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책의 편집엔 가독성을 위한 고민의 흔적이 담긴다
저번 주엔 뒷풀이를 하며 무려 3시간 30분간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래서인지 한 주 만에 보는데도 어제 만난 사람처럼 반갑기만 하더라. 함께 강의를 듣는 교사들과는 동병상련 같은 게 있고, 김진곤 강사님과도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친근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 인디자인을 본격적으로 다루며 실전연습을 하고 있다.
인디자인은 배치 프로그램
오늘은 인디자인이란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사용법을 알려줬다. 그렇지 않아도 김진곤 강사님은 여러 학원을 다니며 인디자인을 배웠다고 한다. 기본적인 작업부터 좀 더 전문적인 작업까지 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우리에겐 딱 두 번의 강의동안 고갱이만 빼서 알려줄 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인디자인은 글을 쓰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글과 사진을 배치하는 프로그램입니다”라고 강조했는데, 그건 인디자인의 성격을 말함과 동시에, ‘지금부턴 자신의 글을 어떻게 배치하여 더 돋보이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책을 보면서 책마다 본문이 배열되는 위치도 제각각이었으며, 사진이나 자료가 첨부되는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제작자의 입장이 아닌 늘 독자의 입장에서만 책을 읽은 터라, 그런 부분에 대해선 크게 관심을 갖거나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열심히 알려주고 계시는 이진곤 강사님. 그 덕에 책을 다시 보게 됐다.
책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편집 방향
이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두 권의 책이 스쳤다. 두 권 다 내용은 충분히 좋은데도 편집 방향이 잘못됐기 때문인지 읽을 때 꽤나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2011년에 서현사에서 나온 『불협화음론자 비고츠키 그 첫 번째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교육학을 공부한 사람치고 비고츠키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늘 비고츠키는 삐아제와 비교당하기 일쑤고 단편적인 내용(ZPD나 사회적 구성주의와 같은 것들)으로 ‘무너진 한국 교육을 일으켜 세울 이론을 제시한 사람’ 정도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비고츠키는 그런 기대와는 사뭇 다른, 그러면서도 더 깊은 통찰을 말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좋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책이 잘 읽히질 않는다는 것이다. 종이가 반들거려 텍스트에 집중하기가 힘들며, 2도 인쇄(검은 잉크와 빨간 잉크)가 되어 있는데 박동섭 교수가 중간 중간 덧붙이는 글을 빨간 박스 안에 넣어 편집하다보니, 산만해 보인다. 꼭 잡지를 읽을 때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그 당시엔 내용이 좋아서 꾸역꾸역 참고 읽기는 했는데, 그게 참 곤욕스런 일이어서 두 번은 읽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은 에듀니티에서 새롭게 편집된 책이 나와서 다행이다.
▲ 그래도 개정판이 잘 나와서 다행이다.
두 번째 책은 통나무 출판사에서 2010년에 나온 『도올의 도마복음한글역주』라는 책이다. 정경正經으로 인정된 66권은 ‘진리의 글’이라 인정받았지만, 그 외의 책들은 위경僞經으로 낙인 찍혀 늘 멸시와 오욕을 당해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도마복음인데, 도올쌤은 바로 이 책을 역주하여 세상에 알린 것이다. 기독교를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도마가 전하는 예수의 모습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문제작을 펼치고 하나하나 살펴볼 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편집을 잘못했다는 데에 있다. 원래 이 글은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글이어서 한 주에 한 번씩 여행기 형식으로 실렸었다. 그러니 하나의 글이 신문 한 페이지에 실릴 분량이어야 한다. 도마복음도 성경처럼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그런 상황이다 보니 한 장일지라도 좀 더 길게 역주한 부분은 2~3편의 글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신문의 특성 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쉽게 납득이 된다. 그러나 책은 신문과는 다르기 때문에 한 장의 글을 모두 이어 붙여 편집하는 게 독자들이 읽고 이해하는 데 훨씬 좋다. 그런데 왜인지 편집자는 그걸 신문에 실린 방식 그대로 하나의 장을 여러 번 나누어 편집해버렸다. 그러니 같은 장을 여러 번 읽는 느낌이 들었고, 읽는 내내 그게 매우 거슬렸던 기억이 난다.
▲ 지금까진 그냥 봐왔지만, 이 안엔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다.
편집엔 고민이 담겨 있다
이처럼 책을 제작하는 입장에서 책을 대해 보니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송곳』이란 웹툰에서 나온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명대사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입장이 바뀌면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디자인이나 배치까지 좀 더 다양한 부분이 보이며, 그에 따라 생각할 거리도 찾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 [송곳]은 만화지만 노동교과서라 할 만하다. 이 책에서 송곳처럼 날카롭게 사용한 말을 좀 편안한 방식으로 차용해서 썼다.
이 날 강의는 인디자인을 하나하나 따라해 가면서 기본기를 익혔다. 이미 『다르다』를 만들며 기본기를 익혀놓긴 했지만 주먹구구로 하던 걸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니 좋았고, 타이포그래피 운영에 대한 기본기도 익힐 수 있어서 좋았다. 타이포그래피 운영의 실전팁은 바로 아래에 달아놓겠다.
타이포그래피 운영 실전팁
1. 국문과 영문을 같이 쓸 경우 영문의 크기에 0.5pt~1pt정도 키운다.
2. 명조체는 7pt 이하일 경우 잘 안 읽혀지니 그땐 고딕체를 써야 한다. 명조체와 함께 쓸 경우 명조체가 작아보이므로 0.5pt~1pt 정도 크기를 키워서 쓴다.
3. 8~10pt 정도는 10대 후반~30 성인 / 11~12pt 아동 또는 40대 이상의 성인
4. 각주나 그림을 설명하는 캡션은 본문보다 2pt 작게 써야 한다.
이로써 세 번째 강의마저 끝났다. 세 시간동안 진행된 강의는 순식간에 끝났고 어느덧 마지막 한 강의만을 남겨 놓게 됐다. 역시 뭐든지 거의 끝나갈 땐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일주일 동안 잘 지내다가 다음 주 마지막 강의 시간에 다들 봅시다.’라는 말을 속으로 하며 센터를 나왔다.
▲ 집에 가는 길에 보는 한강은 언제나 평화롭고 여유 있기만 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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