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살아가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공부다
‘독립출판’이란 생소한 개념어를 듣고 막무가내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마지막 강의만을 남겨두게 됐다. 7월의 땡볕 더위 속에 시작된 강의는 7월의 마지막과 함께 마지막을 고한 것이다. 역시 뭐든지 시작하고 보면 어떻게든 시간은 흐르며, 그 시간만큼 배우게 된다.
▲ 학교에서 센터로 가는 길. 7월은 덥고 습했지만, 그만큼 가슴은 뜨거웠고 열정은 타올랐다.
신나게 한바탕 잘 공부했다
이때 배우는 게 단순히 강사가 전해준 지식적인 부분만 있는 건 아니다. 배운다는 건 단순히 모르던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을 넘어서 사람과 함께 어우러지는 일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강의를 듣는 시간은 소통하는 시간이자, 인연이 엮이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고, 그건 곧 공부하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아래에 인용한 우치다쌤의 말을 들어보자.
결국엔 살아가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공부입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얽히고설키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철학을 하는 겁니다. 쓸모없는 시간은 없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초조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치다 타츠루 저, 박솔바로 역, 『곤란한 결혼』, 민들레 출판사, 2017년, 142~143쪽
우치다쌤은 젊은 시절에 이혼을 했고 18년 동안 딸을 홀로 키웠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어떻게 양육과 연구가 동시에 가능한가? 양육을 하는 시간 때문에 공부하는 데에 손해 본다는 생각은 없었나?’하는 따위의 질문을 자주 받았나 보다. 이에 대해 우치다쌤은 위와 같이 대답하며, 양육과 연구는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에 초조해하지도 손해 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 공부란 앎에 대한 얘기가 아닌, 삶과 인간에 대한 얘기다.
이런 우치다쌤의 말을 들어보면 『중용中庸』이란 책의 내용이 떠오른다. 중용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하겠다는 뜻으로, ‘시중時中(때에 맞게 적절히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중용은 그런 일련의 과정을 인간관계론으로만 풀지 않고, 그렇게 적절히 해나가면 천지자연과 어우러지며 상생하게 된다는 거시적인 전망까지 담고 있다. 나라는 사람은 한 개체에 불과하지만, 그런 내가 시중하려 하면 할수록 성실해지고 그건 천지자연의 상생에도 크나큰 기여를 한다는 것이다. 그처럼 대와 소를 나누지 않고, 거창한 일과 사소한 일을 분별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군자의 도는 부부로부터 시작되어지며 극진함에 이르러선 천지에서 살펴진다. (君子之道 造端乎夫婦 及其至也 察乎天地 -『中庸』 12장)’라고 말한다. 이 말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거창한 일이든, 위대한 일이든 모든 시작은 아주 미미한, 사소한, 평범한 일 속에서 시작된다는 통찰이다.
우치다쌤의 깨달음이나 『중용』의 통찰이나 그 근본은 일상이나 평범함, 사소함에 대한 칭송이라는 점에서 같다. 이처럼 공부나 철학도 지금의 협소한 의미를 벗어나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공부를 단순히 대학에 가기 위한, 시험에 패스하기 위한 협소한 의미로 쓰지 않는다면, 철학을 단순히 철학 학위를 가진 사람의 전유물로 여기지 않는다면, 우린 강의를 듣는 시간을 통해 공부하고 있었으며, 철학하고 있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니 말이다. 4번의 강의에 함께 모든 이들이 함께 공부하고 철학했다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 1학기 마지막 날 대청소 중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 현세. 어찌 보면 이런 사소한 일 속에 공부도 철학도 있다.
박스를 보면 인디자인이 보인다
저번 시간엔 인디자인의 기초에 대해 배웠다. 이미 『다르다』를 만들며 인디자인을 활용해본 적이 있기에, ‘이 시간엔 내가 알지 못하던 기술들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나야 이미 이 프로그램을 활용해본 적이 있지만(그래봐야 아주 기본적인 기능만 쓸 뿐이지만), 이 강의에 참여한 교사들은 이 프로그램이 처음이니 말이다. 그러니 이진곤 강사님도 그런 상황에 맞게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3시간 안에 가르치기엔 기본적인 기능만 알려주기에도 벅찬 시간이었다.
