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答某 (6)
건빵이랑 놀자
6. 가련한 공기족들의 미련한 판단능력 이제 큰 소리로 스스로를 비유하여 사슴이라 말한다면 얼마나 어리석겠습니까? 마땅히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약 다시금 형체의 크고 작음을 비교하고 보는 바의 멀고 가까움을 따지려 한다면, 그대나 나나 모두 망녕될 뿐이리이다. 사슴이 과연 파리보다야 크겠지만, 코끼리가 있지 않습니까? 파리가 과연 사슴보다야 작겠지만 만약 개미로 본다면 코끼리의 사슴에 있어서와 한 가지일 겝니다. 今乃大言自况曰麋, 何其愚也? 宜其見笑於大方之家也. 若復較其形之大小, 辨所見之遠近, 足下與僕, 皆妄也. 麋果大於蠅矣, 不有象乎? 蠅果小於麋矣, 若視諸蟻, 則象之於麋矣. 연암은 계속해서 말한다. 이제 내가 스스로 사슴이라 비유한데 대해, 그대가 크기로 따져서 자신을 파리에 비..
5. 자기중심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사람들 우연히 거친 성질을 기리다가 스스로를 사슴에다 견준 것은 사람이 가까이 가면 놀라는 까닭에서였지 감히 스스로 크다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주신 글월을 받자오매, 스스로를 말 꼬리에 붙은 파리에다 비유하셨으니 또 어찌 그다지도 작단 말입니까? 그대가 진실로 작게 되기를 구한다면 파리도 오히려 크지요. 개미가 있지 않습니까? 偶頌野性, 自况於麋, 所以近人則驚, 非敢自大也. 今承明敎, 自比於驥尾之蠅, 又何其小也? 苟足下求爲小也, 蠅猶大也. 不有蟻乎? 윗 글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역시 바라봄의 문제에 대해 논한 글을 한 편 더 읽어본다. 「답모答某」는 연암이 누군가에게 답장으로 보낸 편지글이다. 아마 이보다 앞선 편지에서 연암이 스스로를 겁 많은 사슴에 견준..
4. 천지만물이 모두 하나의 서재 내가 또 말하였다. “대저 하늘과 땅 사이에 흩어져 있는 것이 모두 이 서책의 정기일세. 그럴진대 본시 바싹 가로막고 보아 한 방 가운데서 구할 수 있는 바가 아닐세. 그래서 포희씨가 문장을 봄을 ‘우러러 하늘을 보고, 굽어 땅을 살폈다’고 한 것이야. 공자께서 그 문장을 봄을 크게 여겨 이를 이어 말씀하시기를, ‘편안히 거처할 때는 그 말을 익힌다[玩]’고 하셨지. 대저 익힌다 함이 어찌 눈으로만 보아 살피는 것이겠는가? 입으로 음미하여 그 맛을 얻고, 귀로 들어 그 소리를 얻으며, 마음으로 마주하여 그 정채로움을 얻는 것일세. 이제 자네가 창에 구멍을 뚫고서 눈으로 이를 전일하게하고, 유리알로 받아 마음으로 이를 깨닫는다고 하세. 비록 그러나 방과 창이 텅비지 않고는..
3. 넓게 읽되 요약해야 하고 번뜩 깨우쳐야 한다 낙서가 놀라 말하였다. “그렇다면 장차 어찌해야 할지요?” 내가 말했다. “그대는 저 물건 찾는 사람을 보지 못했던가? 앞을 보자면 뒤를 잃게 되고, 왼편을 돌아보면 오른편을 놓치고 말지. 왜 그럴까? 방 가운데 앉아 있으면 몸과 물건이 서로 가리게 되고, 눈과 허공이 서로 맞닿기 때문일 뿐이야. 차라리 몸을 방밖에 두어 창에 구멍을 뚫고 살펴보아 한 눈의 전일함으로 온 방안의 물건을 다 보는 것만 같지 못할 것일세.” 낙서가 사례하여 말하였다. “이는 선생님께서 저를 ‘약約’, 즉 요약함을 가지고 이끌어 주시는 것이로군요.” 洛瑞驚曰: “然則將奈何?” 余曰: “子未見夫索物者乎? 瞻前則失後, 顧左則遺右, 何則? 坐在室中, 身與物相掩, 眼與空相逼故爾. 莫若..
2. 의미 없는 독서에 대해 완산完山 이낙서李洛瑞가 책을 쌓아둔 방에 편액을 걸고 소완정素玩亭이라 하였다. 내게 기문記文을 청하므로, 내가 이를 나무라며 말하였다. “대저 물고기가 물속에서 헤엄치면서도 눈이 물을 보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보는 바의 것이 모두 물이고 보니 물이 없는 것과 한가지인게지. 이제 자네의 책은 용마루에 가득차고 시렁을 꽉 채워 전후좌우 할 것 없이 책 아닌 것이 없으니, 물고기가 물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단 말일세. 비록 동중서董仲舒의 전일專一함을 본받고, 장화張華의 기억력에 도움 받으며, 동방삭東方朔의 암기력을 빌려온다 해도 장차 스스로 얻지는 못할 것일세. 그래도 괜찮겠나?” 完山李洛瑞, 扁其貯書之室, 曰素玩. 而請記於余, 余詰之曰: “夫魚游水中, 目不見水者, 何也? 所見..
1. 나비 놓친 사마천의 심정으로 읽어라 그대가 태사공의 『사기』를 읽었다 하나, 그 글만 읽었지 그 마음은 읽지 못했구료. 왜냐구요. 「항우본기」를 읽으면 제후들이 성벽 위에서 싸움 구경 하던 것이 생각나고, 「자객열전」을 읽으면 악사 고점리가 축筑을 연주하던 일이 떠오른다 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늙은 서생의 진부한 말일 뿐이니, 또한 부뚜막 아래에서 숟가락 주웠다는 것과 무에 다르겠습니까. 아이가 나비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요. 앞발은 반쯤 꿇고 뒷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해가지고 살금살금 다가가, 손은 잡았는가 싶었는데 나비는 호로록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 보면 아무도 없고, 게면쩍어 씩 웃다가 장차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이것이 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