 괴로이 시구를 찾으며 읊조렸다. 산에서 해가 지는데 돌아오기를 잊은 적도 있었다. 만약 좋은 시구를 얻게 되면 더욱 신이 나서 즐거워했다. 한 번은 들판에서 등에 나무를 지고 오는 나무꾼을 만났는데, 그를 꽉 잡으며 소리 지르기를, “잡았다!”고 하였다. 나무꾼은 너무 놀라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가 그만 나무를 진 채로 땅에 엎어지고 말았다. 그때 마침 순찰 돌던 나졸이 그 광경을 보고 나무꾼을 도적인 줄 알고 붙잡아 신문하였다. 주박(周樸)이 급히 달려와 말하기를, “내가 저 나무꾼을 보자마자 갑작스레 기막힌 영감이 떠올라 좋은 시구를 얻었소.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를 붙잡았던 것이오.”라 하고는, 지은 시를 읊조렸으니 다음과 같다.
子孫何處閑爲客 | 자손들은 어디메서 한가롭길래 |
松柏被人代着薪 | 솔잣나무 대신해서 땔감 되었나. |
이 이야기가 우무(尤袤)의 『전당시화(全唐詩話)』에 보인다.
백옥루를 완공하러 떠난 이하
당나라의 천재 시인 이하(李賀)는 매일 아침 파리한 나귀를 타고 집을 나서는데, 나귀 등에는 낡아 해진 비단 주머니가 하나 매달려 있었다. 길을 가다가 시상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메모하여 주머니 속에 넣곤 하였다.
저물어 돌아오면, 그 어머니가 계집종을 시켜 주머니를 꺼내보게 하였다. 써 놓은 것이 많으면 문득 말하기를, “이 얘가 심장을 다 토해내어야만 그만 두겠구나.”하며 한숨 쉬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이하(李賀)는 그 메모지를 가져다가 먹을 정성스레 갈아 원고지에 또박또박 써서는 다른 주머니 속에 보관하였다. 술에 크게 취하거나 초상이 있는 날이 아니면 언제나 이같이 했고, 이미 지난 원고는 다시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렇듯 작시(作詩)에 지나치게 골몰한 나머지 건강을 해친 그는 27세의 아까운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죽기 전에 한 비단 옷 입은 사람이 나무 판 하나를 가지고 와서는 그에게 말하기를, “옥황상제께서 백옥루가 완공되어 그대를 불러 상량문을 짓게 하고자 하신다.”하였는데, 과연 얼마 뒤에 죽었다. 이 뒤로 세상에서 아까운 인재가 요절하면, 천상에 또 백옥루가 완공된 모양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시에 대한 집착이 낳은 비극
당나라 때 유희이(劉希夷)가 일찍이 「백두음(白頭吟)」을 지었는데, 그 한 연은 다음과 같다.
今年花落顔色改 | 올해 꽃 지자 낯빛도 시어지니 |
明年花開復誰在 | 내년 꽃 피면 다시 누가 있으리오. |
짓고 나서 생각하니, 시의 내용이 매우 불길한지라 이를 지워버리고 다시 읊조렸다.
年年歲歲花相似 | 해마다 해마다 꽃은 비슷하건만 |
歲歲年年人不同 | 해마다 해마다 사람은 같질 않네. |
그래도 시상(詩想)이 역시 펴지질 않자, “사생(死生)은 운수가 있는 것이다. 어찌 이까짓 빈 소리에 연연하랴!”하고는 앞서 지웠던 것까지 모두 남겨 두었다.
그의 장인 송지문(宋之問)이 사위가 지은 위 구절을 너무 아낀 나머지, 자기에게 줄 것을 간절히 청하였다. 유희이(劉希夷)는 장인에게 짐짓 그러마고는 했으나 끝내 주지는 않았다. 이에 자기를 속였다 하여 격분한 송지문은 하인을 시켜 흙주머니로 눌러 사위를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의 나이 서른도 못 된 때의 일이다. 시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낳은 패륜의 살인극이다. 『당재자전(唐才子傳)』에 전한다. 사실 여부야 차치하고라도, 과연 시에 대한 이같은 집착과 애착이 있고서야 진정으로 시를 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창작의 고통
주흥사(周興嗣)가 하루 저녁 사이에 「천자문(千字文)」을 만들어 올렸는데 수염과 머리털이 다 세어 버렸다. 돌아와서는 두 눈을 한꺼번에 실명하고, 죽을 때에는 마음이 단전(丹田)을 떠난 것 같았다 한다. 사령운(謝靈運)은 반일 동안에 시 백 편을 짓고서 갑자기 이가 열두 개나 빠졌으며, 맹호연(孟浩然)은 눈썹이 모두 떨어졌다고도 한다. 위상(魏裳)은 『초사(楚史)』 76권을 저술하고는 심혈이 모두 닳아서 죽고 말았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실려 있다. 창작한다는 것은 이같이 피를 말리는 일이다.
인용
11. 개미와 이①
12. 개미와 이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