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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작시(作詩), 즐거운 괴로움 - 10. 참을 수 없는 가려움, 기양(技癢)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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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작시(作詩), 즐거운 괴로움 - 10. 참을 수 없는 가려움, 기양(技癢)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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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참을 수 없는 가려움, 기양(技癢)

 

 

그렇다면 시인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어, 정신을 피폐케 하고 진기(眞氣)를 온통 소모해 가면서까지 순단월련(旬鍛月鍊), 시구의 조탁에만 힘 쏟게 하는가.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떠날 수 없게 만드는 마물(魔物)이 있으니, 옛 사람들은 이를 일러 시마(詩魔)라 했다.

 

 

 

이규보와 시마

 

이규보(李奎報) 또한 매요신(梅堯臣)과 마찬가지로 시벽(詩癖)이란 제목의 긴 시를 남긴 바 있다.

 

年已涉縱心 位亦登台司

나이 이미 칠십을 지나 보냈고 지위 또한 삼공(三公)에 올라 보았네.

始可放雕篆 胡爲不能辭

이제는 시 짓는 일 놓을 만도 하건만 어찌하여 능히 그만 두지 못하는가.

朝吟類蜻蛚 暮嘯如鳶鴟

아침엔 귀뚜라미처럼 읊조려 대고 저녁에도 올빼미인양 노래 부르네.

無奈有魔者 夙夜潛相隨

어찌할 수 없는 시마(詩魔)란 놈이 아침저녁 남몰래 따라 와서는,

一着不暫捨 使我至於斯

한 번 붙어 잠시도 놓아주지 않아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네.

日日剝心肝 汁出幾篇詩

날이면 날마다 심간(心肝)을 도려내 몇 편의 시를 쥐어 짜내지.

滋膏與脂液 不復留膚肌

내 몸의 기름기와 진액일랑은 다 빠져 살에는 남아 있질 않다오.

骨立苦吟梞 此狀良可嗤

뼈만 남아 괴롭게 읊조리나니 이 모습 정말로 우스웁구나.

亦無驚人語 足爲千載貽

그렇다고 놀랄만한 시를 지어서 천년 뒤에 남길만한 것도 없다네.

撫掌自大笑 笑罷復吟之

손바닥을 부비며 홀로 크게 웃다가 웃음을 그치고는 다시 읊조려 본다.

生死必由是 此病醫難醫

살고 죽는 것이 필시 시 때문일 터이니 이 병은 의원도 고치기 어렵도다.

 

아쉬울 것 없는 일흔을 넘긴 노인이 피골이 상접하도록 시작(詩作)에만 몰두하는 가긍한 정황을 적고 있다. 죽고 사는 것이 시에 달려 있다 했으니 이쯤 되면 병도 중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시 때문에 생긴 증세를 자가(自家) 진단하는 마당에서도 시로써 그 처방을 내리고 있으니, 과연 시를 떠나서는 단 하루도 삶의 보람은 없게 되고 말 것이 아닌가. 자신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모두 시마(詩魔) 때문이라 하였는데, 이 시마(詩魔)란 놈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 자세히 소개하기로 하겠다.

 

 

 

김득신과 시마

 

김득신(金得臣) 또한 고음(苦吟)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시에 몰두할 때면 멍하니 다른 것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아내가 한 번은 점심상에 상치를 얹어 내오면서 일부러 초장을 놓지 않았다. 작시에 골몰한 그는 밥을 먹으면서도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보다 못한 아내가 초장이 없는데 싱겁지도 않느냐고 묻자, 그는 응응! 모르겠어.” 했더란다. 동시화(東詩話)에 보인다.

 

그도 시벽(詩癖)시 한 수를 남기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爲人性癖最耽詩

이 내 성벽이 시 짓기를 좋아하여

詩到吟時下字疑

시 지어 읊을 제면 글자 놓기 망설이네.

終至不疑方快意

끝내 의심 없어야만 비로소 통쾌하니

一生辛苦有誰知

일생의 이 괴로움 알아줄 이 그 누구랴.

 

한 글자라도 바로 놓이지 않으면 마음에 쾌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쳤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평생 스스로를 이렇게 괴롭히니, 그 사이의 괴로움을 누가 알겠느냐는 넋두리다. 이어 그는 ! 오직 아는 자라야 이러한 경계를 더불어 말할 수 있으리라. 지금 사람들은 얕은 배움으로 경솔하게 시를 지으면서도 남을 놀래킬 말만 지으려 든다. 또한 어리석지 않은가[! 唯知者, 可與話此境. 今人以淺學率爾成章, 便欲作驚人語. 不亦踈哉]?”라는 말을 덧붙였다. 종남총지(終南叢志)에 보인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예술(藝術)과 광기(狂氣)

2.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고

3.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고

4.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

5.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

6.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

7. 가슴 속에 서리가 든 듯

8. 가슴 속에 서리가 든 듯

9. 참을 수 없는 가려움, 기양(技癢)

10. 참을 수 없는 가려움, 기양(技癢)

11. 개미와 이

12. 개미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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