그래도 이 시간에 배운 것 중에 인디자인 편집의 세 가지 과정(1. 박스를 만든다 / 2. 박스 안에 개체를 넣는다 / 3. 박스를 배치한다)은 매우 유용했다. 기본적으로 인디자인도 레이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포토샵은 개체를 불러올 때부터 이미 그 개체가 하나의 레이어로 인식을 하지만, 인디자인은 박스를 먼저 만들어야 그게 레이어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 박스 안에 텍스트든, 이미지든 배치해야 하고 그걸 또 본문 어딘가에 배치할지도 정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인디자인이 포토샵에 비해 좀 더 어려워 보이지만, 내 입장에선 인디자인이 훨씬 쉽고 간편하게 느껴진다. 포토샵은 패널에서 내가 원하는 레이어를 선택해야 수정할 수 있는데 반해, 인디자인은 본문에서 수정하길 원하는 박스를 더블클릭하면 곧바로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디자인에서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은 바로 ‘박스’다.
▲ [다르다] 3호 편집 모습. 인디자인 안에 수많은 박스들이 보인다. 결국 이 박스를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관건이다.
역시 기능을 알면 더 편하게 편집할 수 있다
이번 주엔 마스터 페이지를 만드는 방법과 표지를 만드는 방법, 그리고 표지를 만들 때 세네카(책등)을 계산하는 방법, 거기에 패키지 작업하는 방법까지 배울 수 있었다. 어쩌면 이진곤 강사님도 되게 애를 먹었을 게 뻔했다. 이번 강의에서 어떻게든 알려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알려주고 마무리 지어야 하니 말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가르쳐 달라’는 말도 안 되는 주문과 같다. 이런 경우를 많이 당해보셨던지 도올쌤 같은 경우는 ‘내 강의를 들으면서 3시간 이하로 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은 아예 강의 청탁을 하지 마세요(기억에 의한 내용으로 약간 내용이 다를 수 있음)’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짧은 시간 안에 고갱이를 전부 해야만 했으니, 이진곤쌤은 얼마나 진땀을 뺐을까.
이때 배운 내용 중 페이지 수 바로 옆에 섹션(1장 ~~~) 넣는 법과 패키지 작업하는 법은 많은 도움이 됐다. 이런 기능이 있다는 걸 몰라서 『다르다』를 만들 땐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패키지 작업 같은 경우엔 아예 폴더 하나를 만들어주고 편집 작업을 하는 아이들에게 “이 폴더 안에 텍스트 파일, 이미지 파일, 그리고 폰트까지 넣어서 작업해야 나중에 이미지가 깨지는 일이 없어‘라는 말을 했었다. 그때 패키지를 알았다면 그렇게 잔뜩 위압적인 표정으로 딱딱하게 말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인디자인이 미국 프로그램이다 보니, 한글 폰트를 인식하지 못해 한글폰트까지 패키징하진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패키징 작업이 끝난 후에 별도로 본문에 사용한 한글 폰트만 수작업으로 복사해줘야 한단다. 아무렴 어쩌랴, 이로 인해 좀 더 편안한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그것이면 충분한 것을.
▲ 마지막 강의임에도 최선을 다해서 알려주고 계시는 이진곤 강사님.
7월이 강의와 함께 훌쩍 지나다
이로써 3시간의 마지막 강의가 끝났고, 4번의 강의가 성황리에 끝났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끝났을 땐 말로 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오고, 그에 덩달아 4주 동안 함께 했던 이들과 헤어진다는 마음에 서운하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4주 동안 이곳에 모여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간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고 반 토막이 난 강의 시간이지만 최선을 다해 알려주고, 짐프리에 찾아갔을 때도 편안하게 이야기 나눠 준 이진곤 강사님께도 감사하다.
2017년 7월의 무더위는 독립출판이란 키워드로 시작해서 ‘내 책을 내고 싶다’는 바람으로 끝이 났다.
▲ 7월 한 달 동안 함께 활동했던 교사들과 강사님, 그리고 and님. 이젠 각자의 자리에서 신나게 살아봅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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