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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작시(作詩), 즐거운 괴로움 - 12. 개미와 이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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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작시(作詩), 즐거운 괴로움 - 12. 개미와 이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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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개미와 이

 

 

시를 무가치하게 보다

 

사실 실용적으로만 말한다면 시처럼 아무 짝에 쓸모없는 것도 없고, 시인처럼 무능한 인간들도 없다. 공연히 세상 고민을 혼자 다 짊어진 듯이 끙끙대지만, 실제로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김종직(金宗直)영가연괴집서(永嘉連魁集序)에서, “문장은 잗단 기예(技藝)이다. 시부(詩賦)는 더더욱 문장의 보잘 것 없는 것이다[文章, 小技也. 而詩賦, 尤文章之靡者也].”라고 했는데, 앞뒤 헤아리지 않고 보면 시()란 것은 소기(小技)인 문장 중에서도 가장 하급에 속하는 것이 된다. 정약용(丁若鏞)은 또 오학론(五學論)에서 문장학이란 우리 도()의 커다란 해독이다. 대저 이른바 문장이란 것은 무엇이던가? 문장이란 허공에 걸려 있고 땅에 퍼져 있으니, 어찌 바람을 보고 달려가 붙잡기를 바랄 수 있는 것이겠는가[文章之學, 吾道之鉅害也. 夫所謂文章者何物? 文章豈掛乎空布乎地, 可望風走而捉之者乎]?”라고 하고, 나아가 세상에 보탬이 되지 않는 글은, 한 평생 읽고 외워 본들 슬프고 우울하기만 하지 천하와 국가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문학의 심각한 해독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시에 가치를 부여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이(李珥)인물세고서(仁物世藁序)에서 말이란 것은 소리의 정채로운 것이고, 문사(文辭)란 것은 말의 정채로운 것이며, ()란 것은 문사(文辭)의 빼어난 것이다[言者, 聲之精者也; 文辭者, 言之精者也; 詩者, 文辭之秀者也].”라고 하였다. 권필(權韠)시라는 것은 말의 정채로운 것이다라고 한 바 있다. 이렇게 보면 시()는 또 인간의 언어 가운데 가장 빛나는 보석이다. 사실 세상에는 쓸모만으로 따지면 맥 빠지는 일들이 많다. 춤이니 그림이니 하는 것들도 쓸모없기는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사람을 배부르게 해주지도 않고, 그다지 기쁘게 해주지도 못한다. 마라톤 주자가 42.195Km를 달린다 한들 그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황영조의 쾌거에 마음 설렌다.

 

 

 

시인의 마음가짐

 

오늘날 말하는 당() 나라 때의 시의 융성은 앞서 여러 제가의 시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약간은 미친 듯한 열기와 목숨을 건 집착 속에서 이룩된 것이다. 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두 눈을 바늘로 찌르며, 심장을 다 토해낼 듯, 가슴 속에 찬 서리가 든 듯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이들은 오직 시를 위해 살았고, 시를 위해 일생의 심력을 다 쏟아 부었다. 고인(古人)의 이러한 거울 위에 오늘의 시단(詩壇)을 비추어 보면 어떨까? 날마다 시집이 쏟아져 나오고, 잡지마다 시가 넘쳐흐르지만, 낙루(落淚)의 감격은 고사하고 수염을 꼬는 고심의 흔적도 찾지 못할 시가 수두룩하다. 정신은 간 데 없이 껍데기만 남은 시가 너무도 많다.

 

비록 그렇기는 해도, 이 아무 데에 쓸모없는 시를 짓느라고 고금(古今)에 피를 말리며 밤을 지새는 시인을 어찌 손 꼽을 수 있으랴. 그 고심참담의 결과를 앞에 놓고 독자들은 마음의 위안을 얻고 삶의 깊은 의미를 읽는다. 중요한 것은 시가 인간의 언어 가운데 가장 정채로운 보석이든, 아무 짝에 쓸모없는 해독(害毒)이든 간에 시는 시라는 사실이다. 그것을 보석으로 만들고 독약으로 만드는 것은 오로지 시인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예술(藝術)과 광기(狂氣)

2.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고

3.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고

4.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

5.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

6.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

7. 가슴 속에 서리가 든 듯

8. 가슴 속에 서리가 든 듯

9. 참을 수 없는 가려움, 기양(技癢)

10. 참을 수 없는 가려움, 기양(技癢)

11. 개미와 이

12. 개미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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