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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1. 작은 규모의 집에 있을 건 다 있다 주영염수재晝永簾垂齋[각주:1]는 양군梁君 인수仁叟[각주:2]의 초당草堂이다. 이 집은 오래된 소나무가 있는 검푸른 절벽 아래에 있으며 기둥이 여덟 개인데, 깊숙한 안쪽을 막아서 심방深房[각주:3]을 만들고, 격자창格子窓을 통하게 하여 탁 트인 대청을 만들었다. 높다랗게 다락을 만들고 아담하게 곁방을 둔 데다 대나무 난간을 두르고 이엉으로 지붕을 덮었으며 오른쪽엔 둥근창을 내고 왼쪽엔 빗살창을 내었으니, 집의 몸체는 비록 작아도 있을 것은 다 갖춰져 있어 겨울에는 환하고 여름에는 서늘하다. 집 뒤에는 배나무 십여 그루가 있고, 대나무 사립문 안팎으론 모두 오래된 살구나무와 붉은 과실이 열리는 복사나무다. 개울 머리에 흰 돌을 두어 맑은 물이 돌에 부딪쳐 세차게..
1. 대나무에 관한 글을 써주지 않으려는 이유 예로부터 대나무를 찬양한 사람은 무지하게 많다. 『시경』 「기욱淇燠」 시[각주:1] 이래로 읊조리고 찬탄하는 것만으론 부족해서 ‘차군此君[각주:2]’이라 일컬으며 숭상한 사람까지 있었으니, 대나무는 그래서 마침내 피폐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천하에는 ‘죽竹’으로 자호字號를 삼는 사람이 그치지 않고 게다가 그런 호를 지은 까닭을 기문記文[각주:3]으로 적곤 하지만, 설사 채윤蔡倫[각주:4]이나 몽염蒙恬의 지필紙筆이라 할지라도, 대나무를 두고서 풍상風霜에도 변치 않는 지조라느니 소탈하고 자유로운 모습이라느니 하고 서술하는 데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처럼 사람들이 머리가 허옇게 되도록 쓴 글이 죄다 진부한 글이니, 대나무는 그래서 마침내 그 정채를 잃게 되었..
1. 자연을 담아내는 신채나는 표현 밤에 봉상촌鳳翔村[각주:1]에서 자고 새벽에 강화로 출발하였다. 5리쯤 가자 비로소 동이 텄는데 티끌 기운 하나 없이 깨끗하였다. 해가 겨우 한 자쯤 떠오르는가 싶자 문득 까마귀 머리만 한 시커먼 구름이 해를 가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해를 반이나 덮어 버렸다. 침침하고 어둑하여 한을 품은 것 같기도 하고, 수심에 잠긴 것 같기도 한데, 잔뜩 찡그려 편치 않은 모습이었다. 햇살은 옆으로 뻗쳐 나와 모두 꼬리별을 이뤘으며, 하늘 아래로 방사放射되는 모양이 흡사 성난 폭포 같았다. 夜宿鳳翔邨, 曉入沁都. 行五里許, 天始明, 無纖氛點翳. 日纔上天一尺, 忽有黑雲, 點日如烏頭, 須臾掩日半輪. 慘憺窅冥, 如恨如愁, 頻蹙不寧. 光氣旁溢, 皆成彗孛, 下射天際如怒瀑. 글머리를 아..
3-1. 총평 1이 글은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갔다가 다시 현재로 빠져나오고 그런 연후에 다시 과거와 현재를 뒤섞는 등 굴곡과 변전變轉이 심한 글이다. 이런 글쓰기를 통해 연암은 의도적으로 기억과 현재의 풍경을 마주 세우고 있으며, 이 마주 세움을 통해 자신의 심경을 절묘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이 글에서 기억이란 단순히 과거의 재현이 아니요, 과거와 현재의 관계, 더 나아가 현재에 대해 발언하는 하나의 미적 방식이 되고 있다. 연암은 묘지명의 상투적인 형식이나 일반적인 격식을 무시하고 마음의 행로에 따라 글을 써 나가고 있다. 그 결과 이 글은 형식적으로는 아주 파격적이되, 내용적으로는 더없이 진실하고 감동적인 글이 될 수 있었다. 2이 글은 연암의 누이에 대한 글이고, 삽입된 에피소드도 연암..
‘고’를 탐구해나가는 힘찬 발걸음들 ‘고古’란 무엇인가.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부분이며, 그 점에서 하나의 ‘지속’이다. 우리의 이 지속성 속에서 잃었던 자기 자신을 환기하고, 소중한 자신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으며, 자신의 오랜 기억과 대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는 진정한 자기회귀自己回歸의 본질적 계기가 된다. 진정한 자기회귀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를 긍정하되 자기에 갇히지 않고, 잃어버린 것을 통해 자기를 재창조해 내는 과정이다. 이 점에서 ‘고’는 한갓 복원이나 찬탄의 대상이 아니라, ‘오래된 미래’를 찾아나가는 심오한 정신의 어떤 행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의미의 ‘고’에 대한 탐구다. 텍스트에 대한 사유와 자아의 확장 세상은 점점 요지경이 되어 가고 있다..
1. 16살에 시집간 누이가 고생만 하다 43살에 죽다 유인孺人의 이름은 아무이니, 반남 박씨이다. 그 동생 지원趾源 중미仲美는 묘지명을 쓴다. 유인은 열 여섯에 덕수德水 이택모李宅模 백규伯揆에게 시집가서 딸 하나 아들 둘이 있었는데, 신묘년 9월 1일에 세상을 뜨니 얻은 해가 마흔 셋이었다. 지아비의 선산이 아곡鵝谷인지라, 장차 서향의 언덕에 장사 지내려 한다. 孺人諱某, 潘南朴氏. 其弟趾源仲美誌之曰 : 孺人十六歸德水李宅模伯揆, 有一女二男, 辛卯九月一日歿, 得年四十三. 夫之先山曰鵝谷, 將葬于庚坐之兆. 죽은 누님을 그리며 지은 묘지명이다. 번역만으로는 원문의 곡진한 느낌을 십분 전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것만으로도 애잔하고 가슴 뭉클한 한편의 명문이다. 연암과 죽은 누님과는 여덟 살의 터울이..